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공론’ 빠진 공공예술, 누굴 위한 것인가
변은샘 사회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성숙한 시민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난달 28일 부산 동구청에서 열린 원탁토론회에서 한 구의원이 내뱉은 말이다. 그는 초량천에 세워진 공공조형물의 ‘흉물 논란’에 대해, 작가의 유명세와 작품의 가치를 주민이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정리한 것이다.
문제의 조형물은 지난 5월 초량천 입구에 설치된 공공조형물 ‘초량살림숲’이다. 놋그릇, 주전자와 같은 살림살이 도구를 쌓아 올려 만든 거대 조형물이다. 일상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작품이다. 그러나 설치 당일부터 주변 상인과 주민 사이에서는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다’ ‘성황당 같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이것이 과연 주민이 ‘예술을 잘 몰라서’ 벌어진 일일까. 초량천 조형물 논란의 핵심은 예술성도, 주민의 수준도 아니다. 공공예술에서 ‘공공’이 빠졌다는 게 핵심이다. 미술관이 아니라 주민의 일상 공간에 설치하는 예술품이라서다. 작품의 구상과 표현은 작가 개인의 사적인 영역일지 모른다. 그러나 공공의 지원을 받아 주민의 일상 공간에 설치하는 공공예술품이라면, 그것을 향유하는 주민까지도 고려했어야 했다. 일방적인 감상만을 강요할 요량이었다면 공공 프로젝트에 지원하지 말았어야 했다.
초량천 공공미술 프로젝트 어디에도 주민의 자리는 없었다. 공공미술 사업에 대한 공청회나 간담회는 열리지 않았다. 주민 의견을 심의하는 과정도 생략됐다. ‘공공’이 빠진 공공예술은 주민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전자민원창구에 올라온 관련 민원만 50개가 넘고 구의회, 시의회 모두 입 모아 주민의 반발 여론을 전했다.
뒤늦게 동구청은 토론회를 열어 주민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오히려 타오르는 불에 기름만 끼얹는 격이 됐다. 이 자리에서마저 주민들의 낮은 의식 수준을 지적하는 공무원과 구의원의 황당한 발언이 쏟아진 것이다. 해당 구의원은 “리움미술관에서는 그 작가를 왜 모르냐고 반문하더라”고 말했다. 공공조형물이라면서 그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주민이 아닌 작가의 이름값이 된 것이다. 당초 공공예술 사업을 진행하는 주체가 ‘공공’보다 예술론에 지우쳐 있다는 것이 드러난 대목이다.
공공예술은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가져가야 할 화두다. 건축물을 지을 때 미술 작품 설치를 의무화하는 ‘건축물 미술 작품 제도’가 법제화돼 있다. 더욱이 북항 재개발로 대거 신축이 예고된 부산에서 공공조형물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그때마다 이번과 같은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할 수는 없다. ‘시민의 일상공간에 어떤 예술품을 가져다 놓을 것인가’보다 ‘예술품으로 어떻게 시민의 삶을 더 유익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전환돼야 할 때다. 공공예술에서 주민과 소통 없이 환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iams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