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생각의 기척] 그림을 옮겨 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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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자

지난 주말, 딴 곳에 걸려 있던 그림 한 점을 창고 안 벽면에 옮겨 걸었다. 이사 시점이 그때인 건, 주말마다 서툰 솜씨로 짓던 창고와 정자가 완성되기도 했거니와 떠올리기 싫은 이번 대선의 반문명적 결과가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즈음이기 때문이다. 앞의 경우는 행복한 자축의 의미를 갖지만, 뒤의 경우는 우울과 참담함 그 자체요 지성과 감성이 겪을 수 있는 대참사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렇게 축하와 위로의 이중 사명을 띠고 짧은 이삿길에 오른 주인공은 바로 에스파냐 출신의 화가 고야(Francisco Goya·1746~1828)가 세상에 남긴 1800여 점의 그림 중 하나인 ‘개’ 혹은 ‘모래 함정(流沙)에 빠져드는 개’ 등으로 불리는 놀라운 그림이다.

인간 이성과 지성, 감성을 온통 뒤흔드는
스페인 화가 고야의 ‘검은 그림’들 충격적
난해함 속 뭇 독자들의 지적 감상 기다려

굳이 그렇게 보자면, 이 그림과 나 사이에는 조금 각별한 인연이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의 관심과 눈을 온통 사로잡은 화가는 17세기의 스페인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아니 이 미술관을 두 번째로 방문하기까지 나는 고야가 이 그림이 포함된 이른바 ‘검은 그림’들을 그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프라도 미술관을 두 번째로 방문한 건 피니스테레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난 후 귀국을 위해 마드리드에 들렀을 때였다.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시간이 충분한 터라 프라도 미술관을 이 잡듯 속속들이 들여다보기로 작정했고, 이 결심은 문제의 이 그림 앞에 서기까지는 순조롭게 실천되고 있었다. 드문 일이지만 느닷없는 실존적 충격,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예술 작품들이 있다. 그때 나에게는 고야의 ‘개’가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 이 작품 이후로 내게는 프라도 미술관에 계속 머물며 미술 감상을 이어간다는 건 무의미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작품의 복제품을 구하는 것만이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제품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실물 크기의 유화 한 점을 손에 쥐었고, 재직하던 학교 앞 화방에서 그림보다 더 비싼 액자도 해 넣었다. 이렇게 해서 진품은 하나도 없는 나의 미술품 컬렉션에 또 하나의 복제품이 추가된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내가 그림을 구하는 유일한 목적은 그것을 보고 감상하자는 것이다. 값비싼 원본을 구입할 필요가 없고 그럴 경제적 능력은 더더욱 없다. 그림의 감상은 현미경이나 초정밀 기계가 아니라 나의 육안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솜씨 좋게 그린 복제품으로 충분하다.

미술품을 오로지 투기의 뜨거운 대상으로만 보고 그것의 정신적 가치는 안중에 두지 않는, 그러니까 미술품을 오직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만 취급할 뿐 그 가치를 미술사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인문정신을 끌어내는 데에는 하등의 관심과 의지를 보이지 않는 거의 모든 미술 관련 인사들과 미술 관행들이, 그러나, 내 글을 접한 후에도 태도의 변화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기대난망의 일이다.

‘지성을 쳐부수자!’ 20세기 초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 정파가 내세운 구호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이 구호 속에는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유감없이 보여준 전제정치와 군국주의의 500년 전통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다. 고야가 마드리드 근교에 전원주택 한 채를 구입하여 1층과 2층의 제법 큰 두 개의 방에다가 14점의 벽화를 그리던 1819년부터 1823년 사이의 시기 역시 스페인 역사에서 전제정치에 이은 저항과 짧은 자유의 시기, 또 다시 가혹한 반동의 충격이 교차하던 격변기였다. 이때 이미 70대의 노령에 접어든 고야는 중병에서 가까스로 회복되기까지 해서, 두 방의 벽면을 캔버스 삼아 화가로서 아니 사상가나 문명 비판가로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그런데다가 이 벽화들은 거래 가능한 화판이 아닌 자기 집 벽면에다가,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줄 의도가 아예 없이 직접 그려 넣은 것이기에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었을 테다. 말하자면 이 그림들은 고야 자신을 위해 그린 것이었고, 이 그림들이 그 자신을 사로잡고 있었으며, 고야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그림들이었다. 그러나 고야는 충동적으로나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려대는 화가가 아니었으므로 이 그림들 역시 그의 깊은 사유의 결과물이었다. 고야는 검은 그림들에다가 군중들을 사로잡고 있는, 어떤 점에서 고야 자신도 헤어나지 못했을 온갖 미신, 욕망, 충동, 정치적 편견과 아집 등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소란과 변덕과 어리석음에서 해방된 고야는 이 그림들에게 다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개’는 다 설명되지 않았다. 아니, 전혀 설명되지 않았다. 다만 독자들의 지적 감상을 기다리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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