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男걷는女] 코로나, 그리고 피·땀·눈물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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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버텨온 헬스장, 집합금지 직격탄
문의 전화는 '0', 취소 연락만 쏟아져
언제 또 확산될지 몰라 전전긍긍 한숨만
수업당 임금 받는 직원들 타격 더 커

"거기서 왜 자노?" "여기서 잠이 올까?"

'불면의 시대'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다양한 현장, 그 속 다양한 사람들의 내면과 접선하는 '잠'입취재.

시끄럽거나 조용하거나, 덥거나 춥거나, 열악하거나 호화롭거나. 어디든 눈을 감고 자겠습니다. 저는 '자는 남자'입니다. 잘자요~


<쇳소리와 130RPM 앙상블>

자는 게 가장 쉬운 거 아니냐고 노래를 부르는 한 남자. 어디든 머리를 대면 잠에 빠지는 남자. '본캐'는 기자. 2주에 한 번씩 '부캐' 잠만용(이하 '용')이 되기로 했다. 잠을 잔다고? 예능인지 다큐인지는 불분명하다. 자는 거다. 그냥.

용은 학창 시절 공부하다 졸고, 일하다 몰래 눈을 자주 감았다. 하지만 적어도 헬스장에서 졸아 본 적은 없었다. 운동을 잘해서? 운동이 재밌어서? 아니다. 용이 겪은 헬스장은 잠을 자기 취약한 환경. 각종 소음이 뒤섞여 있는 탓이다. 사실 헬스장에서 잠이 올 만큼 머물러본 적도 없다.

방방방방. 다가다가다가다가. 130RPM은 될 듯한 비트에 온몸이 긴장한다. 2주 전 들었던 비행기 굉음('자는 남자' 1화 참조)과는 다른 비트감. 쓱 둘러본 헬스장에는 어떤 기구 하나 만만한 게 없다. 제작진은 자신만만한 듯 "잘 수 있겠냐"고 묻는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용은 자신이 없다. 못 잘 자신이.

몸 하나 겨우 기댈 수 있는 벤치에 용이 머리를 댔다. 순간 안 좋은 기억이 찰나를 스친다. 헬스 트레이너들이 용을 단련하고자 했던 기억. 3개월 뒤, 1년 뒤, 트레이너들은 "저한테 수업 듣는다고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몸에 변화가 없었다. 신경도 근육도 발달하지 못했다. 아픈 추억을 정리하고, 시그니처 침낭을 몸에 바짝 당기니 '그분'이 온다. 잠이다. 방역이 잘 된 탓인지 땀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다.

자본 사람은 안다. 그냥 널브러진다고 잘 수 있는 게 아니다. 온몸이 배기는 느낌이 들면 잠들기 쉽지 않다. 각도가 생명이다. 몸을 조금 더 비스듬히 누이고 애착 인형 잠만보를 벤다. 살이 오른 잠만보의 쿠션감은 라텍스 베개보다 낫다.

자 본 사람은 안다. 작은 소리가 더 거슬리는 법. 천장과 바닥을 울리는 신나는 음악과 무거운 기구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쇳소리. 끽. 용은 자는 사람 옆에서 운동은 안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모두가 용의 옆에서 자신 있게 무게를 들어 올렸다. '끄엉', '으하' 건강미 넘치는 소리는 쇳소리와 앙상블을 이룬다.

온몸을 부르르 떤 뒤 용은 호흡을 내려놨다. 이놈의 '국팡' 침낭은 실내용이었던 것 같다. 따뜻함이 몰려오자 근육이 이완됐다. 살짝 실눈을 떠 주위를 살폈지만 피디들은 없다. 용이 잔다는 건 피디들에겐 휴식이다. 그렇게 20분이 흘렀다. '방역왕' 관장은 방역기의 전원을 올렸다. 공중을 향해 알코올 소독약을 힘차게 뿌렸다. 연무가 헬스 기구들 사이로 휘날렸다. 낯선 한기가 얼굴을 스쳤다. 세상에. 방역기로 잠을 깨울 줄이야. 용의 머리 뒤는 떡이 졌다. 자는 사이 많은 회원들이 용의 옆에서 운동했다고 한다. 용은 잘 잤다. 오늘 하루도.


