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숨비] “바다에선 근심 걱정이 사라져”… 기장 해녀 정정순 이야기 #6-3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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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숨비’는 제주도 밖 육지 해녀의 대명사인 부산 해녀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부산은 제주도 해녀들이 처음 출향 물질을 하며 정착한 곳이지만, 지난해 말 기준 60대 미만 부산 해녀는 20명 남았습니다. 인터뷰와 사료 발굴 등을 통해 사라져가는 부산 해녀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고, 물질에 동행해 ‘그들이 사는 세상’도 생생히 전달할 예정입니다. 제주도 해녀보다 관심이 적은 육지 해녀가 주목받는 계기로도 삼으려 합니다. 이번 기획 보도는 〈부산일보〉 지면, 온라인, 유튜브 채널 ‘부산일보’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신암어촌계 - 정정순(63) 해녀 이야기>


물질해서 번 돈으로 과일을 사 먹었다. 바다를 운동장 삼아 놀다 보니 어느새 해녀가 됐다. 잠시 바다를 떠나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 내가 마음을 붙인 곳은 기장 앞바다였다.

신암어촌계 막내 해녀로 수십 년 동안 바다를 오갔다. 언니들과 함께 물질하며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끈끈하게 살아왔다.

바다에서는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최대한 마음을 비운 채 욕심을 가라앉히고 바다로 들어간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엄마 뱃속 같은 바다에 가고 싶다. 한없이 큰 울타리 안에서 나를 보듬어주는 느낌이 든다.

기장군 연화리 앞바다에서 정정순 해녀가 젊은 시절 물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기장군 연화리 앞바다에서 정정순 해녀가 젊은 시절 물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바다가 준 포도와 복숭아

더운 날 뛰어들 강이 없었다. 학교 마치면 곧장 바다로 향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기장군 연화리. 앞바다에 들어가 멱 감고 놀았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이었다. 친구들과 말똥성게를 잡기 시작했다. 성게알(성게소)만 빼내 수매하는 사람에게 넘겼다. 물건(해산물)이 적어도 받아주던 시절이었다.

푼돈을 받아 포도밭과 복숭아밭으로 향했다. 과일 사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린 시절 심심해서 시작한 게 물질이었다. 그래서 딱히 언제부터 해녀가 됐다고 말하긴 어려운 듯하다.

어머니와 언니도 물질했다. 부모님 고향도 연화리. 한동네에 살다 결혼했다. 우리 형제는 총 여섯인데 언니와 내가 해녀로 산다. 그때 바다가 밭보다 더 풍족했다. 하루 양식거리가 없어도 바다에 들어가면 해결됐다.


기장군 연화리 앞바다에서 물질을 마친 정정순 해녀가 웃음을 보이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기장군 연화리 앞바다에서 물질을 마친 정정순 해녀가 웃음을 보이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우리들의 운동장

바다는 운동장이었다. 매일 놀이하듯 물질했다. 그래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없다. 운동장처럼 뛰어놀았기에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내가 젊을 때 연화리 해녀는 30명 정도였다. 이제 다들 나이가 많이 들었다. 70세가 넘는 분이 많고 몸도 예전 같지 않다. 지금 꾸준히 물질하는 해녀는 15명 정도. 나머지는 봄에 성게 잡을 때나 참여하는 편이다.

배를 타고 운동장처럼 넓은 바다로 나갔다. 테왁 하나에 몸을 맡기고 먼바다까지 간 해녀도 있었다. 몇 년 전에는 공동작업장도 생겼다. 다 같이 배 타고 나가서 물질한다.

요즘도 옛날처럼 성게, 해삼, 우뭇가사리를 많이 수확한다. 우뭇가사리는 돈이 안 되는데 다른 해산물은 단가가 좋다. 물질해서 번 돈으로 놀러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여유도 생겼다.

정정순 해녀(왼쪽)가 선박 위에서 잡아온 해산물을 뭍으로 옮기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정정순 해녀(왼쪽)가 선박 위에서 잡아온 해산물을 뭍으로 옮기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돌아온 기장 바다

바다를 떠났던 시절도 있었다. 물질은 초등학생 때부터 계속했지만, 처녀 시절 잠시 직장생활을 했다. 연화리에서 바다 대신 생산직 공장에 출퇴근했다. 시집가서 다른 지역에 살기도 했다.

