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 부산] ① ‘즐거운 비명’이 가득하던 곳 추억의 놀이동산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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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코드 부산’은 사라진 부산 추억의 장소를 독자들의 사연과 <부산일보> 소장 사진·기사로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2010년 부산 부산진구 초읍 어린이대공원 내부에 있던 동마 놀이동산 입구의 모습. 부산일보 DB. 일러스트=이지민 에디터 mingmini@ 2010년 부산 부산진구 초읍 어린이대공원 내부에 있던 동마 놀이동산 입구의 모습. 부산일보 DB. 일러스트=이지민 에디터 mingmini@

부산은 올해 초까지 놀이공원이 하나도 없는 도시였습니다. 놀이공원에 가려면 양산이나 대구 경주 등으로 원정을 가야만 했죠.

이달 31일 부산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정식으로 문을 열면서 오랜만에 들어서는 놀이공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데요.

부산에도 처음부터 놀이공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7곳의 놀이공원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금강공원 놀이시설, 태종대 자유랜드, 초읍 어린이대공원 놀이동산, 롯데월드 스카이 프라자, 광안리 미월드, 광안비치랜드, 영도 월드 카니발이 차례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운영기간 만료와 시설 노후화, 각종 사건사고 등으로 인해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됐는데요. 2019년 12월 마지막 남은 놀이시설인 광안비치랜드마저 문을 닫으면서, 이제는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민들은 이곳들을 어떻게 추억하고 있을까요.


■ 그때 그 시절


#광안비치랜드

중1이었을 때 광안비치랜드에서 가수 god 멤버 손호영 씨와 함께 타가다를 탔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사람들이 잘 못알아봤었는데 저는 바로 알아채고 악수도 했어요. 손호영 씨가 끼고 있던 팔찌까지 하나 주셨어요. 그 팔찌 고이 모셔놨는데 지금은 어디갔는지 모르겠네요. 어린 시절 부산에 놀이동산이 한참 많이 생겼는데, 갑자기 다 사라져서 아쉬운 마음이었어요. /금정구 30대 후반 전*화


#미월드

17~18년쯤 전에 일 마치고 광안리 회센터에서 회 먹고 미월드로 갔었죠. 친정아버지께서 ‘자이로드롭’ 같은 놀이기구를 신기해 하시면서 몇 번이고 타셨던 기억이 나네요. 신나게 놀고 집에 가려는데 가족들 차에 모두 불법주차 스티커가 붙어있었어요. 주차비 아끼려다 차량 4대 벌금만 왕창 냈었네요. 광안리하면 10대 20대들에게는 미월드랑 비치랜드는 핫한 곳이었는데 없어지니 부산이 후퇴하는 느낌이었어요. 또 놀이공원들도 시대의 흐름을 빨리 읽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 경남 양산시 46세 김은결


2011년 5월 촬영한 미월드의 전경입니다. 대관람차를 타면 광안대교와 광안리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왔었죠. 부산일보 DB 2011년 5월 촬영한 미월드의 전경입니다. 대관람차를 타면 광안대교와 광안리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왔었죠. 부산일보 DB

#부산어린이대공원 놀이동산

어린이날이나 주말이면 부모님이나 작은아빠가 사촌언니, 사촌동생, 오빠, 저 데리고 항상 어린이 대공원에 놀이기구 타러 갔었어요. 귀신의집, 88열차, 바이킹, 아폴로, 알라딘, 회전목마 등등 이젠 추억이네요. 초등학생 때는 단체로 놀러가서 밀가루 사탕 먹기, 보물찾기도 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놀이기구 타려고 입구에서 키도 재보고요. 없어진다는 얘기 듣고 많이 슬프고 안타까웠어요. 어릴 적부터 가족, 친구들과의 추억이 많았던 장소인데 이제는 기억과 사진 속에만 남아있다는 게 많이 안타깝죠. 그래도 부산에 다시 롯데월드가 생기니 기분은 좋더라고요. 이젠 오랫동안 있었으면 좋겠어요. / 부산 동구 30세 김민서


1993년 4월 부산 초읍 어린이대공원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의 모습. 부산일보 DB 1993년 4월 부산 초읍 어린이대공원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의 모습. 부산일보 DB

#태종대 자유랜드

영도 주민이라 유치원, 어린이집 소풍 필수 코스였어요. 주로 소풍으로 많이 갔고, 가족들이랑은 주말에 자주 갔어요. 초등학생 땐 친구들이랑 가기도 했는데 주로 회전목마나 다람쥐통 청룡열차 범버카 많이 탔어요. 바이킹은 안전바가 붕붕 떠서 무서워서 울면서 내려달라고도 했었는데 다른 놀이동산에 가면 그런 현상이 없다는 걸 알고 충격받기도 했어요. 영도에 놀이동산이 있어서 어릴 땐 원 없이 놀이동산에 갔는데 막상 없어진다 하니 낡았어도 너무 아쉬웠어요. 마지막 개장일 전에 친구들이랑 갔었는데 그때 사진기가 없어서 사진을 못 남긴 게 너무 아쉽네요. / 부산 영도구 29세 최**


