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83. 몸과 영혼의 새로운 세계를 연다, 내 손 안에서 ‘손가락 요가(수인 무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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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마 차크라 무드라(Dharmachakra Mudra)’는 법륜 무드라라고도 한다. 내면과 외면의 조화를 추구할 때 많이 행하는 무드라이다. 시연 김미선. ‘다르마 차크라 무드라(Dharmachakra Mudra)’는 법륜 무드라라고도 한다. 내면과 외면의 조화를 추구할 때 많이 행하는 무드라이다. 시연 김미선.

사람의 신체 중 어느 부위가 가장 많은 정보를 품고 있을까? 얼굴일까? 목일까? 피부일까? 눈동자일까? 사뭇 궁금하다.

누군가의 인생이 궁금하다면 상대의 손을 가만히 지켜보라고 한다. 한 사람의 삶이 오롯이 내려앉아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손이기 때문이다.

손은 늘 그 사람의 최전선에서 활약한다. 세상의 온갖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辱)을 직접 겪는다. 손은 늘 삶의 무게를 다 짊어지는 것이다.

계절에 따라 생장 속도를 달리하면서 짙고 옅은 나이테가 만들어지듯, 사람의 손 또한 온갖 오욕칠정(五慾七情)의 기억을 제 몸에 각인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지문처럼 그가 겪어낸 인생의 소용돌이를 저마다의 독특한 문양으로 기억한다.

얼굴 버금가는 손도 그 사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준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신분의 증명이나 확인을 위하여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 인장처럼 수결(手決)을 사용하고 또 손금을 보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손은 얼굴만큼 많은 걸 보여 준다. 손에는 성별이나 연령은 물론이고 직업이나 취향, 성격까지도 읽을 수 있는 단서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다 맞힐 수 있는 건 아니고 추측일 뿐이겠지만, 손에는 그 사람의 시간이 쌓여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어떤 손은 얼굴보다 더 깊은 표정을 드러낸다. 그 손에서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깊이를 마주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손에는 다양한 표정이 있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며 요즈음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 섬세한 사람인지 소탈한 사람인지, 부드러운 사람인지 거친 사람인지 등의 성격까지 대충 짐작이 가게 한다. 얼굴이 우리 의식의 표정을 담는 그릇이라면, 손은 잘 드러나지 않는 무의식의 표정을 흡수하고 있는 정직한 가면 같다고나 할까.

손가락에는 감각신경세포가 많이 몰려 있다. 그래서 ‘제2의 뇌’로 불린다. 한국인의 긴손바닥근(장장근, 長掌筋)은 서양인보다 5배나 발달해 있다. 학계 일각에서는 그 비밀을 한국인의 ‘젓가락 문화’에서 찾는다. 젓가락질할 때는 50여 개의 근육과 30여 개의 관절이 동시에 쓰인다. 그만큼 대뇌 움직임이 빨라지고 집중력과 근육 조절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한 손은 손가락뼈 14개, 5개의 손바닥뼈, 8개의 손목뼈 등 모두 27개로 이루어져 있다. 양손 뼈의 총수는 54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뼈가 총 206개인데, 신체의 5%에 불과한 손의 뼈가 전체 뼈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것이다. 신경 말단도 가장 많이 몰려 있다. 그만큼 정밀하고 섬세하다.

손은 일생 250만 번 이상 움직이며 3000여 개의 동작을 만들어 낸다. 그러면서 입을 대신해 수많은 말을 대신한다. 어떨 때는 손가락 하나가 혀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손바닥에는 1만 7000가닥의 신경이 통하고 있으며, 그 신경이 뇌에 직접 송신하고 또한 반사적으로 몸 전체를 통제 조절하여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손도 말을 한다. 그 말을 듣기 위하여 집중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손을 보고 사람을 짐작하게도 한다. 쉽고 안일하게 산 사람의 손에는 유약함 등이 표출되며, 성실하게 열심히 산 사람의 손에는 강인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그 사람이 가진 삶의 궤적에 부합하지 않게 의외의 손을 가진 사람을 보면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의 성격은 그 사람의 손에 달렸다”는 안네 프랑크의 말도 곱씹어 보게 된다.

시인 정지용은 ‘카페 프린스’라는 시에서 “나는 자작의 아들도 아무것도 아니란다./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라고 노래했다.