방역왕은 거세게 용를 향해 소독약을 뿌렸다. 자는데 물뿌리기. 자본 사람은 안다. 제일 싫다. 이재화 PD 방역왕은 거세게 용를 향해 소독약을 뿌렸다. 자는데 물뿌리기. 자본 사람은 안다. 제일 싫다. 이재화 PD

<코로나 장마>

2020년 12월 14일.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습한 날씨 탓인지, 문 앞 기둥에 지난 가을 태풍이 남긴 빗물 자국이 유독 진하게 보였다. 비는 긴장을 의미한다. 비가 오면 반지하에서는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진다. 비는 언제 올지도 얼마나 올지도 언제까지 올지도 모른다.

■ 잠시 멈춤

러닝머신 소리를 뚫고 나오던 음악 소리가 꺼졌다. 내일 또 올 센터지만 화장실 창문, 남·여 탈의실 문도 꼼꼼히 챙겼다. 2020년 1월 27일부터 오늘까지 324일간 센터 운영을 시작한 이후 평일에 센터가 문을 닫은 적은 없었다. 센터 정리를 마치고 계단 6칸, 문을 나와 계단과 턱 3칸을 오르는 발걸음이 여느 때와 달랐다. '올 게 왔구나.' 이 관장 마스크 사이로 알 수 없는 웃음과 당황스러움이 새어 나왔다. 11개월째 계단을 수백 번, 수천 번 오르내린 계단이지만 오늘은 유독 거슬렸다.

집으로 와 지친 몸을 겨우 씻고 쇼파에 몸을 뉘었다. 통장 잔고와 이달 말 입금돼야 할 비용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살아서 만나요.' 이모티콘을 섞어 회원들께 문자로 '잠시 멈춤'을 알릴 때만 해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며칠 쉬고 생각해보자고 여겼다. 머리는 돈 나가는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들어올 돈은 당분간 없다. 고정비만 월 1200만 원. 임대료, 직원들 월급, 전기요금. 이 돈을 저리 빼고 저 돈을 이리 빼 간신히 넘길 수 있겠는데... 겨우 계산이 섰을 무렵. 시계는 어느덧 12시를 향해 있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시끌벅적한 예능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이 관장 눈에 오늘 TV는 달리 보였다. TV 속에서 크게 웃는 연예인들은 환하게 치아를 드러내고 있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지만 마스크는 보기 어려웠다.

■ 꿈의 1호점

2020년 1월 27일. 이 관장은 50평 남짓한 공간에 PT숍을 차렸다. 지난 10년간 재활치료사로 일하면서 아픈 회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운동 열심히 하세요" 뿐이었다. 2014년부터 오전엔 물리치료사로, 오후엔 헬스장을 나가는 '투잡'을 뛰면서 "모든 재활 과정을 총괄하는 PT숍을 차려야겠다"는 꿈을 꿨다.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2020년 1월 꿈은 현실이 됐다. 5000세대가 넘는 아파트를 끼고 6차선 도로 한편에 마련한 공간. 한쪽에 재활치료사 자격증도 걸었다. 6개의 근력운동 기구와 3개의 필라테스 기구. 필라테스와 헬스를 동시에 하고 재활도 가능한 공간은 동네에서 유일했다. 자신감도 있었다. 최소한 운동을 시작한 회원들이 재등록을 하게 할 자신감. 헬스장에서 흔히 하는 '1000장당 1명 오면 성공했다'고 불리는, 대규모 할인 이벤트를 때려 넣은 전단지 홍보도 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운동하는 모습이 다 보이는 덕분인지, 개업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알음알음 문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회원 수는 시나브로 늘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예상보다 더 잘 됐다. 오픈 3개월여 만에 회원 60명을 돌파했다. 현대식 조명과 밝은 분위기의 헬스장. 길에서 내부가 환히 보이고 깔끔한 인테리어 탓에 '나도 한 번쯤 여기서 운동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 사이 직원도 생겼다. 3개월 동안 바뀐 건 마스크뿐이었다. 부산에서 처음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2월 21일, 그로부터 3주가 지나고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직원 2명과 이 관장만 마스크를 썼다. 그러다 회원들이 하나둘 마스크를 벗지 않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대구에서 신천지 신도 4266명이 집단감염 됐다. 어느 순간부터는 마스크를 벗는 회원은 없었다.


