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드라이브] '비틀스보다 비싼 아이유' 유행은 돌고, LP 가격도 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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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극적인 제목으로 '어그로'를 끈 점, 비틀스와 아이유 팬들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 드린다.
굳이 두 뮤지션을 끌어들여 제목으로 쓴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몇 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LP 시장을 대표하는 국내·외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미국 닐슨 뮤직에 따르면 2010~2019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LP는 1969년 비틀스의 '애비 로드'다. 컴 투게더(Come Together)·섬씽(Something) 등 히트곡이 담겼다. 55만 8000장이 팔렸는데 2019년에만 무려 26만 장이 나갔다.
2014년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는 LP로도 한정 판매되었다. '나의 옛날 이야기', '너의 의미' 등 명곡이 수록됐다. 출시가격은 '3만~4만 원'대. 그러나 2022년 기준, 프리미엄이 붙고 붙어 중고가는 무려 '300만 원'에 달한다. 이것마저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 그래서 기사의 제목을 정확히 말하면 '비틀스보다 비싼 아이유'라는 말은 '꽃갈피'의 가격에만 해당하는 말이다.
구시대의 유물이자, 뮤직박스에 DJ가 앉아있던 시절 볼 수 있었던 LP가 어떻게 다시 인기를 끌게 됐을까?
LP의 어떤 매력이 MZ 세대들의 마음을 훔쳐 지갑을 열게 했을까?
■ 부활한 LP? 요즘 LP는 '활황'
LP는 음반 규격의 일종으로 '장시간 음반'(Long Playing Record)이라는 말이다. 1948년 LP가 탄생한 이후 초기 축음기에 쓰이던 SP(Standard Playing Record)에 비해 훨씬 긴 재생 시간을 가지고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 음반의 재질이 플라스틱(Vinyl)으로 제조되어 영어권에서는 '바이닐'로도 불린다.
최근 전 세계 음반 시장의 핫이슈는 'LP의 활황'이다. 2020년 상반기, 미국에서는 LP가 CD보다 많이 판매됐다. LP 판매량이 CD를 추월한 건 1986년 이후 34년 만의 일이다. 미국 음반 산업 협회 (Record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LP의 판매량은 약 2억 3210만 달러로 같은 기간 CD 판매량은 약 1억 2990만 달러였다. 그해 미국에서 판매된 LP는 약 2750만 장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내 음반 판매 사이트 예스24에 따르면 2018년부터 3년간 LP 판매 관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0년 LP 판매량이 2019년 대비 73.1% 증가했다.
■ 이문세에서 씨엘까지
LP의 인기에 힘입어 오래된(?) 가수들의 앨범이 LP로 다시 나오고, 아이돌도 LP 발매에 힘을 쏟는다.
1990년 가수 이문세의 베스트앨범 '골든베스트14'는 지난해 재발매한 뒤 큰 인기를 얻었다. 올 2월 가수 이상은의 5집 '언젠가는'과 6집 '공무도하가'와 이적의 1집 'Dead End' 등이 LP로 재발매될 예정이고, 봄여름가을겨울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앨범 발매 20주년을 기념해 올 하반기 LP 발매를 계획 중이다.
또 아이돌 가수 씨엘도 자신의 첫 솔로 정규 앨범인 ‘ALPHA’를 내달 LP로도 발매한다.
이들 LP는 대부분 예약 판매로 당일 완판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대학생 이정민 씨는 "CD보다 더 구하기 어려운 게 LP 음반"이라며 "발매 날을 기다려 '광클'하지만 못 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갑자기 높아진 LP의 인기에 오래된 레코드점들도 다시 활력이 돌고 있다. 부산의 중앙동 명성레코드 주인 정도일 씨는 "30년 넘게 레코드점을 하고 있는데, 어린 친구들이 LP를 사러 오는게 신기하다"며 "김광석, 유재하 등 7080 세대가 좋아할 만한 가수의 음반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 MZ세대 저격한 오래된 LP
음악은 항상 우리 곁에 존재했다. 그러나 음악은 악기 또는 가수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경우를 제외하곤, 모두 별도의 저장매체에 저장된 음원을 듣는 형식이다. 1948년 LP가 발명된 이후 1970년대까진 턴테이블 위의 LP가 음악을 전달했다. 이후 '마이마이' 안 카세트테이프가, CD플레이어 속 CD, 그리고 mp3 파일, 현재는 디지털 스트리밍이라는 형식으로 음악은 존재한다.
디지털이 '네이티브' 상태인 MZ 세대에게 LP는 옛날 물건이 아니라 새로운 물건이다. MZ세대가 즐겨 찾는 카페와 음식점에는 어김없이 LP와 앨범재킷으로 장식되어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월 7900원 정도면 전 세계 모든 가수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를 살면서, 왜 그들은 LP를 선택한 걸까?
레코드점에서 만난 평범한 사회초년생 장영민 씨는 "LP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이 좋다"며 "주말에 좋아하는 LP를 틀어 놓고 휴식을 즐기는 게 요즘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했다. 또 "옛날 가수들의 옛날 음악은 왠지 LP로 들어야 '제대로' 듣는 방법같다"고 덧붙였다.
