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권위와 권위주의, 그 깊고도 먼 간극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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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비판을 용납하지도 않고
풍자마저 백안시해서야

사람 감화시키는 권위는
강제한다고 생기지 않아

마음에 안 들고 서운해도
넓은 도량으로 수용해야

삼국지를 보면 조조의 최대 라이벌은 원소였다. 중원의 패권을 놓고 치러야 하는 관도대전을 앞두고 조조는 몹시도 초조했다. 병력, 가문, 재력 등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앞서는 원소를 이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모사 곽가가 저 유명한 ‘조조가 이길 수밖에 없는 10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그중 하나가 도량이다. 원소는 속이 좁고 시기심이 강해 자신을 거스르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으나 조조는 도량이 커 합당하다면 자신의 뜻에는 개의치 않고 사람을 쓴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소는 참모들의 고언을 무시한 채 전쟁에 임하다 결국 참패해 몰락의 길을 걸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그릇의 크기가 두 사람의 운명을 갈랐던 것이다.


고등학생이 그린 만화 한 컷을 두고 지금 말들이 많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개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최근 금상을 받은 ‘윤석열차’라는 제목의 만화가 논란의 대상이다. 이 작품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흥원 측에 엄중 경고와 함께 징계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이다. 해당 작품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가진 열차가 연기를 내뿜으며 질주하고 시민들이 놀라 달아나고 있다. 조종석에는 김건희 여사로 보이는 이가 있고, 객실에는 칼을 든 검사들이 그려져 있다. 누가 봐도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내용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행사 취지에 어긋나게 정치적 주제를 다루어서 경고한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학생 따위가 어디 감히 대통령을 풍자하느냐며 발끈한 것이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별도 입장을 내지는 않았지만 불쾌한 기색까지는 숨기지 않는 모습이다.

권력자에게 풍자가 달가울 리 없다. 어쩌면 자신에 대한 조롱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은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권력자는 풍자에 발끈해선 안 된다. 기본적으로 풍자하는 이는 약자고 당하는 이는 강자이기 십상이다. 약자는 힘이 없기에 강자를 직접적으로 욕하지 못한다. 다만 에둘러 풍자할 뿐이다. 힘을 가진 강자는 그래서 속은 쓰리고 기분이 나쁘더라도 풍자를 용납해야 한다. 그게 강자의 풍모요 그런 풍모를 지녀야 비로소 권위가 선다. ‘감히 얻다 대고!’가 아니라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하는 마음 씀이 있어야 한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다르다. 둘 사이의 간격은 멀고도 깊다. 권위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합당하게 인정되는 영향력이다. 이때 합당하다는 건 오롯이 자발적임을 전제로 한다. 자발적이지 않을 때 즉 강제적이고 위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엔 권위주의가 된다. 권위는 주변 사람들이 마음으로 인정해 주어지는 것이고, 권위주의는 자신을 억지로 높이려는 오만에서 비롯된다. 권위는 사람을 감화시키지만, 권위주의는 굴종을 강요한다. 굴종에는, 당연하게도, 반발이 따를 수밖에 없다. 권위주의자에게 진정한 권위가 있을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아하게 말해서 표현의 자유라고 하지만, 여하튼 말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다. 러시아가 소련이었던 시절 일화가 전해진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한 사람이 모종의 전단지를 뿌리고 있었다. 반체제 인물이라 직감한 경찰이 그를 체포하고선 전단지를 압수했다. 그런데 전단지를 보니 그냥 백지였다. 황당해진 경찰이 물었다. “도대체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로 무슨 짓을 하는 거요?” 그 사람이 말했다. “굳이 쓸 필요가 있나요? 이미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말을 막는 권력은 권위주의로 흐르게 된다. 그런 권위주의 체제는 필망한다는 실증적 사례를 우리는 숱하게 봤다. 이를 직감해서인지, 윤 대통령은 권위주의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청와대를 부정하고 대신 용산 집무실을 만들었다. 탈권위주의를 내세우며 출근길 도어스테핑 시스템도 정착시켰다. 대통령 후보 때에는 “정치 풍자 코미디를 해도 되겠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당연한 권리”라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 윤 대통령의 모습과 태도는 그때와는 사뭇 어긋나 보인다. 윤 대통령을 풍자한 어느 화가의 그림을 두고 경찰이 수사를 운운하고, 겨우 고등학생의 만화에 정부가 나서서 징계를 예고한다. 언론의 따가운 비판을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이 들고일어나 가짜 뉴스로 정의하며 특정 언론사를 뿌리째 흔드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비판을 허용하지도 않고 풍자마저 백안시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어도 우리 사회에 권위주의의 그늘이 다시 드리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에 없이 낮은 대통령 지지율은 그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고생하신다”라며 너털웃음 짓는 대통령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럴 자유는 충분히 있을 테니 하는 말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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