[김건수의 음악이 말하네] 14. 크라잉넛 '독립군가'
무너진 대한을 지탱한 저항의 목청, 자유의 노래

'점심은 드셨소? 가을 하늘이 유난히 맑아 오랜만에 이리 소식 전하는구려.' '귀하의 심려 덕에 이 몸은 무탈하오. 요사이 적조하였는데 오늘 저녁 시간 낼 수 있는지 내 알고 싶소.'
TV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여파가 컸던 모양이다. 이런 말투가 일상에서도 모르는 새 튀어나온다. 알고 보니 종방 뒤에도 많은 사람들이 미스터 션사인을 '앓고' 있었다. 우리 역사에 묻혀 있던 구한말 의병(사진)을 소재로 삼은 참신함에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 출연진의 명연기, 유려한 영상미가 어우러진, 유례없는 명품 드라마였다.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서는 이것이 우리의 민족성임을 드라마 속 일본 장교는 알고 있었다. "조선이 왜란, 호란에도 살아남은 것은 의병 때문이다. 의병의 자식이 다시 의병이 되는 나라가 조선이다!" 당시 표기법을 그대로 제목으로 쓴 '미스터 션샤인'은 의병으로 일어설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이 바로 역사의 '불꽃'임을 의미한다. 이 땅의 의병은 세계사 곳곳에서 '시민군' '레지스탕스' '파르티잔' 등의 이름과 만난다. 억압에 맞서고 자유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진 이들 '무명씨'들이 비틀거리는 역사의 걸음을 끝끝내 앞으로 이끌었다.
제복도 계급장도 없는 이들은 싸움에 나서면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서로를 뭉치게 하고 두려움을 이기게 하고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위로한다. 무장 항일투쟁 과정에서 부른 많은 노래 가운데 1910년에 나온 '독립군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널리 그리고 가장 오래 불린, 제목 그대로 독립군가를 대표하는 노래다.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 용사야/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삼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건질 이 너와 나로다/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싸우러 나가자.' 1920년 3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선언 기념식에서 애국가와 이 노래를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부르며 항일 의지를 다졌다고 전해진다. 선율은 미국 남북전쟁 막바지 북군들 사이에 유행한 '조지아 행진곡(Georgia March)'을 차용한 것인데, 작사자는 미상이다.
2005년 '광복 60년 독립군가 다시 부르기' 음반이 나온 적이 있다. 신세대 취향에 맞춰 대중가수와 록 밴드가 재해석한 독립군가들과 국군 군악대 버전이 함께 실린 독특한 두 장짜리 음반이다.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의 강력한 사운드는 '독립군가'의 기백과 놀라울 정도로 찰떡궁합이다.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린다. 만주벌판 휘달리는 독립군의 위엄과 용맹을 번뜩이는 장검에 빗댄 '장검가'도 마찬가지. 록 밴드 더 문이 찰지게 뽑아올렸다. 일청을 권한다. 논설위원 kswoo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