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업무도 벅찬데…지자체장 홍보·선관위 선거 준비 동원 ‘삼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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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확산으로 방역행정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부산지역 일부 기초지자체가 공무원을 내년 선거 준비에 내몰아 공무원들이 ‘3중고’에 시달린다는 원성이 쏟아진다. 방역 행정에 지칠대로 지친 상황에서 차기 구청장 선거 준비에 선거관리위원회 선거사무에까지 동원되면서 공무원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는 불만이 높다.

22일 연제구청에 따르면 내년 1월 3~7일 ‘새해 주민과의 대화’가 열린다. 이성문 연제구청장이 10여 개 동 행정주민센터를 돌면서 100명 미만 구민들을 상대로 그간의 성과를 공유하고 건의사항을 청취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각 행정복지센터에서는 새해 주민 소원 영상이나 동별로 특화된 이벤트 등을 준비할 계획이다.

재난지원금 등 코로나 업무로 녹초된 공무원
구청장 주민소통행사까지 챙기고
선관위 선거 사무 활동까지 해야 할 판
16개 구·군 공무원 노조, 선관위 항의 방문

최근 이 같은 행사 추진계획이 발표되자 구청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접촉자 검사, 자가격리자 관리 등 방역 업무가 불어난 데다 재난지원금 지급 기간이라 행정 업무가 포화상태인데 구청장의 선거활동에도 동원된다는 불만이었다. 연제구청 공무원 A 씨는 “코로나로 엄중한 시기인데 선거를 앞두고 급히 주민을 한 곳에 모은다고 하니 내부에서 뒷말이 많다”며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준비하는 행사에 주민을 일일이 초청하고, 행사장소와 집기, 이벤트 준비까지 하려면 가뜩이나 부족한 일손이 더 빠듯해질 판”이라고 호소했다.

반발 여론이 커지자 구청 측은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연제구청 자치지원과 관계자는 “코로나 확진세가 계속된다면 검토해보겠다”면서도 “현재까지 계획이 변경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부산지역 하루 확진자가 400명을 돌파한 시기에 구청장이 주민소통행사를 여는 것은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제구청은 내년 1월 7일까지 행사를 진행하는데, 그 다음 날인 8일은 대통령 선거일(3.9) 전 60일에 해당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선거일 6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정책이나 정강 등의 홍보가 금지된다. 공교롭게도 연제구청은 선거법에 위배되지 않는 직전 날까지 행사를 진행한다. 주민소통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하거나 검토 중인 강서구(1월 4~7일), 금정구(1월 4~7일), 사하구(이달 28일~1월 5일) 모두 다음 달 8일 직전에 행사를 마친다.

공무원들은 구청 밖에서도 선거 준비에 동원되자 ‘한계에 달했다’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22일 연제구 선거관리위원회 항의 방문을 마지막으로 현재 16개 구·군 공무원 노조 모두 각 구·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 방문을 했다. 전국공무원노조 부산지부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선관위 측에 선거업무 강제동원을 중지하라는 내용을 전달했다.

현재 투표사무의 65%, 개표사무의 40%가 기초지자체 공무원으로 충원되고 있다. 투·개표 사무원의 대부분이 기초지자체 공무원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선관위 측에서 협조 공문을 보내면 구청별로 인원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노조는 그동안 선거철마다 기초지자체 공무원이 사실상 강제동원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5월 법원이 ‘선거사무원 위촉은 자율참여에 근거하며, 상호 의사가 합치되지 않으면 누구나 거부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공무원노조 측은 처우개선, 인력 충원 등 대책이 없으면 협조를 거부하겠다고 나섰다.

전국공무원노조 부산지역본부 추승진 정책부장은 “하루 16시간가량 투·개표에 동원되지만 받는 수당은 10만 원 안팎에 그친다”며 “코로나에 선거업무까지 과중된 상황에서 열악한 처우와 선거관리원이 기초지자체 공무원에 편중된 현행 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이번 선거 참여에 공무원들은 동의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선관위 측은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부산시선관위 선거과 관계자는 “선거관리원들의 수당 등 처우에 물가상승률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해 내년 예산안에 수당과 식대 인상을 반영했다”며 “선거관리 인력 동원 방식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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