1988년 5월 개장 직후 태종대 자유랜드를 찾은 시민들의 모습. 어린이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 뒤로는 롤러코스터도 보이네요. 부산일보 DB 1988년 5월 개장 직후 태종대 자유랜드를 찾은 시민들의 모습. 어린이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 뒤로는 롤러코스터도 보이네요. 부산일보 DB

■ 부산 놀이공원의 역사


부산에 처음 생긴 놀이시설이 들어선 곳은 동래 금강공원이었습니다. 1973년 6월에 놀이시설이 들어서면서 1980년대 최고의 유원지로 이름을 날렸는데요. 놀이기구뿐만 아니라 동물원, 식물원, 케이블카까지 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시설이 낙후된 데다 부산에 대형 놀이공원이 들어서면서 이용자가 점점 줄어들었고, 2013년 6월 결국 문을 닫게 됐습니다.


부산의 첫 놀이공원이자 1980년대 최고의 유원지로 꼽혔던 금강공원 놀이시설. 사진은 2009년 찾는 이 없이 한산한 놀이공원의 모습. 부산일보 DB 부산의 첫 놀이공원이자 1980년대 최고의 유원지로 꼽혔던 금강공원 놀이시설. 사진은 2009년 찾는 이 없이 한산한 놀이공원의 모습. 부산일보 DB

1988년 5월, 영도구에 태종대 자유랜드가 문을 열었는데요. 귀신의 집, 청룡열차, 바이킹, 타가다 등의 몰이 시설과 함께 해양박물관, 해수풀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금강공원 놀이시설보다 규모도 더 크고, 유명 관광지인 태종대와도 가까워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바다 근처에 있다 보니 해풍으로 인해 놀이시설이 부식됐고, 계약 만료 기간인 20년이 지나 결국 2008년 5월 문을 닫았습니다. 현재는 기구들이 모두 철거되고 주차장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태종대 자유랜드가 생기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89년 1월, 부산진구 초읍 어린이대공원에도 놀이동산이 생겼는데요. (주)동마기업에서 운영한 놀이동산입니다. 부산 나들이 1순위로 연간 70만 명이 찾을 만큼 인기가 많았는데요. 이곳 역시 놀이시설이 노후화된 데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서 2011년 3월 결국 폐장했습니다.

위 두 놀이동산은 1990년대 부산을 대표하는 놀이동산이었는데요. <부산일보> 1990년 4월 16일 자 기사에는 ‘태종대 자유랜드 일대에는 1000여 대의 승용차 승합차들이 몰려 간선도로가 마비될 정도였으며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 진입도로도 차량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시민들이 18호광장 일대에서 차에서 내려 1km가량 걸어가기도 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1990년 4월 16일 자 <부산일보> 기사. 4월 셋째 주 주말을 맞아 태종대 자유랜드와 초읍 어린이대공원 일대에 교통 혼잡이 빚어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부산일보 DB 1990년 4월 16일 자 <부산일보> 기사. 4월 셋째 주 주말을 맞아 태종대 자유랜드와 초읍 어린이대공원 일대에 교통 혼잡이 빚어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부산일보 DB

1990년대 후반에는 부산 롯데월드 스카이 프라자가 문을 열었습니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9층부터 12층을 개조해 실내 놀이공원으로 만들었는데요. 하지만 놀이시설의 진동과 소음으로 인해 백화점 이용 고객들이 불안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스카이프라자는 개장 3년 만인 1999년 5월에 문을 닫았습니다.


1996년 9월 부산 롯데월드 스카이 프라자를 찾은 시민들의 모습. 당시 놀이기구의 소음과 진동으로 인해 백화점 이용객들이 불안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부산일보 DB 1996년 9월 부산 롯데월드 스카이 프라자를 찾은 시민들의 모습. 당시 놀이기구의 소음과 진동으로 인해 백화점 이용객들이 불안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부산일보 DB

2004년에는 수영구에 민락동에 미월드가 문을 열었습니다. 미월드에는 대관람차, 롤러코스터, 샷드롭, 터뷸런스, 회전목마, 회전그네, 범퍼카, 급류타기 등 20여 개의 놀이기구가 있었는데요. 주변 아파트들로부터 소음 민원이 제기되면서 영업시간 제한 등의 조치를 받다 결국 2013년 6월 문을 닫게 됐습니다.

광안비치랜드도 2004년부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규모는 작았지만 ‘어른이(어린이 같은 어른)’들 사이에서 바이킹과 타가디스코가 아주 큰 인기를 끌었죠. 2019년 12월까지 운영을 이어가다 영업을 끝냈고, 이 자리에는 오피스텔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광안비치랜드는 준주거지역에 들어선 놀이시설로 개장 당시부터 허가 문제를 두고 소송전이 일기도 했습니다. 사진은 2003년 본격적인 운영이 되기 전의 광안비치랜드의 모습. 광안비치랜드는 준주거지역에 들어선 놀이시설로 개장 당시부터 허가 문제를 두고 소송전이 일기도 했습니다. 사진은 2003년 본격적인 운영이 되기 전의 광안비치랜드의 모습.

