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은 의병의 날, 울산 기박산성 정신 널리 알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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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복수 기박산성임란의병추모사업회장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리는 이날이 실은 ‘의병의 날’이란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듯하다. 1592년 음력 4월 22일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날을 양력으로 환산해 법정기념일로 지정한 것이다. 한데, 임란 의병사를 거론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울산 기박산성 의병이다.

26일 오전 울산 북구 기박산성 의병 역사공원 뒤쪽으로 붉은색 깃발이 영령들의 넋을 달래듯 나부끼고 있었다. ‘견천지, 고처겸, 김응방, 류백춘, 류정, 박봉수, 박응정, 박진남, 서몽호, 심환, 이경연, 이봉춘, 이한남, 장희춘, 전응충, 지운 스님, 박손, 전영방….’

이곳에서 만난 기박산성임란의병추모사업회 류복수 회장이 손가락으로 깃발 가온자리를 가리켰다. 무명용사의 깃발이 펄럭이며 한눈에 들어왔다. 류 회장은 “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고자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의병이 있었다”며 “울산 시민 모두가 의병의 후손임을 일깨우고 충혼을 기리는 뜻에서 올해 공원 준공과 동시에 무명용사의 깃발을 마련하고 정 중앙에 달았다”고 말했다.

선조 25년(1592) 4월 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20만 왜군이 상륙해 다대포, 부산포, 동래포를 연이어 함락했다. ‘200년 동안 전쟁을 모르고 지낸 백성들이라 각 군현이 풍문만 듣고도 놀라 무너졌다.’<선조실록>

4월 21일 기박산성에서는 울산 의병이 창의했다. 18명 의병장 아래 군세 1600명이 모였다. 5월 7일 의병진은 야음을 틈타 울산 중구 병영성의 왜적을 기습해 대승했다. 수천 명 왜적이 혼비백산 달아나고, 수백 명이 죽었다. 임란 역사 첫 승전이요, 기박산성 임란의병이 왜군과 맞붙은 출발점이었다.

류 회장은 “울산 의병은 용맹으로 이름 떨쳤고 멀리 창녕까지 나아가 홍의장군 곽재우와 함께 싸우기도 했다”며 “왜군이 완전히 물러난 1598년까지 7년간 의병활동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왜란의 처음과 끝에 울산 의병이 있었다는 얘기다.

기박산성임란의병추모사업회는 임란의병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울산 의병을 기념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다. 애초 2016년 5월 임란기박산성창의의병장후손회로 출범했다가 2019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했다. 의병장 18개 문중에서 임원·이사가 총 36명, 문중 후손이면 누구나 회원 자격을 지니는 까닭에 총 회원은 수백 명에 달한다. 류 회장 역시 류정·류백춘 의병장의 후손이다.

추모회는 매년 4월 의병추모제 거행, 학술 심포지엄 개최, 임란 의병사 연구위원회 설립 등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울산시, 북구청, 북구문화원과 함께 기령 소공원을 기박산성 역사공원으로 조성해 기박산성 창의 역사와 의병들의 구국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탰다.

류 회장은 “매년 추모제도 거행하고 학술 활동도 장려하고 있지만 지역 의병사에 대한 시민 관심은 매우 부족하다”며 “기박산성 의병들이 품었던 고귀한 뜻을 길이 계승, 발전시키고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 전체로 널리 알리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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