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좋은 사람이라는 모호한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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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쉽지 않다. 물론 나와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사람 좋은 얼굴로, 좋은 사람인 척 할 수 있지만, 가까운 관계일수록 좋은 사람을 연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대체로 상대에게 익숙해져서 혹은 상대를 잘 안다고 판단해 상처를 주거나 받는다. 영화 ‘좋은 사람’의 ‘경석’도 그렇다. 모두가 좋은 사람으로 여기나, 가까운 사람에게는 불편하고 힘든 인물이다.

교실 내 도난 사건 발생 계기로
보고 싶지 않은 사실에 눈감아 온
진짜 감정 숨기고 ‘좋은 사람’ 역할만
‘좋은 선생님’ 경석의 민낯 드러나

인물 심리 밀도 있게 포착한 연출
주연 배우 히스테릭한 연기 ‘눈길’


고등학교 교사 경석의 반에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평범한 교실이라면 범인을 색출하는데 애쓸 테지만, 경석은 다른 선생들과 달리 돈을 훔친 범인을 찾기 위해 학생들을 꾸짖고 야단치지 않는다. 돈을 잃어버린 학생에게 자신의 돈을 건네주는 누가 봐도 모범적인 선생의 모습이다. 그렇게 사건이 잘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평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 당하면서 영화는 예측 불가능한 전개로 이어진다. 경석은 세익에게 무엇이든 믿어 줄 테니 진실을 말하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지만, 세익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해명하지 않는다. 무엇을 말하든 둘만의 비밀로 남겨두면 된다는 경석의 말에는 이미 세익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은 순차적으로 온다고 했던가. 그날 오후, 경석과 이혼한 지현이 딸 윤희를 하루만 돌봐달라는 부탁을 한다. 경석은 차마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딸을 데려온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윤희는 아빠인 경석을 두려워하며 대화하기를 거부한다. 경석은 어쩔 수 없이 윤희를 잠시 홀로 두고 남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학교로 가고, 그 사이 윤희는 경석을 피해 달아나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사고를 낸 가해자는 같은 시간 우연히 윤희와 함께 있던 세익이 윤희를 밀었기에 어쩔 수 없이 교통사고를 냈다고 주장하면서 영화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경석은 의심과 믿음 속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그 와중에 지현까지 경석을 몰아붙이자, 경석은 아빠를 싫어하는 윤희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기에 이른다. 또한 세익에게 친구가 없다는 사실은 전교생이 모두 알고 있는 일는 사실인데 정말 몰랐냐는, 반장의 질문을 통해 경석이 어떤 사람인지 눈치 챌 수 있다. 지금까지 그는 알고 싶지 않은 것, 보고 싶지 않은 사실에 눈 감아왔던 것이다. 이제 좋은 선생, 좋은 사람의 민낯이 조금씩 드러난다.

경석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고, 대체로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음을 역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며,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어야 할 순간이 올 때는 관계를 끊어냈다. 자신의 진짜 감정은 숨겨두고 좋은 사람으로만 남고자 한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가장 친밀한 관계여야 하는 아내와 딸과 소통에 실패했으며, 홀로 고립되어 외롭게 지냈다. 자신의 마음을 터놓지 않으니 그의 말을 신뢰하는 사람도 없다. 세익은 진실을 말하면 믿어준다는 경석의 말이 말뿐이라고 믿기에 결석 중이며, 돈을 잃어버린 학생에게 자신의 돈을 건네며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사건의 본질을 은폐한 일시적인 봉합이었을 뿐이다.

첫 장편영화를 연출한 정욱 감독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풀 수 없는 문제를 제시하며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미스터리 구조로 진행되는 만큼 인물의 심리를 밀도 있게 포착하는 영화다. 물론 영화가 다소 도식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미로처럼 엮인 인물의 내면을 풀어가는 우직함과 인물의 감정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좋은 사람’의 에너지는 강렬하다. 특히 경석 역을 맡은 김태훈 배우의 망설이고 갈등하고 분노하는 히스테릭한 연기는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몰입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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