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문정왕후 시절은 조선 불교미술의 르네상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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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4/유홍준

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조선시대 미술사의 사각지대를 명쾌하게 정리한 책이다. 내용은 건축·불교미술·능묘조각·민속미술, 4개 분야로 이뤄져 있다. 조선시대 미술사가 간명한 서술 속에 압축적으로 녹아들어 있다.

불교미술의 경우 15세기 세종·세조 연간은 고려 불교미술의 전통을 이어갔고, 16세기 문정왕후 시절은 조선 불교미술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질 정도로 찬란했다. 문정왕후가 발원한 불화로 회암사 무차대회를 위해 그린 탱화 400점은 고려불화와 다른 조선불화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탱화 400점 조선불화 아름다움 보여줘
목각후불탱, 조선 후기 불상 조각의 꽃

그러나 문정왕후 이후 다시 불교는 탄압 받고 위축됐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조선 최대의 전란인 임진왜란은 불교 중흥의 획기적 전환점이 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승병이 일어나 나라를 구했기 때문이다. ‘나라를 구한 불교’가 각인되면서 조선은 더 이상 ‘숭유억불’의 나라가 아니라 ‘숭유존불’의 나라가 되었다.

임란 후 불교 중흥의 기운이 속에서 전란 중에 타버린 사찰에 대한 중창 불사가 이어졌다. 잃어버린 권위의 복권을 강조하듯 불전이 2~5층 규모로 대형화됐다. 법주사 팔상전, 금산사 미륵전,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은 ‘4대 중층 불전’이다. 대형화되는 불전에 맞춰 대형 소조불상이 등장했다. 너무 커서 석불 철불 금동불이 아니라 소조불로 조성되었다. 조선 후기 불상은 첫째 삼세불이 위계를 벗어나 나란히 서 있는 ‘평등의 원칙’으로 조성됐으며, 둘째 얼굴 이미지가 통일신라의 초월적 존재감, 고려시대의 파워풀한 모습과 달리 심성 착한 선비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불교미술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목각후불탱이다. 10여 점 전하는 목각후불탱은 입체감이 강렬하고 대단히 화려해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데 가히 조선 후기 불상조각의 꽃이라 할 만하다. 조선 후기 불교 사상은 서산대사 휴정의 선교합일 사상으로 대표된다. 그 사상에 근거해 사찰은 참선 간경 염불의 3학 수행이 이뤄지는, 오늘날과 같은 가람 배치로 정형화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건축 분야를 보면 궁궐은 유교적 규범을 담아낸 왕가의 건축으로 남아 있고, 관아는 선비 정신의 건축적 구현이며, 민가는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했다. 능묘 조각은 왕릉의 문신석 무신석을 말하는데 15세기에는 차분하고 안정된 모습이었다면, 16세기에는 장대하고 우람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숙종 연간에 검약을 강조하면서 현격하게 작아지고, 정조 이후에는 아주 세련된 모습을 드러내면서 각 시대 분위기를 함축했다. 사대부 묘의 경우 왕릉보다 훨씬 간소할 수밖에 없었으나 석인과 석수 조각에서 뛰어난 것들이 있다. 조선 전기 문인 최명창 묘의 동자석은 명작이고, 전라도와 제주도의 몇몇 동자석들은 과감한 평면화와 단순화로 현대 조각을 방불케 한다고 한다.

돌장승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남원 실상사 돌장승’은 위엄 있는 모습이고, ‘상주 남장사 돌장승’은 분노한 민중의 얼굴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고, ‘나주 불회사 돌장승’은 할아버지 할머니라 불릴 정도로 친근한 노인 모습이라고 한다. 방대한 자료를 평이한 서술 속에 꿴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유홍준 지음/눌와/392쪽/3만 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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