2007년 7월엔 이동식 테마공원인 ‘월드 카니발’이 영도에 들어섰습니다. 7월 20일 개장해 8월 31일까지 40여 일간 운영되는 놀이시설이었는데요. 그해 8월 13일, 곤돌라를 타던 일가족 5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곧바로 폐장했습니다.


■ 그때 그 사람


취재진은 그때 그 시절의 놀이동산을 운영한 이들을 수소문한 끝에, 김태훈 전 미월드 운영본부장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김 전 본부장은 미월드 운영 당시 “가족분들이 도시락 싸 들고 와서 잔디밭에 앉아 음식 먹던 모습이 아직 선명하다”고 말했습니다. 미월드는 당시 ‘입장료 없는 놀이공원’이기도 했는데요. 입장료 없이 놀이기구를 탈 사람들만 이용권을 구매하면 되는 구조였습니다. 또 당시 자유이용권으로 15종의 놀이기구를 이용할 수 있어, ‘국내 최저 가격 자유이용권’이라는 타이틀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큰 사랑을 받은 놀이기구는 옥상에 설치돼 있던 ‘롤러코스터’와 높이 올라갔다가 급하강하는 ‘제트폴스’였습니다. 광안대교와 광안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관람차 ‘자이언트 휠’도 많은 사랑을 받았죠.

미월드의 가장 큰 장점은 놀이기구를 타며 풍광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요. 이 덕분에 MBC ‘상상원정대’와 SBS ‘런닝맨’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전 야구선수인 홍성흔 선수가 롯데자이언츠에 있을 당시 딸과 함께 자주 찾던 곳이었다고 하네요.

부산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곳이었지만, 주변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미운털’이 박힌 곳이었습니다. 미월드는 주변의 아파트들은 2004년 개장 직후부터 “소음으로 인해 잠을 잘 수 없다”며 집단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집단 민원은 영업금지 가처분 소송으로 이어졌고, 미월드 측이 소송에서 패배하면서 영업시간이 단축됐습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영업을 멈출 수는 없는 상황.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건 ‘마스크’ 였습니다. 당시 여름 야간 개장 기간에 놀이공원을 찾는 이용객들에게 마스크를 무료로 나눠주면서, 가급적 고함을 지르지 말아 달라는 안내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습이 특이해 KBS ‘스펀지’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고 하네요.


2004년 8월 부산 수영구 광안리 미월드 야간 개장 당시 소음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놀이기구를 타는 이용객들의 모습. 부산일보 DB 2004년 8월 부산 수영구 광안리 미월드 야간 개장 당시 소음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놀이기구를 타는 이용객들의 모습. 부산일보 DB

소송 결과 야간 영업시간이 오후 9~10시로 제한되면서, 미월드 측은 영업에 큰 타격을 받게 되는데요. 미월드 측은 2005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제소를 합니다. 광안리 수변공원 일대의 도시계획 용도를 변경한 탓에 놀이공원 주변으로 아파트촌이 들어서게 됐다는 점을 호소한 거죠.

이에 대해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토지이용계획 등 시의 급격한 도시계획 변경으로 미월드 측이 피해를 본 것으로 판단된다”며 “시는 미월드 토지 매입 또는 교환하는 방안을 면밀히 재검토하라”는 협조 공문을 부산시에 전달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월드 측은 결국 2007년 땅을 팔았고, 2013년 6월까지 운영을 해오다 해당 부지에 호텔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이후 미월드 부지에 호텔 건립사업 인가가 취소되고 현재는 생활형숙박시설(레지던스) 건립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하죠.

미월드 폐장 소식에 많은 시민이 안타까워했는데요. 광안비치랜드가 있긴 했지만, 그곳은 워낙 규모가 작다 보니 사실상 미월드가 부산의 마지막 놀이공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안타까운 건 당시 본부장을 맡은 김 본부장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미월드는 법인이 아니라 개인이 개발한 놀이공원이었거든요. 지역에 좋은 시설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어진 곳인데 인근 주민들로부터 좋은 소리 못 듣고, 문제가 생겨서 결국 땅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 안타까웠죠.”

김 전 본부장은 특히나 그 시절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이라고 전해왔습니다. “저희가 2007년에 땅을 계약해서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거든요. 일하는 분들은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그런데도 6년이 넘도록 너무나도 잘 근무를 해주셨거든요. 정말 감사하고, 더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폐장한 지 어느덧 9년. 김 전 본부장은 미월드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이제 더 좋은 시설이 부산에 들어온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미월드 많이 좋아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부산 금강공원 내 ‘동래 동물원’과 ‘성지곡 동물원’에 담긴 독자 분들의 추억을 들려주세요.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부산일보’ 계정 관련 게시글에 댓글 남겨 주시거나 메시지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yool@busan.com 메일함도 열려 있습니다.


글=서유리 기자

일러스트=이지민 에디터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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