거칠어야 할 시대에 거칠어지지 못한 자신의 흰 손을 때로 부끄럽게 여겼다는 이야기다.

손은 인체에서 일종의 전기 탐지기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대뇌의 감각 중추가 외부로부터 자극을 느끼도록 전달 기능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손의 외과학(外科學)을 체계 지은 S.바넬의 ‘손과 외과학’에서도 손의 인간적 의의를 강조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들의 뇌에는 손으로 느끼고 손을 이용해서 구축해서 발달시킨 사물이나 개념이 집적되어 있다”고.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동물과의 차이를 극복하고 오늘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된 것은 똑바로 서서 걷는 직립보행과 불(火)의 사용, 그리고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일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뼈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유인원은 인간과 비슷한 손이 있고 사람처럼 네 손가락의 방향이 모두 같지만 사람처럼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가 없단다. 거기에 비해 이 위대한 인간의 손의 정교한 움직임은 일명 만능의 손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칸트는 손을 ‘눈에 보이는 뇌의 일부’라고 극찬을 했다. 독일의 해부학자 알비누스도 엄지손가락을 ‘단 하나의 작은 손’이라고 표현했다.

손은 말과 눈과 더불어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수화법이 생기기도 했다. 또한 배우들이 연기할 때 가장 부담스럽고 컨트롤이 어려운 신체 부위를 들라고 하면 손이라고 한다. 손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잘 처리하느냐에 따라 연기력이 좌우되기도 한다니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손인 것 같다.

14세기 아랍인 모험 여행가 이븐 바투타는 수단의 흑인이 ‘여성의 손과 유방은 인체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 우주에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흉터로 가득한 타인의 손을 잡는 일 같은 게 아닐까. 인간의 연애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키스의 순간도 아니고 섹스의 순간도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손을 잡는 순간이다. 깍지를 꼈다? 그것은 그 어떤 애정행각보다도 의미심장하다. 깍지 낀 손은 아마도 키스와 포옹과 그 이상을 예고할 것이다.”(김영민)

선현들은 말한다. “우리는 더 위대한 전체의 모든 부분이다. 안에 있는 것이 밖에 있는 것이다. 전체는 모든 부분들의 합보다 크다. 가장 위대한 것은 가장 하찮은 것 속에 존재한다”고. 꼭 손에 비유하여 하는 말 같다.

진리는, 삶의 비밀은, 밝고 건강한 삶으로 가는 열쇠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이 자리에, 내 몸 안에 내 작은 손안에 비밀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틱낫한 스님이 저술한 책 이름도 ‘내 손 안에 부처의 손이 있네’이다. 법화경 이야기다.

손가락의 상징적 표현은 고대 인도에서는 아주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손가락의 다양한 제스처들이 신의 언어라고 보았고, 우주 에너지와 교감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인도의 종교적 신들에게서 다양한 손가락의 형태를 볼 수 있고, 부처님의 형상에서도 손가락의 독특한 제스처들을 볼 수 있으며, 그들의 전통적인 춤에서도 손가락과 팔의 다양한 제스처는 그 춤의 포인트가 되어 왔다.

요가나 탄트라, 동양의 수지침, 수상학, 서양의 점성학 등의 기본 원리를 잘 들여다보면 무드라 수행이 몸의 질병은 물론 불안이나 우울증, 스트레스 등과 같은 마음의 질병을 치유하고, 궁극적으로는 영혼의 성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노가 치솟을 때 무의식적으로 양 주먹을 꼭 쥐게 된다든지, 중요한 소식을 기다리며 가슴이 조마조마할 때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거나 손끝으로 명치 부분을 지그시 누른다든지 하는 행위, 뭔가 간절히 원한다든지,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기 능력의 한계를 느꼈을 때, 가슴이 철렁하는 충격적 소식을 접했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꽉 부여잡고 누구에겐가 어디엔가 기도를 올리게 된다.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의 손을 꼭 부여잡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무드라는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우리의 몸과 마음, 영혼의 각 단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의식하지 못했을 뿐 모든 사람이 이미 일상에서 어느 정도는 무드라를 행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언어가 끊어진 자리에, 언어를 초월한 세계에 오히려 침묵으로 전해줄 수 있는 의사표시를 ‘무드라(mudra)’라고 한다. ‘무드라’라는 단어는 ‘기쁘게 하다’, ‘즐겁게 하다’를 의미한다.

