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72. 미술 행위에의 도전&엄혹한 시대에 대한 발언, 김응기 ‘메모 A’
작품 ‘메모 A’는 문자와 이미지 콜라주로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김응기(1952~) 작가의 대표 작품이다. 1980년대 부산 형상미술 경향을 주도했던 김응기는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학업에 정진하던 중 송혜수 화실에서 표현주의를 접했고, 1974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면서 개념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김응기의 콜라주 작업이 시작된 것은 1976년부터이다. 제1회 부산현대미술제에 출품한 골판지 상자의 글자를 굵은 선으로 그은 작품으로 초기 콜라주가 시도되었다. 이듬해 베니어판에 타블로이드 신문지를 붙여 칼로 한 글자씩 긁어내는 방식을 보여주거나, 큰 베니어판에 신문·영문 잡지 등을 콜라주하여 긁고 지우는 방식을 보여준다.
1978년 이후 칼 대신 샌드페이퍼로 문지르거나 검정 사인펜으로 한 줄씩 긋는 ‘글귀 지우기’로 작업 방식을 바꾸며 문자와 사진, 이미지 드로잉 등이 첨가되는 독창적인 형식을 갖추게 된다. 1979년 부산 공간화랑과 서울 청년작가회관의 ‘MEMO’ 전 을 기점으로 기억과 형상 언어와 이미지 간의 조응을 화면에 담아내는 새로운 방법들로 ‘메모 시리즈’가 구축된다.
‘메모 A’를 자세히 보면 매체의 활자와 사진은 모두 원형 그대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당시 전시도록에서 작가는 ‘…나타난 현상을 지워버리는 행위, 가능한 한 원상태로 되돌려 버림으로써 소외돼 가는 모든 것에 대한 원초적인 접근의 표지로서 메모해 두고 싶었다’고 했다.
김응기의 초기작에서 사용된 신문과 잡지 등은 우리 사회에서 조명되어야 할 사건 소식, 혹은 전달되어야 하는 중요한 사실을 문자와 이미지로 전달하는 매체이다. 이러한 매체의 속성을 지우고, 기사 맥락에서 벗어난 이미지와 결합하고 글자 지우기를 재구성하는 행위는 예술가로서 미술 행위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자 당시 엄혹한 정치·사회 현상에 대한 발언이다. 매체의 신뢰와 진실에 대한 도전, 개인과 사회의 관계 재구성, 사회와 일상의 연결 등 작가의 행위적 결과인 작품은 매체에 대한 ‘팩트 체크’를 넘어 상황과 진실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이야기한다. 김지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