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박찬욱 감독 “금자씨의 ‘너나 잘하세요’는 내가 친구에게 한 말”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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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비프 ‘리퀘스트시네마’ 10일 행사
16년 전 영화 '친절한 금자씨’ 관람 후 GV

2021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리퀘스트시네마 행사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이 10일 부산 중구 남포동 롯데시네마 대영에서 열린 영화 '친절한 금자씨' GV에서 영화 제작 뒷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영훈 인턴기자 2021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리퀘스트시네마 행사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이 10일 부산 중구 남포동 롯데시네마 대영에서 열린 영화 '친절한 금자씨' GV에서 영화 제작 뒷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영훈 인턴기자

역시 박찬욱 감독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에 거장 감독이 뜨니 관객들이 몰렸다. 10일 부산 중구 남포동 롯데시네마 대영에서 열린 리퀘스트시네마 ‘금자씨로 보는 광기의 형상’에서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가 상영됐다. 16년 만에 박 감독에게 영화 제작 뒷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인 만큼 기대감도 컸다. 영화관 밖에서는 혹시 남는 좌석이 없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감상한 박 감독은 “2005년 이후 DVD를 만들면서 한 번 더 보고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라며 “감독이 젊은 만큼 영화가 젊었구나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이날 GV는 ‘천절한 금자씨’ 상영회를 기획한 김수진 관객프로그래머가 진행을 맡고, 박찬욱 감독과 철학자 허경 박사가 참석했다.

허 박사는 프랑스 유학 때 유학생들이 한국영화제를 만들어서 ‘친절한 금자씨’를 상영했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영화를 상영하고 다음날 프랑스 신문 한 기자가 영화 오프닝 크레디트에 대해 ‘저렇게 아름다운 크레디트은 처음 본다’라고 글을 쓴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미국 업체가 싼값에 해주겠다고 해서 맡겼는데, 빨간 시럽이 나무에 떨어지고 피처럼 흘러내리는 것이 핵심 이미지인데 나중에 보니 다른 영화에 있더라”며 “나는 그 영화를 못 봐서 몰랐는데 나중에 한참 있다 알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2021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리퀘스트시네마 '금자씨로 보는 광기의 형상' GV 장면. 왼쪽부터 허경 박사, 박찬욱 감독, 김수진 관객프로그래머. 김영훈 인턴기자 2021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리퀘스트시네마 '금자씨로 보는 광기의 형상' GV 장면. 왼쪽부터 허경 박사, 박찬욱 감독, 김수진 관객프로그래머. 김영훈 인턴기자

‘친절한 금자씨’는 필름으로 찍은 영화이다. 박 감독은 “한국 밖에서는 필름을 원하는 사람은 아직 필름으로 찍지만, 한국은 너무 빨리 변해서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필름 영화의 질감에 대한 그리움을 밝히면서 박 감독은 “금자씨 모녀 납치 장면에서 송강호와 이영애가 몸싸움을 하는 부분은 노출을 잘못 설정해서 너무 어둡게 나왔다”고 필름의 한계도 같이 언급했다.


허경 “구원, 용서, 복수, 속죄 등 섞여 풍부한 해석 여지 있어”

박찬욱 “내 작품 독창적 해석으로 확장될 때 부자된 기분”

복수 뒤에 나타난 어른 원모 유지태 배우 ‘무언의 대사’

긴 세월 쏟은 성취 부정… “금자씨는 구원 받지 못했다” 연결


이번 리퀘스트시네마는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토대로 금자씨를 느껴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허경 박사는 “(영화 속 금자씨가 시행하는 복수라는) 목적은 미쳤는지 몰라도 실현하는 방법론이나 과정은 아주 합리적으로 되어 있다”며 “구원,용서, 복수, 속죄, 정의, 공정, 합법, 불법이 섞여 있어 풍부하게 해석이 될 수 있는 영화”라며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감독은 “해석의 중요성에 동의한다”며 “감독으로서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내 작품이 독창적 해석으로 풍부하게 확장될 때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와 함께 복수 3부작으로 불린다. 박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이 너무 흥행이 안돼 복수 3부작으로 제목을 붙이면 그 작품을 찾아보지 않을까 했다는 ‘속내’를 밝혀 객석에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금자씨의 경우 앞의 두 편과 다르고 (복수 3부작을) 정리하는 작품의 성격을 띄고 있다”고 전했다.

박 감독은 금자씨가 유괴 살해 당한 아이들의 유가족과 백 선생에 대한 복수를 논의하는 후반부는 연극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같은 느낌을 주려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복수가 거창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친구가 섭섭하게 해서 참을 수 없을 때 뭔가 은밀하게 해꼬지를 한다든가, 제3자에게 친구 험담을 하는 소심하고 사소한 복수가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벌어집니다. 광기라는 것도 거창하게 말하니 광기지, 사소한 미친 짓은 모두 하고 있습니다.”

사적 복수 행위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복수의 욕망을 가지거나 상상해보는 것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 같이 생생한 상상이 더 나쁜 행동을 막아주는 해독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신 그 상상이 어느 정도까지 가느냐가 광기로 넘어가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이성과 광기의 중간지대 어디에선가 발길을 돌려 이성이라는 영토로 복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박 감독은 그런 의미에서 “광기와 정상 사이를 가르는 선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한 사람이 미친 사람인지 가리기도 힘들다”고 덕붙였다.

2021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리퀘스트시네마 행사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 김영훈 인턴기자 2021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리퀘스트시네마 행사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 김영훈 인턴기자

영화 속 금자씨의 대사 “너나 잘하세요”는 존댓말과 반말이 섞인 이상한 뉘앙스를 가진다. 어떻게 번역을 해도 그 맛을 살릴 수 없어 고생을 했다는 이 대사는 박 감독 자신이 친구에게 직접 한 말이라고 했다.

“내가 쓴 각본이 영화사에서 너무 많이 거절을 당해 힘들던 때 친한 친구가 한번 읽어보자고 했습니다. 찻집에서 만나 제 각본을 보고는 투자자가 좋아하는 각본은 이런 것이며 네 각본에는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 설교를 하더라. 훈계를 듣다 듣다 마지막에 저 대사를 (친구에게) 날리고 나왔는데 제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와 스스로도 놀랐고 나와서도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영화에서 백 선생에 대한 복수가 끝나고 난 뒤 금자씨 앞에 어린 원모가 나타난다. 어린 원모가 똑같은 옷을 입은 유지태 배우로 바뀌고, 금자씨가 말을 하려는데 씁쓸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박 감독은 “원모가 말은 안하지만 표정으로 ‘틀렸어요. 나는 이렇게 만족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이라며 “금자씨가 긴 세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이룬 성취를 통째로 부정하는 무언의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이로 인해 나레이션 ‘금자씨는 끝내 구원받지 못했다’는 표현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박 감독은 영화를 보면서 이영해 배우가 정말 연기를 잘한다는 것을 다시 의식했다며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영애 씨에게 당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추한 표정을 연습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어떻게 해도 그 아름다움이 망가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오늘 광기의 관점에서 다시 영화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끝으로 1시간 동안 이어진 GV를 마쳤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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