하지만 기장 바다가 늘 그리웠다. 공장에 다니면서도 쉬는 날 한 번씩 바다를 찾았다. 심심하면 친구들이랑 해산물을 채취했다. 직장 동료들과 홍합을 삶아 먹기도 했다.

결국 기장 바다에 다시 돌아왔다. 태어난 고향이 편한 데다 해녀라는 일이 좋았다. 기장에 다시 터전을 잡고 생계를 꾸리기로 했다.

연화리 해녀 중 내 나이가 가장 어리다. 바로 위 언니들도 네 살이 많다. 젊은 사람들이 해녀가 되고 싶다면 양성하고 싶다. 우리 직업도 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고 싶을 때 가면 된다. 몸 아플 때는 쉴 수 있고, 언제든지 물에 가면 수입이 생긴다.


정정순 해녀(왼쪽) 등 신암어촌계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따뜻한 음료를 마시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정정순 해녀(왼쪽) 등 신암어촌계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따뜻한 음료를 마시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질투받는 연화리 해녀들

신암어촌계 막내 해녀라 총무 일을 맡고 있다. 연화리는 단합이 잘 되는 편이다. 다른 동네에서 질투할 정도다.

우리는 공동 자금으로 단체 생활을 한다. 일이 있을 때마다 돈을 걷지 않는다. 조금씩 모아둔 돈으로 놀러 갈 때나 단체 행사에 쓴다. 차비, 식사비, 선물비 등에 사용한다. 해녀들에게 “얼마씩 내라”는 말없이 떡 한 되 주문해서 편하게 놀러 간다.

공동 자금은 보통 불가사리 제거 작업 등을 통해 모은다. 유해 해양생물인 불가사리를 건져오면 kg당 1000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 돈은 개인적으로 나눠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공동 통장에 넣어둔다.

해녀 문화를 알리기 위한 노력도 잊지 않는다. 해녀체험학교 만드는 일도 추진 중이다. 물질을 체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안전교육도 받았다. 물질 체험뿐만 아니다. 바다에 들어가지 않을 아이들을 위한 피리나 양초 만들기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런데 연화리 해녀촌 일대에 탈의장이 하나도 없어 걱정이다. 기본적인 공간도 없는데 해녀체험학교 운영이 가능할까. 우리도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온다. 바다 앞 공용화장실에서 옷 갈아입는 해녀가 있을 정도다.

정정순 해녀(왼쪽)를 포함한 기장군 해녀들이 선박 위에서 해산물을 정리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정정순 해녀(왼쪽)를 포함한 기장군 해녀들이 선박 위에서 해산물을 정리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근심 걱정 없는 바다

바다에 들어가면 근심 걱정이 없어진다. 육지에서는 여러 걱정에 휩싸이지만, 바다에 들어가면 긍정적인 생각밖에 안 든다. 밖에서 치고받고 싸워도 물속에 들어가면 그게 다 생각이 안 난다. 뭐라도 한 마리 더 잡는 데 집중할 수 있다.

물속에서는 최대한 마음을 비운다. 욕심이 생겨도 결국에는 용왕님이 허락해줘야 많이 잡을 수 있다. 바로 옆에 물건이 있어도 눈에 안 보일 때도 있다. 그저 오늘 조금 잡아도 이게 내 복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많이 잡으면 복이 많은 날이라고 웃어넘긴다.

바다는 엄마 뱃속 같은 느낌이다.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고 날 풍족하게 만들어준다. 한없이 큰 품이라 생각한다. 나를 보듬어주는 큰 울타리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해녀를 계속하고 싶다. 요즘은 환경 문제 등으로 물건이 귀해 4~5시간 작업해도, 예전에 1시간 물질한 양이 안 나온다. 그래도 바다에 들어가는 게 너무 좋다. 더 이상 바다가 오염이 안 되길 바랄 뿐이다. 깨끗하고 조용한 바다가 유지됐으면 한다.


※정정순 해녀 이야기는 인터뷰 내용에 기반해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습니다. 인터뷰 원본은 기사 위쪽 영상과 유튜브 ‘부산일보’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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