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 무덤에 악의 꽃, 조화(造花) 놓고 가지 말라!
김태문 김해시 환경국장
인류는 태초부터 꽃을 통해 사랑과 기쁨, 슬픔의 감정을 표현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꽃의 신 플로라는 사랑하는 요정 님프가 죽자 모든 꽃들이 우러러보는 영원한 꽃으로 부활하게 해달라고 애원했고, 아폴로가 장미로 되살려 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 고전문학에도 신라시대 한 노인이 고을 태수의 부인에게 꽃을 바쳤다는 ‘헌화가’ 라는 향가가 있다. 근래엔 외교나 혁명을 상징하고 문학과 예술에 연관된 꽃을 다룬 <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라는 책도 있다. 어찌 보면 인류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은 바로 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겉으로만 아름다운 꽃들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공원묘지 조화(造花) 이야기다. 조화를 놓고 간 자신은 정작 보지도 않으면서 묘지 앞에는 늘 꽂아 둔다. 국립묘지를 포함 전국 470개 공원묘원에 약 170만기의 묘지가 있다. 묘지 한 기당 놓인 조화의 무게는 대략 300g 정도, 전국의 묘지에서 성묘객들이 연간 3회 정도 헌화한다면 약 1500t가량의 플라스틱 조화가 전국의 산에 있는 셈이다. 이는 중국으로부터 전량 수입되는 조화의 약 80%가 묘지 헌화용으로 사용된다고 보면 된다. 색상이 화려하고 구매와 보관이 용이하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묘지에 놓인 플라스틱 조화가 3개월 이상 햇볕에 노출되면 풍화가 시작돼 공기 중에 미세플라스틱 먼지 주공급원이 되고, 이것이 바람을 타고 우리 가슴속을 파고든다. 6개월이 지나면 묘지 주변 토양들은 구리, 수은등 중금속 물질에 오염된다는 연구 자료도 있다. 묘지 주변에 장기간 쌓인 미세플라스틱은 비에 씻겨 강과 바다로 흘러 환경과 동물, 인간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다. 또 이 조화 쓰레기는 재활용이 불가능해 소각처리 하게 되면 탄소배출계수가 높아 조화 무게만큼이나 많은 탄소가 발생한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사이 공원묘지 플라스틱 조화는 대기 등 생태계 오염의 주범으로 자리 잡았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새빨갛고 분홍빛 조화들이 전혀 꽃 같지 않은 게 눈에 거슬리기까지 한다.
김해에는 4개 공원묘원에 4만 7000기의 묘지가 있다. 김해시는 지난 설 명절부터 공원묘원 대표자, 화훼 협의회와 협력해 공원묘지에 조화를 없애고 대신 생화나 화분을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공원묘지에 플라스틱 조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법적 근거는 없지만 미래세대와 생태계 보호를 위해 우리가 먼저 나서 시급히 해결해 보자는 취지다.
시는 대대적인 시민 참여 캠페인을 벌였고, 공원묘원 측에서는 묘지 권리자들에게 조화 반입을 금지한다는 안내 문자를 발송했다. 어떤 공원묘원에서는 조화들을 일괄 수거 폐기 처분하기도 했다. 지역 화훼단체는 캠페인용으로 국화 1만 송이를 제공했고, 지역의 대형 마트들도 조화를 팔지 않겠다고 동참했다. 일부 반발이 있긴 했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진작 했어야 할 일이라며 응원을 보냈다. 생화를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하루빨리 행정기관들이 나서 조화 근절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호국원 등 국립묘지에서 조화반입 금지를 결정하고 시행하면 단기간에 생화 성묘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시민의 건강과 생태계 보호, 탄소중립 실현, 화훼농가는 연간 150억 원 규모의 수입 대체효과도 있다. 예산 한 푼 들이지 않고서도 환경과 화훼 농가를 살릴 수 있는 일이다.
묘지에 가짜 꽃이라도 항상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관념상의 습관들은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바꿔야 한다. 시든 생화는 보기 싫은 게 아니라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하자. 묘지에 두고 가는 조화는 더 이상 마음의 표현이 아니라 악의 꽃이요, 플라스틱 쓰레기일 뿐이다. 묘지 속의 망자도 “내 무덤에 조화 놓고 가지 말라”라고 말하고 싶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