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나는 구독한다, 고로 존재한다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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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에디터

목하 방송 중인 KBS2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 이제 시청자들은 정규 방송을 놓친다 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웨이브(wavve)에서 다시보기가 가능해서다.

JTBC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은 티빙(TVING)에서 VOD(다시보기)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들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월정 요금을 내고 구독해야 한다.


콘텐츠, 소비재, 서비스 등

‘구독 모델’ 생활 경제 확산

웹3.0, 메타버스도 구독 기반

미래는 ‘구독 경제’가 대세

인류는 ‘구독하는 인간’

‘호모 서브스크립토’ 진화 중


한데, 웨이브에 가면 〈기상청 사람들〉을 볼 수 없고 티빙은 〈신사와 아가씨〉를 제공하지 않는다. 웨이브가 SK와 지상파 3사, 즉 통신-방송 연합체인 반면 티빙이 CJ ENM-네이버-JTBC 합작이라는 경쟁 구도여서 그렇다.

하지만 왓차플레이, 쿠팡플레이, KT의 시즌, LGU+의 U+모바일에 가면 웨이브와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가 전방위적으로 서비스된다. 해외 콘텐츠에 강점이 있는 넷플릭스조차 일찌감치 유통 파트너십을 체결해 국내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다. 여기에 유튜브 프리미엄, 애플tv, 디즈니 플러스까지 가세했다.

이른바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한 TV 서비스) 전성시대다. 통신과 콘텐츠를 모두 집어삼킨 OTT는 대체 불가한 생활필수품이 되고 말았다.

OTT 홍수 사태는 현명한 콘텐츠 소비자가 스스로를 진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어떤 OTT 조합을 선택할 것인가! 대체로 복수의 OTT를 선택하기 마련인데, 취향에 맞으면서 가장 경제적인 구독 조합을 찾는다.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돈을 지불하고 이용하기 때문에 비용과 만족이라는 경제학적 효용 이론이 적용되는 대목이다. 수동에서 능동 소비로 전환되는 점에서는 콘텐츠 소비자의 진화로 해석할 수 있다.

무제한 스트리밍을 앞세워 OTT 시장을 개척한 넷플릭스로부터 시작된 ‘정기 구독’의 습관이 모든 생활 경제 영역으로 확장됐다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때문에 현생 인류는 구독 플랫폼 중에 선택하는 훈련을 통해 진화하고 있다.

예컨대 신간 오디오북이나 신곡 음원을 월정 구독해서 듣거나, 면도기를 구매한 뒤 면도날을 정기 배달 받는 것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생수나 전통주, 꽃, 영양제 등 소소한 생필품을 정기적으로 배달 받는 것은 흔해졌다.

심지어 자동차 판매에까지 구독 서비스가 차용되고 있다. 헬스클럽이나 카페, 주점에서 월정 구독 마케팅을 도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구독 모델의 원조인 신문도 온라인 플랫폼에서 막강한 구독층을 거느린다. 예컨대 네이버 뉴스 채널에서 〈부산일보〉 구독자는 200만에 육박한다. 뉴스사이트 부산닷컴(busan.com)과 뉴스 앱, 페이스북, 유튜브 채널에는 각각 서로 다른 충성 독자가 부산일보 뉴스를 구독하고 있다.

뉴스레터 구독의 부상도 특징적이다. 모바일 화면에서 손쉽게 읽히는 유통의 편리함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무려 81개의 뉴스레터를 운용하고 있고 고정 독자가 충분히 확보되면 유료로 전환하고 있다.

비용과 만족의 관점에서 유료 뉴스레터에 지갑을 여는 정기 구독자층이 형성됐다는 의미다. 국내 언론사들이 앞다퉈 뉴스레터 독자 확보에 힘을 쏟고 있는 까닭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언론사가 아닌 곳에서 다양한 주제의 뉴스레터가 생산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일상이 영위되고 만족까지 얻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른바 ‘구독 경제’다. 웹3.0(블록체인/NFT)과 메타버스(AR/VR/XR)가 주도할 미래의 일상도 구독 기반으로 움직일 것은 자명하다. 구독 경제가 한층 확장되어 지배적인 경제 모델이 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이제 구독 행위는 단순한 소비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구독하는 행위에 정체성이 입혀지기 때문이다.

음식 관련 격언에서 음식 대신 ‘구독’을 넣어, ‘무엇을 구독하는지 알려 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 주겠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구독 리스트가 정체성에 직결되고, 존재론적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인류는 스스로를 동물과 구별짓는 특징으로 ‘직립(호모 에렉투스)’이나 ‘도구(호모 파베르)’에 이어 ‘생각’(호모 사피엔스)과 ‘유희(호모 루덴스)’를 사용했다.

이 리스트에 하나를 추가하고자 한다. 호모 서브스크립토(Homo Subscripto), 즉 구독인(購讀人)이다.

현생 인류는 구독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구독 선택에 따라 퇴보와 진보가 엇갈리는 세상이 다가온다.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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