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지금도 러시아군이 무고한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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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 팔리보다 시인 기고문 ‘내 눈으로 직접 본 전쟁’

우크라이나의 시인 페트로 팔리보다(사진) 씨가 에 ‘내 눈으로 직접 본 전쟁’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보내 왔다. 시인이자 에스페란토 번역가인 그의 작품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러시아, 독일에서도 발표됐다. 에스페란토 작품을 우크라이나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산지부 회보 ‘테라니도(TERanidO)’의 편집장인 장정렬 전 동부산대 외래교수를 통해 에 기고문을 보냈다. 테라니도에는 우크라이나 작가의 작품들이 그의 번역을 거쳐 여러 번 소개되기도 했다.

이 기고문은 10일(현지시간) 쓰여졌다. 11일 기고문을 전달받은 장 교수가 번역을 거쳐 본보로 보냈다. 팔리보다 씨는 우크라이나 사진작가 니나 크루세브스카 씨로부터 게재를 허락받고, 해외 언론에 한 번도 실리지 않은 사진을 받아 보내오기도 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병원·유치원도 공습 피해 입어
시민은 러시아군 놀음 대상 전락
개집·변기 뚜껑마저 약탈당해

평화를 사랑하는 우크라이나인
어느 때보다 단결해 싸우는 중
한국도 우리 편이란 걸 잘 알아

제 이름은 페트로 팔리보다입니다. 우크라이나 시인이자 에스페란토 시인이고 번역 작가입니다. 저는 제 아내와 함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약 20km 떨어진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제게 낯선 나라가 아닙니다. 지난달 서울의 진달래출판사에서 우크라이나 작가 크리스티나 코즈로프스카의 단편소설 (장정렬 번역)를 출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작품들을 에스페란토와 영어로 번역했고, 제 번역을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산지부 회보 장정렬 편집장이 한국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벌써 40일 이상 이미 제 조국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의 공격에 맞서 영웅적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저는 2월 24일 새벽 5시에 제 아내가 저를 깨우며 한 말 “여보, 전쟁이 일어났나 봐요”를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집 바깥에서 폭발음이 들려 왔습니다. 그날이 있기 며칠 전부터 저희는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 왔습니다.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게 알려 주기를,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공격할 것이라 했지만 우리는 그런 일이 21세기에 일어나리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즉시 키이우에 사는 딸 가족(사위, 5살과 8살의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음)에게 전화했습니다. 딸 가족은 방공호에서 이틀간 숨어 지내며 공습경보 사이렌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뒤 딸 가족은 다소나마 안전했던 서부의 제 친구 집으로 피신했습니다. 하지만 서부에도 러시아 미사일이 날아와, 제 딸 가족은 프랑스의 한 마음씨 좋은 가정으로 다시 피신했습니다.

2월 24일 아침에 저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습니다. “공포에 떨지 맙시다! 우리는 우리나라, 내 땅에 있습니다! 하느님과 우크라이나 군인이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여성들이 외국을 포함한 더 안전한 장소로 피란을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아내는 저희가 사는 마을에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저희는 저장된 채소와 통조림 음식을 준비해 총탄이나 포탄이 투하되는 경우에도 숨을 수 있는 피신처를 마련했습니다. 저희 마을에는 군 복무 경험이 있는 남자들로 지역 수비대가 조직되었습니다. 지역수비대는 총도 받았습니다. 저희 마을의 출입구는 지역 수비대가 총으로 무장한 채 지키고 있습니다. 도로마다 적군의 탱크가 지나가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차단했습니다.

저희 마을은 드니프로강의 왼편 경계에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경계에는 전투나 로켓 포탄이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마을은 러시아군에게 점령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일이 강 저 반대편에 벌어졌습니다. 그곳에서는 러시아군이 키이우에 쳐들어갈 시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마을 집들 출입문과 창문은 포탄과 포병대 포격의 폭발음으로 매번 흔들렸습니다.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이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연신 울려댔습니다.

공습을 당한 곳은 우크라이나 주요 군대 관련 시설물은 물론이고, 거주지의 가옥, 병원, 조산소, 학교와 심지어 유치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시민이 전쟁으로 사망했고, 어린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대학살이 러시아군의 점령 지역에서 자행되었습니다. 마리우폴, 이르핀과 보로?쳐? 같은 도시가 이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러시아군은 야만적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온 세계가 ‘부차 학살’ 만행으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야만성과 추악함을 멈추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인간 존중이라든지 인권이라는 것을 저들은 모른 체했습니다. 저들은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무장하지도 않은 시민들에게도 총부리를 들이댔습니다. 시민들을 저들의 놀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야만적인 동물도 ‘해방군’이라는 이름으로 들이닥친 저들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민가의 집 안에 있던 모든 것, TV, 컴퓨터, 세탁기, 냉장고, 다른 가정용품, 보석, 의복, 심지어 수건이나 변기 뚜껑마저 약탈해 자기네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저들이 약탈한 물품들은, 심지어 개집까지도 약탈해 러시아군이 주둔해 있는 벨라루스 땅을 통해 택배로 러시아로 보낸다고 합니다.

제가 이 기고문을 쓰고 있을 때 러시아군이 여전히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눈다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저들은 이스탄데르 미사일로 돈바스 도네츠크주의 크라마토르스크 철도역을 공습했습니다. 50명 이상의 인명을 앗아갔고, 100명 이상의 시민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 당시 역에는 피난하려는 시민들이 수천 명 있었고, 러시아군은 그 점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테러와 살육만 일삼는 러시아군의 잔학무도함은 경계를 모릅니다.

우크라이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이웃나라를 한 번도 침범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모든 사람의 인권은 존중받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새로운 땅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푸틴은 자신이 우크라이나를 나치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나치라는 말은 우크라이나 말을 쓰면서, 자신의 나라 영웅을 존중하고 우크라이나 문화를 발전시키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말은, 러시아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거의 모든 우크라이나 사람이 나치가 되는 셈입니다.

2014년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크림반도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방의 대부분을 점령했습니다. 지금 저들은 우크라이나 사람 전부를 자기네 국민으로 합병할 작정인 것 같습니다. 러시아 지도부는 그런 추악한 목표를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학살입니다. 저들이 정말 나치처럼 행동합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겁주고 전세계 공동체를 자신의 핵무기로 겁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도 단결되어 있습니다. 또 거의 전 세계가 우리 편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푸르고 노란 국기는 전 세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나 “우크라이나에게 영광을! 전쟁 영웅들에게 영광을!”이라는 응원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수많은 나라가 러시아 제제에 동참하고, 우리 피난민들을 받아주고, 우크라이나를 재정적으로, 식료품으로 또 가장 중요한 무기로써 돕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승리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망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무너지면, 그때는 러시아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저들은 자신들의 광적인 계획(러시아 제국을 다시 세우려는)으로 다른 유럽과 아시아 나라들을 침략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의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도 우리 편에 있음을 잘 알고 있고, 대한민국도 우리를 많이 돕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전쟁인지, 수년간의 전쟁에서 어찌 살아 남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우리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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