실내체육시설 집합금지 29일간 이 녀석들도 달리지 못했다. 자전거와 러닝머신도 달리고 싶다. 실내체육시설 집합금지 29일간 이 녀석들도 달리지 못했다. 자전거와 러닝머신도 달리고 싶다.

■ 긴급재난문자

2월 신천지가 지나가고 5월 이태원도 무사히 넘겼다. 수도권 체육시설은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한편으로 우리는 아직 괜찮다는 안도감이 스쳤다.

"여기 PT숍은 괜찮습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코로나가 심하긴 심한가 보더라고요"

애써 태연한 척 "이럴 때일수록 더 운동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지만 영 찜찜했다.

샤워장 바닥 타일도 말라갔다. 수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초반엔 헬스장에서 씻을 수 있냐는 문의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2명이 쓸 수 있는 작은 샤워장에 1명만 사용하다가 '샤워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못 쓰는 공간이 됐다.

이 관장은 수업 중간 쉬는 시간 카운터에 앉아 포털사이트를 열었다. 온통 코로나다. "부산도 아니구만, 뭐 저리 공포심을 조장하나."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며 읊조렸다.

몸은 불안감을 알고 있었다. 외식을 끊었다. '회원들이 코로나에 걸리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걸리면 우리 숍은 끝난다'는 생각에서였다. '밀키트'로 밥을 때웠다. 회원들이 휴가라며 여행을 다녀오거나, "오늘 뭐 먹었습니까?"라는 질문에 장어구이, 갈비 같은 '외식 메뉴'가 나오면 가슴이 철렁했다.

밀키트가 조금 지겨워질 무렵인 10월, 인근 만덕동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코로나 뉴스에 마우스 커서가 향하는 빈도가 늘었다.

확진자 수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6개월 넘도록 주 2회 수업을 빼먹지 않던 열혈 회원들이 하루 전, 당일에 못 온다고 연락이 오는건 코로나가 문 앞까지 왔다는 의미였다.

긴급재난문자보다 회원들 전화가 더 빨랐다. 당분간 쉬겠다는 문자에 괜찮다는 답장을 보냈다. 회원들이 쉬겠다는 건 불안하다는 의미다.

쉬는 회원 수가 조금씩 늘어났다. 아직 문 닫는 건 아니니까. 이 관장은 스스로 위로했다.

'OO김밥집 화명점 홀에서 식사하신 분은 보건소에서 상담 바랍니다.' 이 관장의 헬스장과 채 1km가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매일 오전 10시 발표되는 확진자 수는 1000명대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뉴스에서 '실내체육시설 2주간 집합금지'를 알렸다. 왔다. 진짜 위기.


아무도 이용하지 않게 된 샤워장. 샤워장에 물기가 흥건하면 코로나가 끝난 걸 의미한다. 아무도 이용하지 않게 된 샤워장. 샤워장에 물기가 흥건하면 코로나가 끝난 걸 의미한다.

■ 수능, 그리고 1월 1일

모두가 말렸다. 의아해 했다. "이 시국에 괜찮겠냐"는 말이 오픈 축하 메시지보다 먼저 들렸다. "나만 잘하면 된다", "곧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에 이 관장은 고민 없이 계약했다. PT숍과는 다른 콘셉트의 필라테스 전문점. 직원 2명에 70평인, PT 숍 바로 옆 건물 3층. 1호점에도 현수막을 내걸었다. '필라테스 2호점 회원 모집.' 여기도 할인은 없었다.

헬스 업계엔 진리가 있다. 1년에 두 번 대목이 온다. 수능과 새해 첫 날이다. 수능이 끝난 수험생들과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헬스장을 찾는다. 새해를 맞아 건강을 다짐하는 어른들도 헬스장으로 향한다. 2020년 11월 초 문을 열며 대목빨과 오픈빨로 안착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목은 없었다. 11월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1000명에 육박했다. 1월 1일이 낀 대목은 집합금지가 됐다. 대목은커녕 20%는 환불을 했고 나머지 80%는 선불제인 탓에 수업이 연기됐다.

