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에이징 테크] 노인에게 첨단기술이란?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디딤돌’
로봇청소기가 알아서 집안을 돌아다닌다. 작은 기계가 문턱을 넘고 방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먼지를 빨아들이고 바닥을 닦는 걸 보고 있으면, 신기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10여 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틈만 나면 집 청소를 했다. 고령에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셨는데도, 늘 쓸고 닦으셨다. 그 시절 이런 로봇이 상용화돼 선물할 기회가 있었다면, 외할머니는 좀 더 편안하게 노년을 보내지 않았을까. 물론 빗자루와 물걸레를 완전히 손에서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노동 시간이 꽤 줄면서 삐걱거리던 외할머니의 관절이 쉬는 시간이 늘지 않았을까.
노년층에 좋은 과학 기술 쏟아져
집 안 기능 제어 스마트홈 대표적
무선 모션센서·응급 알람 상용화
통신기술 발달 정서적 안정 기여
교육 통해 첨단과학 활용 기회를
첨단기술로 회춘하기
실용 과학기술은 우리 삶을 좀 더 편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게 목표다. 그래서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세대보다 기력이 떨어지는 노년층이 기술 발전의 혜택을 더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처럼 급격한 과학기술의 진보가 이뤄지면, 젊은층보다 노년층 삶의 변화폭이 훨씬 클 것이다. 이미 그런 변화는 감지되고 있다. 노인생활과학연구소 한동희 소장은 “에이징 테크(aging tech)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첨단 IT기술과 바이오기술 등이 노인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징 테크는 노년층이 사용하기 좋은 과학기술이다. 물론 노년층만을 위한 기술은 아니지만, 노인에게 효과가 좋은 것들이다. 주로 생활의 편의성을 높여주거나, 건강 이상을 진단하고 위급상황 대처능력을 키워주거나, 외로움을 달래주면서 정서적 충만감을 주는 기능을 한다.
편의성 측면에서 대중화되고 있는 기술이 로봇청소기다. 2000년 이후 로봇청소기는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기술적 진보로 지금은 초창기 모델보다 가격이 훨씬 싸고 성능도 좋아졌다. 보통 몇십만 원이면 괜찮은 모델을 살 수 있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홈도 에이징 테크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덜 움직이면서 집 안의 여러 기능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IoT형 AI스피커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복잡하게 리모컨을 조정할 필요할 없이, 스피커와 대화를 하다 보면 원하는 드라마가 TV에서 나온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필요한 물품을 주문할 수도 있다. 활용범위가 넓은데, 심지어 노인의 말동무로 쓸 수도 있다.
‘세이프워치’나 스마트시계, 스마트팔찌, 스마트목걸이 등은 노인의 안정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기능이 있다. GPS 같은 위치기반시스템을 쓰고 있는 이 장비를 이용하면 자녀가 연락이 닿지 않은 노부모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맥박, 혈압 등을 체크하고 이상징후가 있으면 긴급 출동과 비상 연락망을 호출하는 기능도 있다.
유럽에선 집안에 무선 모션센서가 설치돼 노인의 거동, 움직임 횟수, 이상 동작 등을 감지하는 시스템이 상용화돼 있다. CCTV랑 달리 사생활 침해가 덜해 거부감이 덜하다고 한다. 미국에선 스마트팔지를 활용한 ‘필립스’의 응급알람 시스템을 100만 명의 노인이 쓰고 있다. 치매 환자를 위한 인체감지 센서, 위치확인 기술이 들어간 신발 밑창도 있다.
통신기술의 발달도 노인의 삶을 매우 풍요롭게 하고 있다. 이런 기술은 가족, 친구와의 교류를 활발하게 해줘 노인의 정서적 안정에 기여한다. 스마트폰의 모바일 데이터처리 능률 등이 올라가면서 화상통화 품질이 좋아져, 요즘 노인은 멀리 떨어져 있는 손주의 재롱을 수시로 감상할 수 있다.
첨단기술과 친해지기
10년 정도 뒤를 생각해 보자. 자율주행차가 보급됐을 수 있고, 로봇청소기와 AI스피커가 한 몸이 된 가정로봇이 흔해질 수도 있다. 근력보조장비가 지팡이처럼 쓰여, 노인의 부족한 근력을 채워줄 수 있다. IoT기술이 더 성숙해, 네트워크 장비만 활용해도 웬만한 집 안팎의 일들을 처리할 수도 있다. 다만 노인이 이런 기술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지금도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친숙한 노인과 그렇지 못한 노인의 활동 범위는 차이가 크다.
노인생활과학연구소 한동희 소장은 “노인도 첨단과학에 익숙해져야 한다. 노인 스스로 이 분야에 관심을 둬야 하겠지만, 과학을 배우는 건 어린이와 청년의 몫이라는 사회적 선입견도 해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교양으로서의 첨단 과학 교육은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용적인 측면에선 노년층에 대한 과학 교육이 더 절실하다는 게 한 소장의 설명이다. 과학 교육을 통해 노인이 첨단 과학 기술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쌓고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거다.
이런 취지에서 노인생활과학연구소는 한국과학장의재단의 후원으로 올해 ‘과학, 노년 그리고 미래’라는 특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지난 11일 부산 연제구 거제동 연구소 세미나실에서 영산대 김태희 교수의 ‘장노년층을 위한 인공지능의 이해와 활용’이라는 특강이 열렸다. 인공지능 기술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쓰이고, 앞으로 노년층의 삶에 어떤 긍정적 변화를 줄지 등에 대해 알아보는 자리였다. 9월엔 카이스트 권동수 교수의 ‘노년과 로봇’, 10월엔 서울대 최진영 교수의 ‘노년과 뇌공학’, 11월엔 한 소장의 ‘과학기술과 활기찬 노년’ 특강이 예정돼 있다.
한 소장은 “실제 특강을 해보면 노인의 과학기술에 대한 학습 열정이 높다. 로봇청소기 외피를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면 좋겠다 같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노년층에 특화된 관련 교육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