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숨비] “포근히 품어야 할 바다야”… 기장 해녀 정안선 이야기 #6-2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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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숨비’는 제주도 밖 육지 해녀의 대명사인 부산 해녀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부산은 제주도 해녀들이 처음 출향 물질을 하며 정착한 곳이지만, 지난해 말 기준 60대 미만 부산 해녀는 20명 남았습니다. 인터뷰와 사료 발굴 등을 통해 사라져가는 부산 해녀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고, 물질에 동행해 ‘그들이 사는 세상’도 생생히 전달할 예정입니다. 제주도 해녀보다 관심이 적은 육지 해녀가 주목받는 계기로도 삼으려 합니다. 이번 기획 보도는 〈부산일보〉 지면, 온라인, 유튜브 채널 ‘부산일보’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신암어촌계 - 정안선(74) 해녀 이야기>


우린 외화를 벌어온 해녀였다. 일본에 성게알(성게소)을 수출했다. 고무 잠수복이 없던 시절 기장 해녀들은 추운 바다에서 성게를 잡아 왔다.

기장 바다에서 약 60년 동안 물질했다. 해산물 잡는다고 잠수만 한 게 아니다. 바닷속 돌이 하얘질 때까지 닦기도 했다. 힘들어도 기장 특산품 ‘자연산 돌미역’을 얻으려면 그래야 했다.

물질하며 특별한 기억이 많다. 한바탕 웃기도 했고,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그동안 바다는 우릴 포근히 품어줬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바다를 사랑하고 아끼며 물질하고 싶다.

정안선 해녀가 부산 기장군 연화리 앞바다에서 물질을 시작한 계기 등을 설명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정안선 해녀가 부산 기장군 연화리 앞바다에서 물질을 시작한 계기 등을 설명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해녀가 벌어온 외화

기장군 연화리에서 태어났다. 물질은 자연스레 배웠다. 엄마가 연화리 해녀였고, 어린 시절 더우면 바다에 뛰어들곤 했다.

15살에 해녀가 됐다. 18살부터 배 타고 먼 바다로 나가는 ‘뱃물질’을 시작했다. 뱃일했던 아버지와 바다에 나가곤 했다.

기장 바다에는 해녀가 많았다. 연화리에는 40~50명 정도였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해녀가 같이 물질했다. 고무 잠수복이 없어 천으로 된 옷을 입던 시절이었다.

소라, 전복, 성게 등 해산물을 많이 잡았다. 요즘은 국내에 팔지만, 당시 성게는 주로 일본에 수출했다. 여자들이 외화벌이를 한 셈이다.


매일 바다에서 성게를 몇kg씩 가져왔다. 당시 ‘물건(해산물)’을 건져올 해녀를 모으는 사람이 4명 정도 있었다. 부산에 ‘출향 물질’ 온 제주 해녀들도 손을 보태면서 생산량이 꽤 많았다. 제주 해녀들은 철마다 부산에 우뭇가사리를 뜯으러 오기도 했다.

바닷물은 깨끗했고, 물건도 많은 시절이었다. 바닷속 6~7m 아래가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았다. 음력 7월 죽도 인근에는 ‘빨간 성게’가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

부산 기장군 연화리 앞바다에서 기장 해녀가 테왁을 들고 물질하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부산 기장군 연화리 앞바다에서 기장 해녀가 테왁을 들고 물질하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돌 닦는 기장 해녀들

바다에서 해산물만 건져오진 않았다. 매년 돌이 하얘질 때까지 닦았다. 음력 9~10월쯤 돌을 깨끗하게 닦으면 미역이 붙는다. 그게 기장을 대표하는 ‘자연산 돌미역’으로 자란다.

힘이 들어도 기장 해녀들은 멈추지 않았다. 예전에는 박달나무 끝을 날카롭게 갈아 돌을 닦았다. 가슴 정도까지 물이 빠지면 선 채로 돌을 하얗게 만들었다.

지금은 호미를 칼날처럼 갈아서 사용한다. 바위를 잡은 채 울퉁불퉁한 부분을 매끈하게 만든다. 보통 왼손으로 돌을 잡고, 오른손에 호미를 든다.

