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부산 경제계 세대교체는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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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숨죽이고 있던 대한민국 산업계가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삼성을 시작으로 네이버, 현대 등 주요 기업에서 세대교체와 산업 구조 변화 바람이 무섭다. 변화를 주도하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미국 출장을 마치고 “시장의 처절한 목소리,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니 마음이 무겁다”면서 대표이사 전원 교체라는 초강수를 뒀다. (주)LG는 신임 상무 132명 가운데 과반인 82명(62%)이 40대였다. 한국 대표 IT기업인 네이버는 1981년생을 대표로 내정했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를 주도할 핵심 인재’로의 세대교체는 당연한 생존 전략일 수밖에 없다. “왕년에 내가~”라며 ‘잘하고 있던 것’만 고집할 수 있는 시대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삼성 LG 등 80년대생 전진 배치
급변하는 산업 생태계 적응 절실
과거 성공 방정식에서 탈피해야
 
부산 경제계만 변화 없는 무풍지대
부산, 전국 100대 기업 아예 없어
젊은 혁신으로 지역 경제 견인해야

블록체인 업체로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할아버지들로부터 “조경회사냐”는 문의도 받는다는 창업 10년 차 회사의 올해 9개월 누적 매출은 2조 8209억 원. 부산 1, 2위인 르노삼성자동차(3조 3008억 원), 부산은행(2조 5649억 원)의 1년 매출과 엇비슷하다. 영업이익(2조 5939억 원)은 부산은행(4227억 원)보다 최소 6배 많다. 산업 생태계의 급변, 부의 이동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공장 하나 없는 카카오그룹이 삼성, SK, LG, 현대차그룹에 이어 시가총액 기준 5위에 오른 뉴스는 이제는 새롭지도 않다.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디지털·모빌리티 혁명 시대에 대한민국과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세대교체를 통한 ‘창조적 혁신’이 절실하다. 이미 선진국인 대한민국은 ‘베낄 곳도 없고, 베껴서는 생존할 수도 없는’ 글로벌 첨단산업 전쟁에 급속도로 편입되고 있다. “미래 세상과 산업의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면서 생존 환경이 극적으로 바뀌고 있다. 뒤따라오는 기업과의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 이유도 우리가 겪는 변화의 속도와 위기감이 엄중하기 때문이다. 사업 성공의 비결이 과거에는 경험과 지혜, 인적 네트워크와 사람 관리 능력이었다면, 지금은 빠른 학습 능력과 창의성으로 바뀐 지 오래다.

부산 경제계만 무풍지대다. “부산에 회장은 있고, 기업은 없다”는 푸념이 회자하고 있다. 사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회장들은 많지만, 새로운 비전과 경쟁력으로 기업을 미래 트렌드에 맞게 고도화 하는 회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출근해서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말 한마디에 젊은 직원들의 창의성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내 것만 지키겠다”며 안주하면, ‘끓는 물의 청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 갈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100대 기업 명단에 부산 기업은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전국 1000대 기업 중에는 29개사로 2008년(55개사)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대한민국 제2 도시의 초라한 현실이다. 29개사조차 조선, 자동차, 철강, 신발·고무 등 전통 산업이다. 서울과 세상이 뛸 때 부산은 제자리걸음조차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구태의연한 기업은 지역 인재를 품는 넓은 그릇이 되지 못한다. “쓸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 회사가 없어서”라는 지역 청년들의 장탄식을 아파해야 한다. 반지하방이라도 비전을 찾아 서울로 떠나는 자식들을 무력하게 지켜본 것이 지난 30년의 역사다. 물론,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난과 고통스럽게 싸워 오늘의 풍요를 만든 부산 창업 1세대들의 삶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보수적인 기업 풍토에서 ‘세대교체’를 논하는 것조차 금기로 여기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세대는 그 시대의 역할과 흐름이 있다. 역할이 마무리되면 주인공들의 연령은 높아지고, 창조적 사고와 습득 능력, 역동성이 떨어진다. 글로벌 사고와 디지털 역량으로 무장한 세대의 전진 배치가 필요한 이유다.

“내가 갖고 있는 오래된 상식, 경험이 새로운 시대에도 유효한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기존 질서의 붕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새로운 문명에 올라타기를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은 바뀌고 있다. 어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얼마나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끊임없이 새로운 문명을 학습하고 변신하며 기회를 창조하는 시대다.” 저자인 최재봉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교수의 지적은 부산 기업인들이 곱새겨 들을 만하다.

지역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부산시와 지역 정계, 청와대만 탓할 것이 아니라, 미래 100년을 위해 실질적인 플레이어인 기업과 ‘회장님들’이 세대교체를 통해 혁신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 경제계는 ‘1980년대생이 온다’가 아니라 80년대생이 이미 왔다. 지역에 절실한 것은 사람이고, 세대교체다.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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