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태풍 송다와 용오름
용은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동물이다. 역사적으로 용에 대한 동서양의 인식은 다른 듯하다. 용은 한반도에서 불교와 고대 신앙이 융합하면서 고구려의 고분 벽화를 채울 정도로 수많은 신화, 전설을 낳았다. 용은 인간에게 복을 주는 수호신, 불법을 지키는 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물의 신으로 불렸다. 서양에서는 용과 같은 형상이 괴물로 묘사된다. 용을 잡는 신화가 많이 출현할 정도로 마귀가 변신한 붉은 용은 죄악과 교활함, 잔인함으로 상징됐다.
용은 먹구름을 동반한 번개와 천둥, 폭풍우를 일으킬 수도 있어 숭배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바다에 기대어 사는 어민들은 고대부터 음력 정초면 해변에 제물을 차려 놓고 바다에 사는 용왕에게 풍어와 어부들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풍어제, 용왕제를 지내고 있다. 바다에서 숨진 영혼을 건져 내어 저승으로 고이 보내 달라고 빌기도 했다. 사면이 바다인 제주도에서는 용왕맞이굿이 지금도 유명하다.
이런 상상 속의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기록이 역사에서도 곧잘 등장한다. 세종실록에는 세종 22년(1444)에 제주 안무사로부터 “제주 정의현에서 다섯 마리의 용이 일시에 승천하였으며, 그 중 한 마리가 되돌아와 수풀 속을 휘감다가 다시 올라갔다”라는 보고가 올라와 재조사를 지시했다는 사료가 나온다. 숙종 38년(1712) 8월에도 “용 두 마리가 대정 형제섬 앞 바다에서 싸워 근처의 인가 66구와 나무와 돌이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올라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용이 엉켜서 싸우고, 하늘로 승천하는’ 모양의 기상 현상을 ‘용오름’이라고 부른다. 미국 중부 대평원에서 발생하는 토네이도와 비슷하다.
지난달 30일 태풍 송다의 영향으로 제주 서귀포시 사계리 용머리해안 앞 형제섬 바다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용오름이 발생했다고 한다. 기상청은 태풍의 영향으로 강한 비구름대가 제주 해역을 지나면서 차가운 공기가 상승기류와 뒤섞이면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용오름은 고대부터 용이 하늘을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 상스러운 일, 즉 길조라고 풀이됐다. 제5호 태풍 송다에 이어, 제6호 태풍 트라세가 제주도를 향해 북진하면서 한반도 전역에 물벼락을 뿌릴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꼬리를 무는 태풍과 유례없는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와 정치 난맥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인 한국이 용의 상스러운 기운을 받아 이 난국을 무사히 헤쳐 나가기를 기원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