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사례금 50만 원" 매축지마을 '전봇대 종'을 찾습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 이재화기자 jhl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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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미스터리 수사대 '날라-Lee'.

<부산일보> 독자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날라'주는 '이' 기자입니다.

갈고 닦은 취재 기술로 도심 속 미스터리를 파헤칩니다. 문득 '저건 뭐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주저 말고 제보해주십시오. 동네 어르신의 '전설 같은 이야기'도 언제든 환영합니다. 작은 제보가 거대한 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산 동구 '매축지마을'에서 '전봇대 종(鐘)'이 사라졌다는 제보입니다.

하루 아침에 70년간 마을을 지켜 온 종이 없어져, 주민들이 현상금까지 내걸고 찾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종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사례금 50만 원'

원래는 20만 원이었습니다. 두 달여 간 아무런 제보가 없자 2배 이상 올렸다고. 종만 찾을 수 있다면 처벌도 원하지 않는답니다. 그냥 어느 날 새벽 조용히 제 자리에만 가져다 놓기만 바랄 뿐입니다.

사례금을 내건 이는 '매축지마을 지킴이' 박영진 통영칠기 대표. 부산, 양산 등 안 가본 골동품가게가 없습니다. 종이 팔렸을 법한 금은방도 돌았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종은 없었습니다. 신문, 공중파 등 인터뷰도 마다하지 않고 나섰는데, 감감무소식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이 동네에 와서 큰 은혜를 입었는데, 50만 원이 아깝겠습니까. 종이 있을 만한 거리에는 웬만하면 벽보를 다 붙였습니다. 어찌 됐든 끝까지 찾아보려고요."

현재 지역 예술가들도 SNS에 도난 사실을 알리고 "종을 돌려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저거 휘발유 아닙니까."

1954년 4월. 매축지마을 앞 개천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인근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정체불명의 액체가 '기름이냐, 아니냐'를 두고 주민끼리 의견이 갈린 겁니다.

결국 주민들은 그곳에 성냥불을 갔다 댔고, 찰나에 불은 동네 전체를 뒤덮었습니다. 좁은 골목길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보니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습니다.

안타깝게도 37명이 숨지고, 140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불탄 집만 무려 640채에 이릅니다. 알고 보니 미군기지에서 송유관 수리를 하다 기름이 새어 나온 거였습니다.

'매축지 종' 역사는 이때부터입니다. 큰 사고를 겪은 뒤 종은 비상시 대피를 알리는 '경보음'이 됐습니다. 화재 당시에도 종이 울린 덕에 피해를 줄였다고.

어찌 됐든 이후 종은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습니다. 주민을 위협할 만한 비상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겁니다. 주민들은 이 모든 게 '전봇대 종' 덕분이라 여겼습니다. 주민들이 이토록 종을 찾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종은 올 1월 16일 이후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날 새벽 누군가 전봇대에 종을 묶어 놓은 두꺼운 전깃줄과 밧줄을 끊고 소리소문없이 가져갔습니다.

다음 날 전봇대 바로 옆에 사는 이호덕(83) 할머니가 이를 발견하고 주변에 알렸습니다.

“아침마다 보던 건데 그날은 안 보이니, 얼마나 마음이 안 좋았겠습니까. 아들한테 말하니 신고하라더라고요.”

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이 사라지기 전 어느 낯선 사람이 할머니에게 '종을 팔지 않겠느냐'고 물어봤다는 겁니다. 할머니가 "안 된다"며 돌려보냈지만, 며칠 후 다시 찾아왔답니다. 마을의 유물을 자꾸만 팔라고 하니, 그땐 할머니가 적잖게 화를 냈다고.

경찰 수사는 아직 답보 상태입니다. 수사 의뢰를 받은 부산 동부경찰서 측은 "아직 목격자나 제보는 없다. 종이 팔렸을 법한 장소 등을 상대로 계속해서 탐문을 벌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CCTV는 전봇대와 약 50m 떨어져 있습니다. 화질이 흐린 데다 수시로 방향을 틀어 다른 곳을 비추기 때문에 도난 당시 모습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고 합니다.


취재팀은 부산 남구 문현동 한 골동품매장 골목을 찾았습니다. 왜 이 종을 훔쳤는지, 장물은 어떻게 유통되는지 물었습니다.

대부분 매장 상인은 '좀도둑질'로 봤습니다. 추후 매겨질 역사적 가치를 생각한 '큰 그림'은 아닐 거라고.

"종에 매축지마을 이니셜이라든지 어떤 표식이 새겨져 있지 않아 추후 증명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10만~20만 원 정도의 고철값을 받고 팔았을 확률이 큽니다. 최근 뉴스에 계속 나오니 겁이 나서 계속 들고 있을 수도 있고요."

상인들은 하나같이 매축지 종을 찾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종의 크기가 달라 매장에 들어오면 식별이 가능하답니다. 보통 거래되는 종보다 하단부 둘레가 확연히 넓다고.

"사진을 주시면 골목 곳곳에 배치하겠습니다. 부산의 역사적 사료가 되는 종인데 당연히 저희 상인들도 도와야죠."


매축지마을은 태평양전쟁 때 일제가 만주로 군수물자를 나르고자 막사와 마굿간을 지었던 곳입니다. 이후 6·25 전쟁 피난민들이 마구간을 칸칸이 잘라 임시 거주지로 사용하며 마을이 형성됐습니다.

일제 수탈의 아픔을 증언할 매축지마을은 조만간 재개발로 인해 사라집니다. 박영진 대표는 재개발 이후에도 마을의 역사와 흔적을 이 종에 담아 어디든 남겨두려 했으나, 이제 그 기회가 사라질 위기입니다.

"우리 삶의 애환을 간직한 한 많은 종입니다. 부디…."

매축지 종은 상단부에 마치 녹이 슨 것처럼 검붉은색 페인트가 묻어 있습니다. 종소리도 쨍하는 소리보다 울림이 큰 저음입니다. 이 종을 보신 분은 통영칠기 박영진 대표(010-3830-2378)에게 제보해주시길 바랍니다.


사라지기 전 매축지마을 '전봇대 종'. 박영진 제공 사라지기 전 매축지마을 '전봇대 종'. 박영진 제공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제작=정수원·이재화 PD / 홍성진·정연욱 대학생인턴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 이재화기자 jhl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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