호미로 긁으면 풀이 깨끗하게 벗겨진다. 모서리 부분까지 돌을 골고루 닦으면 미역이 자연스레 붙게 된다. 임금님 진상 갔다는 그 유명한 미역은 이렇게 자란다.

정안선 해녀가 삼섬과 죽도 인근 바다를 가리키며 해녀들이 부르는 지명을 설명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정안선 해녀가 삼섬과 죽도 인근 바다를 가리키며 해녀들이 부르는 지명을 설명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해녀들만 부르는 지명

기장 해녀들만 공유하는 바다 지명이 따로 있다. 연화리 앞바다에는 ‘삼섬’과 ‘죽도’가 있다. 해녀들은 주변 지역을 ‘새뜸’과 ‘새빵’이라 구분해 부른다.

삼섬과 새빵 사이 높은 바위를 해녀들은 ‘새뜸’이라 지칭한다. 삼섬 앞쪽은 ‘삼섬 앞잔자’, 뒤쪽은 ‘삼섬 뒷잔자’라 말한다.

삼섬, 죽도뿐 아니라 새뜸, 새빵까지. 해녀들이 이렇게 네 지역으로 나눠 부르는 배경에는 ‘자연산 돌미역’이 있다. 옛날에는 자연산 돌미역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세월이 흘러 일부 해녀만 발 벗고 나서는 상황이지만, 당시에는 동네 어촌계원을 거의 다 동원해 돌을 닦았다.

그때는 1번부터 4번까지 번호를 적어 ‘구지빼기(제비뽑기)’를 했다. 각자 번호를 뽑은 사람들이 해당 구역에 있는 돌을 닦게 하기 위해서다. 네 지역 일대에 풍부한 돌미역이 해녀들만 공유하는 지명도 만든 셈이다.

기장군 연화리 앞바다에서 물질한 해녀를 태우기 위해 선박이 다가가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기장군 연화리 앞바다에서 물질한 해녀를 태우기 위해 선박이 다가가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바다가 남긴 기억

물질하다 기억에 남는 일이 많다. 친구들은 한두 명 빼고 다 해녀였다. 당시 삼섬이나 새뜸에 가려면 배를 타고 가야 했다. 사공이 노를 젓던 시절이었다.

배 위에 있던 해녀들은 순서대로 바다에 빠졌다. 친구 1명이 배 위에 남았던 적이 있었다. 일어나서 발을 딛는 순간 배가 해딱 뒤집혔다. 다들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친구가 수영을 잘하는 걸 아니까 크게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물론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친구와 같이 보라성게를 잡으러 갔을 때였다. 수면 위로 올라오던 그 애가 그대로 다시 가라앉았다. 옆에서 “니 와그라노”라고 몇 번을 말해도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다리 경련 때문이었다. 그럴 때는 곁에 사람이 없으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다. 친구를 잡아 당겨 올려서 테왁에 태웠다. 테왁 위까지만 올려놓으면 대체로 안전하다. 물에 둥둥 뜨는 테왁이 생명줄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물질을 마친 정안선 해녀가 대화를 나누며 웃음을 보이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물질을 마친 정안선 해녀가 대화를 나누며 웃음을 보이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포근히 품어야 할 바다

바다에서 사는 동안 변화가 많았다. 불턱에서 불을 쬐며 언 몸을 녹이던 시절은 끝났다. 고무 잠수복이 나오면서 추위에 떨지 않고 물질하는 세상이 왔다. 먹을거리도 예전보다 흔해졌다.

눈치 보지 않고 시간제한 없이 물질한 게 좋았다. 운이 좋아서 물건을 많이 건져올 때가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다음에 많이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물질하는 젊은 사람이 늘어났으면 한다. 기장에 해녀학교라도 생기면 노하우를 전수해줄 생각이 있다. 우리야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하나의 문화이자 즐길 거리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물질은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하고 싶다. 바다는 엄마 품속같이 포근하다. 생각만 해도 눈물 나게 하는 엄마 같은 존재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늘 바다에 들어간다. 우리도 바다를 더욱 포근히 품어주려 한다. 모두 이 바다를 사랑하고 아꼈으면 한다.


※정안선 해녀 이야기는 인터뷰 내용에 기반해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습니다. 인터뷰 원본은 기사 위쪽 영상과 유튜브 ‘부산일보’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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