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인신공양'은 정말 사라졌을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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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 인신공희 인골 또 발견
국가체제 확립으로 금지됐지만…

4년 만이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희(人身供犧) 흔적으로 보이는 인골이 또다시 나왔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7일 경주 월성 서성벽 문지(門址) 주변에서 4세기 중엽에 인신공희로 희생된 신장 135㎝의 성인 여성 인골을 출토했다. 2017년 국내 최초의 인신공희 사례로 알려져 관심을 끈 50대 남녀 인골 2구가 발견된 지점에서 불과 50㎝ 떨어진 곳이다. 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16년 같은 장소에서 찾은 유아 인골도 제물로 묻혔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게다가 이번 조사 지점과 10m 떨어진 곳에서 1985년과 1990년에 수습한 인골 20여 구도 역시나 인신공희의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대체 당시 경주 월성 성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경주 월성에서 나온 성인 여성 인골과 토기. 연합뉴스 경주 월성에서 나온 성인 여성 인골과 토기. 연합뉴스


■생사람을 성벽에 묻다니

월성(月城)은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20만 1116㎡에 달하는 신라의 궁궐터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겨서 신라 때부터 신월성, 월성, 반월성 등으로 불렸다. 월성군은 1989년 경주군으로 이름이 바뀌며 사라졌지만, 월성 원자력 발전소에 그 흔적이 남았다. 신라의 왕들은 월성에서 천 년 동안 살았지만 왕궁은 아직 발굴이 안 되었다. 천년 왕국 신라의 비밀이 그대로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월성의 지하에는 여러 시대의 흔적이 수직으로 겹쳐진 상태다. 그래서 경주를 서라벌이라고 부르던 시대의 층까지 발굴조사를 해서 알아내려면 최소 1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월성은 주변보다 높은 언덕 지역으로 남쪽에는 남천이 흐르는 천혜의 요새지였다. 신라 사람들은 동·서·북쪽에 흙과 돌로 성벽을 쌓고, 남쪽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했다. 그동안 발견된 인골들은 성벽을 본격적으로 쌓기 직전의 기초 층에서 나왔다. 성벽을 축조하는 단계에서 묻힌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술을 따르는 제례용 토기가 나왔는데 무덤 시설은 없었다. 인골들은 일정한 방향을 형성하고 있었다. 장기명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사람을 모두 죽인 뒤 성벽에 묻은 듯하다. 인골은 동시에 의례 제물로 바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주 월성 서성벽 단면. 연합뉴스 경주 월성 서성벽 단면. 연합뉴스

월성 성벽의 인신공희는 '인주(人柱)설화'를 뒷받침하는 국내 최초의 사례로도 평가된다. 거대한 토목공사인 성이나 둑 쌓기, 다리 놓기 등을 할 때 사람을 땅속이나 물속에 파묻는 것을 인주(人柱)라고 한다. 산 사람의 영혼이 건축물에 들어갔으니 견고하고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행해진 풍습이다. 인주설화는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지금까지 전해 온다. 전남 영암군 시종면 신학리의 소바우 마을에는 옛날에 마을 앞 둑이 잘 터져서 피해가 많았다. 어느 날 한 도사의 말을 듣고 산 아이를 제물로 삼아 파묻고 둑을 쌓았더니 그 뒤로는 안전했다고 한다. 그때 희생된 아이의 이름을 따라 마을 이름을 소바우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신라의 왕과 왕족들은 4세기 초·중엽 서라벌 월성을 둘러싼 성벽을 쌓으면서 성문 앞 너른 문지에서 평민과 노비들을 희생시켰다.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벽이 들어설 자리 위에 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치렀던 것이다.


■고대 세계 보편적인(?) 풍습

인신공희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권 개념이 희박하던 고대에는 지역·종교·인종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나타나던 풍습이었다. 그리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 이란, 인도, 중국, 페루에 이르기까지 고대문명 발상지에는 인신공양이 있었다. 페루에 있는 잉카 문명의 고대 도시 마추픽추에서 인신공양을 당한 사람들의 유해는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다. 죽은 귀족들을 내세에서도 보필하기 위해 강제로 순장된 사람들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상나라(기원전 1600~기원전 1000년) 시기에 성벽 건축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쓰는 풍속이 유행했다고 전한다. 중국 4대 민간 전설의 하나인 맹강녀(孟姜女) 이야기도 이와 관련이 있다. 맹강녀의 남편은 혼인한 지 사흘 만에 만리장성을 쌓는 인부로 동원되었다. 그녀가 힘들게 찾아갔을 때 남편은 이미 성벽 아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묻힌 뒤였다고 한다.


중국 만리장성에도 인신공희의 이야기가 전한다. 부산일보DB 중국 만리장성에도 인신공희의 이야기가 전한다. 부산일보DB

일본에도 히토바시라(人柱)라는 인신공양 풍습이 있었다. 댐, 다리, 성과 같은 대규모 건물 근처에 사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고 파괴되지 않도록 기도하는 풍습이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히토바시라를 '희생양'과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인신공양이라는 야만적 풍습은 국가 통치 체제가 정비되면서 대부분 사라지게 된다. 부여와 가야에도 순장 풍습이 있었지만 고구려는 12대 중천왕 때인 3세기 중반부터 금지한다. 신라도 지증왕이 6세기 초에 법으로 순장을 금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인주설화가 전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거대한 토목공사를 하다 보면 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있고, 이러한 희생을 거쳐 후세 사람이 혜택을 입게 된다는 교훈을 인주설화로 치환한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풀이한다.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되고 선인의 희생에서 후세 사람이 혜택을 입는다는 교훈을 담았다고 덧붙인다.



경남 창녕박물관에 전시된 1500년 전 순장된 '가야 소녀'의 복원 모형. 연합뉴스 경남 창녕박물관에 전시된 1500년 전 순장된 '가야 소녀'의 복원 모형. 연합뉴스

■세계 최고 산재 사고 속에는

인신공희 풍습이 사라졌다는 데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장기이식윤리협회를 비롯한 국제 NGO 연대가 지난 17일부터 26일까지 온라인으로 여는 '강제 장기 적출 근절 및 방지를 위한 월드 서밋'도 그 일환이다. 현대판 인신공희인 중국의 장기 적출 만행을 저지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나선 것이다. 중국 정부는 중국 내 연간 장기이식을 1만 건 정도로 추산한다. 하지만 지난 2016년 발간된 'BLOODY HARVEST & THE SLAUGHTER 보고서'는 6만~10만 건으로 본다. 불법적인 장기 적출에 의해 이뤄지는 장기이식 때문에 생기는 격차다. 한국이 중국 불법 원정 장기이식의 주요 수요자라니 그 책임에서 우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건설업에서 국내 전체 산재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발생했다. 부산일보DB 건설업에서 국내 전체 산재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발생했다. 부산일보DB

지난해 국내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882명에 달했다. 건설업에서 전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발생했다. 2017년 기준 건설업 노동자 10만 명당 사고 사망자 수는 한국이 OECD 평균 8.29의 세 배 이상인 25.45로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전부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산재 사망사고는 이어지고 있다. 김훈 작가는 지난해 7월 국회 생명안전포럼 창립식에서 '우리는 숨 쉴 수 없다'는 제목의 이야기를 했다.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처럼 한국의 산업재해 희생자, 자살자들의 죽음도 사회적, 제도적 배경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조지 플로이드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는 숨 쉴 수 없다'고 외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인신공희와 인주(人柱)라는 야만은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 곁에 이름만 달라진 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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