■ LP로 재테크를?
물론 MZ 세대는 음악을 '듣는' 용도로만 LP를 사지는 않는다. 스스로를 아이돌 덕후라고 칭하는 조민성 씨는 "좋아하는 아이돌의 '굿즈' 개념으로 LP를 사서 모은다"며 "'최애'의 사진이 실린 재킷은 마치 화보집을 보는 듯한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특히 "대부분의 LP가 한정판으로 발매되다 보니 희소성이 높다"고 말했다.
단순히 '유행'을 쫒는 무리도 있다. LP를 유행하는 장식품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명성레코드 정도일 사장은 "미적으로 뛰어난 앨범 재킷은 유명한 미술작품만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며 "가게를 찾는 사람들 중에서 턴테이블이 없는데도 LP를 사거나, 판 없이 앨범 재킷만 팔아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희소성이 높고, 유행하는 상품에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한정판 스니커즈 시장이 떠올랐듯, LP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 정가로 샀다 수십 배 웃돈을 얹어 되파는 '리셀러'도 많아지고 있다. 정도일 사장은 "판도 재테크가 된다"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개봉 후 몇몇 사람들이 퀸 앨범을 쓸어갔다"고 말했다. "그때 당시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리셀러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LP는 새롭게 생산되는 양이 거의 없다 보니 중고거래 시장이 어떤 상품들보다 활성화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MZ의 세대의 유입은 'LP 판테크' 시장에 기름을 부었다.
■ 천정부지, 국내 가요 LP 가격
아이유의 '꽃갈피'는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100만 원에서 시작한다. 미개봉이나 '민트급'의 경우 호가는 300만 원이다. 물론 아이유의 앨범만 이런 가격은 아니다. 일부 희귀·초판 LP도 가격이 세다. 수요가 많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유독 '국내 가요' 가격만 뛰고 있다는 점이다. 17일 현재 가수 아델의 4집 '30'은 3만 3500원, 지난해 재발매 된 샘 스미스의 1집 'In The Lonely Hour'는 3만 7900원에 팔리고 있다.
정도일 사장은 "팝과 클래식은 가격 변동이 거의 없다"며 "1, 2년 사이 국내 가요 LP 가격이 많이 올랐고 프리미엄이 붙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예스24에 따르면 2020년 가요 LP 판매량의 경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판매량이 262.4%나 급성장했다.
국내 가요 LP에 대한 '리셀'이 성행하자 LP로 음악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가수 이승환은 지난해 10월 발매한 LP ‘폴 투 플라이’ 한정판이 리셀러들에 의해 되팔이 되자 SNS를 통해 "(앨범을) 사지 마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일부에선 보다 안정적인 LP 시장을 위해 한정 판매 방식이 아닌 선구매 등 수요를 미리 파악해 생산하는 방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 아날로그의 귀환
LP가 MZ세대에게 인기를 끌자 '아날로그 가치'에 대한 재평가도 이뤄지고 있다.
이런 경험 해본 적 없나? 음원 스트리밍 앱을 열어 터치 한 번으로 노래를 재생했다. 그러다 곧 "이 노래보다 더 좋은 노래 없을까?"라는 생각에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노래를 기웃거린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는 사이에 음악은 끝나버리고 무슨 노래를 들었는지, 가사는 어땠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경험.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영상이 있지만 정작 내가 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하게 만든다. 프로그램 목록만 넘겨보다 잠들기 일쑤다.
뭔가 빠진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날로드의 반격>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바로 그 빠진 부분, 디지털에서 잃어버린 그 무엇을 '아날로그'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즐거움'이다. 레코드점에서 빽빽이 꽂힌 LP를 한 장 한 장 꺼내보며 비교한다. 재킷 디자인, 녹음 연도, 프로듀싱, LP 상태 등을 비교한 후 집으로 가져온다. 포장을 뜯어 가사집, 화보 등 구성품을 감상한다. 턴테이블의 전원을 켜고 바늘을 정성스레 LP 위에 내려놓는다. 그전에 손과 입으로 LP판 위의 먼지들을 청소하기도 한다. 바늘이 LP의 표면을 긁으면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들리고, 곧 음악이 흐른다. MZ세대에게 LP의 성가시고 번거로움은, 곧 새로운 즐거움이다.
장영민 씨는 "LP를 사면 그 노래가 완전히 '내 것'이 되는 느낌이 든다"며 "생각날 때마다 꺼내 들을 수 있는, 나와 평생 함께하는 노래가 된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복제되고 공유되는 디지털 환경에서 LP를 통해 내 취향을 저격하는 '내 가수'와 '내 음악'을 찾는 일은, 음악을 '소유'하는 기쁨을 준다는 말이다.
LP는 다시 부활했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 아이돌 굿즈의 한 종류로, 리셀을 통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이유는 많지만 어쨌든 MZ세대가 LP를 즐기는, 아날로그를 즐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