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무너지는 산악 빙하
빙하기가 오자 남극 대륙 빙하 밑에 파묻히는 신세였다. 몸이 갇힌 얼음 조각이 떨어져 나와 바다를 타고 흐르고 흘렀는데, 태평양을 지나 남해에서 서해를 돌아서 결국 닿은 곳이 한강의 지류 중랑천. 아기공룡 둘리 얘기다. 1980~90년대 대한민국 남녀노소를 울리고 웃긴 만화 주인공의 등장은 이러했다. 주제곡은 ‘빙하 타고 내려와~’라는 가사로 살짝 비틀었다. 지질학적으로 따지면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에는 빙하가 없었다. 해외여행도 없던 시절, 극 지방과 멀리 떨어진 한국인의 신나는 상상력이었을 테다.
이제는 빙하를 구경하는 여행이 상품으로 나오는 시대다. 빙하는 물이 얼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쌓인 눈이 녹지 않아 단단하게 퇴적된 것이다. 현재 지구상의 빙하는 약 1만 년 전에 끝난 홍적세 동안 여러 차례 지구 표면의 1/3을 덮었던 빙하가 조금 남아 있는 것이다. 빙하 대부분은 남극 대륙과 그린란드에 집중돼 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얼음이 녹아 떨어져 나가는 속도가 4배 이상 빨라졌다고 한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지구촌 전체가 어떤 위기를 맞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빙하는 극 지대만 있는 게 아니다. 알프스나 히말라야, 로키산맥 같은 고산 지대에도 존재한다. 이 산악 빙하와 동토층들 역시 시간이 갈수록 녹아 없어지고 있다. 사라지는 빙하를 추모하는 특별한 장례식 소식이 때때로 외신을 장식하는 이유다. 빙하가 붕괴하는 소리는 마치 “거대한 짐승의 울부짖음” 같다고 한다. 스위스에서는 1850년 이후 빙하 5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중국의 빙하 역시 1950년에서 1970년 사이에 절반 이상 없어졌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의 그 유명한 만년설도 옛말. ‘세계의 지붕’ 중앙아시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반대로 빙하 작용으로 형성되는 빙하 호수의 수량은 급증세다. 요컨대 빙하는 전 지구적 규모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산맥의 최고봉 마르몰라다산에서 빙하가 무너져 등산객을 덮쳤다고 한다. 산세와 풍광이 수려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알프스산맥 자락이라 충격이 더 크다. 이탈리아 총리는 빙하 붕괴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했다. 푸른 빙하가 빚는 색채는 형용하기 힘든 신비로움이 있다. 어떤 이가 "너무 아름다워서 슬퍼더라"고 한 바로 그것이다. 이 얼음 성벽을 볼 수 없게 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