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드라이브]'부산의 명물' 물떡의 원래 이름은 물떡이 아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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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하나요."

날이 차가워지면 부산 길거리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떡 하나 달라고? 떡볶이 1인분이라는 뜻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손이 어묵이 익고 있는 쪽으로 가는 걸 본다면 순간 의문이 들 것이다. 게다가 긴 꼬치를 잡는다. 꼬치 끝에 당연히 있어야 할 어묵은 없고 대신 말랑말랑한 가래떡이 있다. 물떡은 떡오뎅, 떡꼬치 등으로 불리며 부산·경남 지역을 벗어나면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음식이다.

물떡은 간장과 궁합도 좋다. 장병진 기자 물떡은 간장과 궁합도 좋다. 장병진 기자

■물떡은 무슨 맛인가

부산 중구 남포동 포장마차들이 즐비한 거리. 부산에서 인기가 많은 씨앗 호떡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리지만 물떡에 대한 관심도 최근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처음보는 음식에 대한 두려움은 늘 있는 법.

가래떡을 어묵 국물에 푹 끓인 맛은 딱 상상이 안 된다. 대구에서 부산으로 여행 온 김종걸(40) 씨는 "부산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묵은 확실히 맛있는데 옆에 있는 물떡은 사실 먹기가 걱정이 된다"며 "그냥 물에 불은 떡 맛이 아닐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물떡을 한 번 맛본 이들은 그 '감칠맛(감칠맛이라 쓰지만 사실 짭조름함)'에 매료된다고 한다. 물컹거리는 식감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물컹보다는 쫄깃에 가깝다.

부산 동구 수정동의 분식점에서는 "어묵 5개가 나가면 물떡은 2개 정도가 나간다"며 "특히 남성보다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물떡과 어묵은 보통 700~1000원을 받는데 원재료 가격은 가래떡이 더 비싸다.


어묵 국물에 가래떡을 넣어서 먹는 '물떡'. 오른쪽 위에 있는 떡들은 떡볶이에 들어갈 떡들이다. 장병진 기자 어묵 국물에 가래떡을 넣어서 먹는 '물떡'. 오른쪽 위에 있는 떡들은 떡볶이에 들어갈 떡들이다. 장병진 기자

■부산 어묵의 숨은 맛 비결은 물떡

'이상하게 부산에서 먹는 어묵은 더 맛있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묵은 기본적으로 추워야 더 맛있는데 따뜻한 부산에서 어묵이 더 맛이 있을 리가 없다.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최원준 시인은 "비밀은 국물에 있다"고 설명한다.

물떡은 어묵과 같은 육수에 오랜시간 끓인다. 잔잔한 불에 오래 끓이다 보니 안에 육수가 잘 배이고 반대로 떡에 있는 성분들이 밖으로 나온다. 그래서 색깔이 어묵만 조리했을 때에 비해 탁하다.

하지만 그 맛이 감칠맛의 비밀이기도 하다. 최원준 시인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끓일 때 쌀뜨물로 요리를 하면 더 구수하고 맛이 있지 않나"며 "물떡에 육수가 배어 맛있게도 되지만 물떡 때문에 어묵 국물이 더 맛있어지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물떡은 간장? 떡볶이 소스?

부산 물떡을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대중적인 것은 사실 그냥 먹는 것이다. 이미 육수가 촉촉이 배여 있기에 충분히 맛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오래 육수에서 데워져 약간 흐물흐물한 상태인 경우가 더 맛있다.

간장을 찍어먹는 이들도 많다. 어묵 국물이 배여있는 만큼 기본적으로 조합이 좋다. 물떡이 심심하다 싶은 이들은 간장에 있는 청양고추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남포동 먹자골목 상인들은 물떡과 함께 부평동 일대 명물인 오징어무침과의 궁합을 강조하며 물떡을 시도해볼 것으로 권유하기도 한다. 초장 느낌이랑 섞이는 물떡의 맛도 나쁘진 않다.

떡볶이 소스도 좋은 궁합이다. 아예 떡볶이를 달라고 하면 물떡을 잘라서 주는 경우도 있다. 부평동 사거리분식 관계자는 "그냥 떡볶이보다 물떡을 사용하면 양념이 묻어있지 않아도 특유의 맛이 살아있어 한 입 베어먹고 다시 양념을 찍을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부산 중구 남포동 먹자골목. 물떡은 메뉴판에 없지만 없는 곳은 없다. 장병진 기자 부산 중구 남포동 먹자골목. 물떡은 메뉴판에 없지만 없는 곳은 없다. 장병진 기자

■물떡의 원래 이름은 '떡'

물떡이 언제부터 시작됐다는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주변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1960년대에도 이미 물떡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부산에서만 물떡이 널리 퍼진 배경에는 어묵이 흔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원준 시인은 "부산은 수산업이 발달해 어묵이 흔한 편이라 간식으로 때로는 식사 대용으로 어묵을 많이 먹었을 거로 보인다"며 "'곡기'를 중시여기던 사람들이 어묵만으로는 허전해 떡으로 대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물떡이라는 이름도 없었다.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부평시장 상인들의 말을 정리하면 관광객들이 오면서 떡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어려워 물떡, 떡꼬치, 떡오뎅 등의 이름으로 불려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어르신들은 "떡 하나 묵고 가라"라고 하는 분들이 많다. 원래 이름은 그냥 '떡'이었던 셈이다.

가게에서도 물떡은 아예 메뉴가 없다. 그냥 어묵이랑 같다. 20년 이상 영업을 했다는 남포동 먹자골목 상인은 "원래 오뎅이랑 물떡은 같은 개념으로 메뉴에 안 뒀다"고 말했다.


부평시장을 찾은 관광객들은 부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물떡을 많이 찾는다. 장병진 기자 부평시장을 찾은 관광객들은 부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물떡을 많이 찾는다. 장병진 기자

■부산의 특색이 있어 더 좋다

부산 어묵은 이미 전국적인 네임 밸류를 가지고 있다. 반면 단짝 음식인 물떡은 함께 진출하지 못하고 경상도에만 남아있다. 이는 아마 부산 어묵을 생산하던 업체들이 대기업화, 베이커리화의 과정을 통해 전국구화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물론 떡을 감싼 어묵도 있지만 물떡만큼의 역할을 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뜨끈한 어묵과 쫄깃한 떡의 조합은 좋은 간식거리이자 관광객에게는 좋은 도전거리다. 물떡을 설명하면 '어묵 국물에 퉁퉁 불린 떡이라니'라고 대답이 먼저 나올 정도로 도전적인 음식이다. 게다가 부산, 경남 일대가 아니고는 먹을 기회도 없고 값도 싸니 언제든지 포기해도 된다. 최원준 시인은 "물떡은 부산에서만 맛볼 수 있기에 재미있는 음식이자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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