7년간 트레이너로 있으면서 몸소 배운 룰이 있다. 헬스장, 필라테스 같은 운동시설 운영은 파도와 같다. 파도가 일려면 물이 차야 하듯, 수입이 없는 시기엔 물을 기다려야 한다. 1월 대목에 회원들이 우르르 등록하면 2월은 상대적으로 매출이 적다. 1월 등록비로 3월까지 버텨야 한다. 그 사이 2월에 회원들이 등록하면 4월까지 어찌어찌 숨통이 트이지만 2월에 회원 유입이 적으면 2월도 4월도 힘들어진다.

지난 12월 14일부터 1월 11일까지 한 달간 신규 등록도, 이용도 없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헬스장을 가도 된다고 나라에서 아무리 말해도 회원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선순환의 파도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몇 달이 걸릴지. 짐작조차 안 된다.


PT숍과 필라테스장. 그냥 하지 말 걸... 후회가 막심했던 '애증'의 2호점이지만 문을 연 이상 짊어져야 한다. PT숍과 필라테스장. 그냥 하지 말 걸... 후회가 막심했던 '애증'의 2호점이지만 문을 연 이상 짊어져야 한다.

■ 29일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부산시에서 100만 원, 정부에서 300만 원. 집합금지업종 지원금이다. 가뭄에 단비라고 내려줬지만 땅 속 깊이 팬 틈을 채우기엔 역부족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화가 나다 못해 울화가 치밀었다. 대구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관장이 목숨을 끊었다. 아마 지난해부터 쌓인 빚이 문제일 거라고 추측해본다. 대책은 사람이 죽자 나왔다. 29일 동안의 강제 휴업 기간 나온 대책이 '태권도장은 문을 열게 해준다'라는 게 전부였다. '금지 완화'란 단어를 보고 기사를 클릭했던 이 관장은 "장난치나" 혼잣말을 내뱉었다. 차라리 식당하고 비교하지 싶었다.

버티면 되겠지, 다시 시작하면 될 거라고 이 관장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부여잡는다. 하지만 2월 첫 시작 때와 달리 직원들이 눈에 밟혔다. 헬스장 트레이너는 두 가지 방식으로 월급을 받는데 이 관장의 직원(트레이너)들은 기본급은 낮고 수업비가 높게 책정됐다. 그런데 회원들이 오지 않으니 수업비를 받을 수 없다. 코로나가 괜찮아지면 오겠다는 회원들도 기약이 없다. 조금이라도 월급을 더 챙겨주기 위해 건물주에게 임대료 감면을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 회원들이 다시 올 때쯤, 그달은 들어오는 돈 없이 수업해야 한다.

강제로 문을 닫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집합금지가 해제되면 제대로 한번 박살 내자"고 직원 교육을 했다. 우리 잘못은 아니지만 더 잘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회원들과 같이 운동해야 할 공간에 직원과 이 관장의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 더 힘차게 레그프레스를 하고 자전거를 탔다.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한숨을 감출 순 없다.


이 관장이 용의 다리를 '하드 트레이닝'으로 박살내고 있다. 혹여나 대충할까 용의 다리에 집중한 이관장. 이 관장이 용의 다리를 '하드 트레이닝'으로 박살내고 있다. 혹여나 대충할까 용의 다리에 집중한 이관장.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억세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계단에 물이 조금씩 차오른다. 방법은 없다. 밤새 전전긍긍하며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릴 뿐. 문 앞 기둥에 빗물 자국이 선명해져 갔다. 비는 언제 올지도 얼마나 올지도 언제까지 올지도 모른다. 오늘도 오후 1시 30분 부산 확진자 수를 알리는 문자가 울린다. 이 관장은 구령에 힘을 넣는다. 하나 둘 셋 넷!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촬영·편집=이재화·정수원·김보경 PD, 진유민 작가

김준용기자 jundragon@busan.com

이재화기자 jhlee@busan.com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김보경기자 harufor@busan.com

진유민 jmin@busan.com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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