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지방의 대선 관전법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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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대선 양강 구도가 점차 굳어지는 추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17일 유세 버스 사고로 숨진 고(故) 손평오 논산·계룡·금산 지역선대위원장의 빈소가 마련된 천안 단국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대선 양강 구도가 점차 굳어지는 추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17일 유세 버스 사고로 숨진 고(故) 손평오 논산·계룡·금산 지역선대위원장의 빈소가 마련된 천안 단국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제20대 대통령선거가 17일로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운동 첫날인 15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유세 버스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해 정국에 미칠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 ‘정치 보복’ 논란을 계기로 지지자 결속이 가속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양강 구도도 갈수록 도드라지는 양상이다. 지방에 살든 수도권에 살든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 모두 이 구도를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골치 아픈 ‘유권자의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이번 선거는 최악이다. 차악도 없다. 누가 되더라도 암울하다.” 우리 시대의 정치 9단(?)으로 평가받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 출판기념회에서 한 말이다. 이쯤 되면 정치판을 기웃거릴 하등의 이유도, 관심도 없는 시중의 장삼이사들이야말로 진짜 골 싸매게 생겼다. 이 후보가 당선되면 문재인 정부보다 더 폭주할 거고, 윤 후보가 당선되면 여소야대로 2년간 식물 대통령으로 지낼 것이라는 게 고수의 훈수이다 보니 어찌 골치 아프지 않겠는가.


‘차악도 없다’는 비호감 대선

양강 구도 뚜렷… 유권자 고민 깊어

 

‘지방 있어야 나라 있다’ 인식 전환

발 딛고 사는 데서 선거 바라봐야

 

이 ‘연방제 개헌’·윤 ‘집무실 세종 이전’

제왕적 권력 내려놓는 게 승부 관건


폭주 대통령이냐, 식물 대통령이냐. 이런 구도라면 유권자보다는 정치판에 더 비상이 걸릴 만하다. 선거판이 죽자 살자 전쟁터로 전락하는 이유다. 거기다 유권자들의 정치불신은 오죽한가. 이번 대선에서 변화의 이니셔티브를 쥐지 못하면 욕먹으며 버티던 정치판에서도 나가떨어져야 할 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땐 차라리 받아들이고 즐기라 했던가. 한발 물러나 선거판을 바라보는 것도 유권자가 누리는 권리다.

지방 유권자의 대선 관전법이 필요한 이유다. 불행하게도 나라를 위해 몸 바쳐야 한다는 애국주의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 ‘이게 나라냐’에서 ‘나라가 해 준 게 뭐냐’에 이르기까지 유례없는 국가 불신 시대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곧 나라’라며 국민 위에 군림해 온 한 줌 정치권력의 명분과 설 자리가 갈수록 없어져 간다. 내가 있고 난 후에 발 딛고 살아가는 지방이 있고, 지방이 있고 난 뒤에라야 나라도 있는 법인데 지방소멸 시대에 나라 걱정이라니 가당키나 한가. 거듭 말하자면 지금은 나라 걱정보다는 ‘발등의 불’인 지방소멸을 걱정할 때다.

“ 지방은 이거 먹고 떨어져라”는 식의 선거운동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유대인들은 자식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다고 했던가. 지혜로운 이들은 문제를 근원에서 파악해 구조적으로 해결한다. 지방이 스스로 먹고살 길을 열어 주기보다는 징징거리며 우는 아이에게 임시방편으로 빵 한 조각, 생선 한 조각 던져 주는 게 이 땅의 정치 방식이었다. 그렇게 권력은 특정 계층, 특정 지역으로 중앙화, 집중화됐다.

세상은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다. 그 사람이 발 딛고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서 멀어져 간 권리를 되찾아 와야 할 때다. 로컬의 시대는 지방 유권자가 주권자로 우뚝 설 것을 요구한다. 국가가 관념 덩어리라면 지방은 구체적인 실체다. 지방이 없으면 국가도 없기 때문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양강’ 후보들의 대선 공약을 보면 여전히 지방의 성에 차지 않는다. 후보자와 당의 시대정신을 담았다는 10대 공약을 보면 이 후보는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 균형발전’을 4번째로, 윤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출 때는 빠졌다가 오는 23일 각 가정에 발송되는 책자형 선거공보물에는 9번째로 ‘균형발전’을 넣는다고 한다.

부산이라는 각론으로 들어가 보자. 선거운동 첫날 경부선 상행선·하행선을 타고 부산에서 바로 격돌한 양강은 ‘남부수도권 중심도시’ ‘세계 최고 해양도시’로 맞섰다. 이 후보는 수도권에 맞서는 중심에 부산을 놓았고, 윤 후보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과 부울경 GTX 건설 카드를 뽑아 들었다. 전국을 돌며 우선 ‘던지고 보자’는 식의 지방공약이 잇따른다는 지적도 있다.

후보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지방이 원하는 건 ‘잠깐 사는’ 길이 아니라 ‘계속하여 사는’ 길이다. 지방소멸을 방지하고 균형발전을 달성할 근본적인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안을 내놓은 이 후보는 지방자치 연방제 개헌을 추진할 용의는 없나. 청와대를 떠나 서울 광화문에 대통령실을 마련하겠다는 윤 후보는 아예 세종시로 옮겨 행정수도를 완성할 의향은 없나.

3·9 대선까지 스무날도 남지 않았다. 양강의 박빙 승부전이 펼쳐지고 있지만 좀체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이다. 이번 비호감 대선의 시대정신은 ‘분권’이다. 중앙집권화된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얼마나 내려놓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하라고 했다. 선거든 전쟁이든 더 절박한 쪽이 이기게 마련이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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