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파의 생각+] 키오스크라는 차별의 장벽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공모 칼럼니스트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쉽게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는 키오스크가 급증한 것을 들 수 있다. 키오스크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 단말기로 비대면 업무가 가능해 코로나 이후 식당이나 주민센터 등 대부분 공공장소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키오스크는 사용자 입장에서나, 사업자 입장에서나 좋은 점이 많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키오스크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으며, 주문도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사업자로서는 주문, 접수와 같은 간단한 업무는 키오스크를 통해 처리하면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최근 비대면·편의성 장점 급증세
노인 등에겐 접근 어려운 장애물
이용 문턱 없애는 제도 개선 절실
그러나 키오스크가 누구에게나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연이 있다. 글쓴이의 어머니가 패스트푸드점에 갔는데,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워 햄버거를 사지 못하고 돌아와 눈물을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편리한 키오스크가 누군가에게는 사용을 가로막는 ‘차별의 장벽(barrier)’이 됐다.
어떤 이들은 사연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사람도 이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서 많은 지자체에서는 노인을 위한 키오스크 사용법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 진단과 처방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먼저 키오스크 사용법 교육을 살펴보자.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운 노인을 대상으로 이용 방법을 교육하는 것은 어느 정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교육받은 키오스크 외에 다른 키오스크 사용은 여전히 어렵다. 노인이 보기에 작은 글씨나 읽을 수 없는 외국어 표기, 복잡한 주문 절차 등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교육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런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데 있다. 즉 노인이 키오스크를 잘 사용하지 못하고 어렵게 여기는 책임은 바로 노인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은 키오스크의 설계와 구조, 운영 방법에 있는 것이지, 노인이 져야 할 책임은 아니다.
만약 키오스크 사용의 어려움을 개인 책임으로 돌린다면 시각 장애인이 키오스크 사용을 못 하는 것도 장애를 가진 그 사람의 잘못이다. 키 작은 아이가 손이 닿지 않아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아이의 잘못이 된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과 아이, 장애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보다 오히려 이들이 사용하기 쉽게 키오스크를 바꿔야 한다. 사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키오스크를 만드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 지난해 한 은행에서 노인을 위한 ATM 기기를 설치한 바 있다. 이 기기는 ‘돈 찾기, 돈 넣기, 돈 보내기’와 같이 쉬운 용어를 큰 글씨로 보여 주고, 안내 음성도 느린 속도로 들려준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외 키오스크 제작 업체에서는 자동 높이 조절, 점자와 수어 안내 기능 등을 탑재한 각종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사회적 약자가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없애는 것) 키오스크를 선보이고 있다.
문제는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사용이 의무가 아니어서 굳이 비용을 들여 설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따라서 정부는 노인과 아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키오스크라는 차별의 장벽 앞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지 않도록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부도 키오스크 관련 법령 제정을 통하여 차별을 없애고자 노력 중이다. 지난해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은 키오스크 설치 및 운영 시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기간 개정된 지능정보화기본법 고시에서도 국가기관에서 키오스크를 구매할 때 정보 접근성이 보장된 제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하였다. 또 현재 논의 중인 디지털포용법은 디지털 취약 계층이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를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담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대상은 장애인에만, 지능정보화기본법의 대상은 국가기관에만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다. 디지털포용법은 대상과 방법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강제성 있는 법적 장치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에게 ‘장벽을 뛰어넘어라’라고 해선 안 된다. 장벽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디지털포용법에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설치가 의무 규정이 돼야 한다. 또 사업자에게 설치와 임대, 운영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한다면 장벽 없는 세상 만들기가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