무드라라는 말은 상징적인 몸짓을 말하는데, 무드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불교에서는 수인(手印)이라 하고, 그 밖에 인(印) 혹은 도장(圖章), 상징적 언어, 도상(圖像), 제의(祭儀) 등으로 불린다. 무드라는 여러 가지 형태로 전해져 내려온다.

손 무드라는 손가락의 상징적 코드를 이용하여 내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하여 건강 회복과 평상심을 찾고자 하는 일종의 명상 요법이다. 손가락을 구부리거나 교차하거나 접촉하는 행위, 호흡 기법 등도 무드라에 포함된다.

손가락을 이용한 ‘무드라’를 ‘수인(手印)’ 또는 ‘수인 무드라(手印 mudra)’라고 하는데, 손가락들을 구부리거나 맞대거나 특정한 모양으로 만드는 것과 호흡, 눈의 표정 등이 어우러진 특정한 자세는 각기 특정한 의식의 상태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고 전해진다.

“빛의 에너지가 거울에 의해 반사되는 것과 같은 원리로, 무드라는 에너지의 흐름을 조절한다. 보통 우리의 에너지는 욕망을 좇아 항상 밖으로만 흘러나가고 있는데, 무드라의 훈련을 통해 수행자는 자신 속에 거울과 같은 반사 장치를 만들게 된다. 이를 통해 분산되는 에너지를 두뇌로 되돌려 보냄으로써 몸의 상태가 변화하고 영적인 고요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선현들은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무드라를 ‘손가락 유희’라고 번역하기도 하였다. 무한한 절대 의식과 에너지인 시바와 삭티의 유희(Lila)를 인간 차원으로 반영한다는 의미이다. (*게르트루트 히르시의 ‘무드라 손으로 여는 세상’ 책자를 다수 인용, 참고함)

손은 인류 역사상 가장 역사가 오래된 식사 도구이기도 하다. 아니 사실 식사 도구들도 결국은 손이 있어야만 활용할 수 있으니 사실상 식사 도구계의 정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순수 식사 도구로 사용하는 행위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비위생적 식사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 인구의 30% 정도는 손을 식사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배설물과 음식물의 차이와 더불어 양손의 불평등을 인정하는 인도인 특유의 관점이 있다. 인도인은 뒤를 씻을 때 반드시 왼손을 사용한다. 코를 풀고 귀를 청소하는 것도 왼손이 할 일이다.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일, 즉 에너지 공급이라는 중대한 사명은 당연히 오른손이 할 일이다.

영국의 시인 예이츠는 ‘사랑은 눈으로 오고, 술은 입으로 들어온다’고 노래했지만, 인도인은 ‘음식은 먼저 눈으로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다음에 입과 혀로 맛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남이 먹던 숟가락은 못 믿겠지만 적어도 먹기 전에 씻은 자신의 오른손은 확실히 믿을 수가 있다는 뜻이리라.

성경(막1:31)에는 치유와 은사의 기적을 행사하는 장면이 있다.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또한 출애굽기(4:3~7)에서 야훼는 민중에게 자신의 신성(神性)을 나타내기 위해서 지팡이가 손에서 떨어지면 뱀이 되는데, 손으로 잡으면 지팡이로 되돌아오는 기적 및 손을 가슴에서 꺼내면 나병의 손이 되고, 다시 가슴으로 넣었다가 꺼내면 원래대로 회복되는 손이 되는 기적을 모세에게 행하게 하였다.

석가가 손을 자유자재로 크게 한 이야기는 서유기에 나와 있는데 손오공이 한 번 뛰어 십만 팔천 리를 가는 술법을 구사해서 아무리 날아도 석가의 손바닥 안이었다는 얘기도 재미있다. 아미타여래의 손바닥에는 1000개의 수레바퀴 자국이 있고 그것이 내뿜는 빛은 금빛으로 발산한다고 하였다.

시바신은 천수천족(千手千足)으로 대표되듯이 힌두의 신들에게도 손을 많이 가진 신상(神像)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슬람권에서는 손바닥을 본뜬 ‘파티마의 손’인 호부(護符)가 신성시되고 있다.

양궁선수들의 손가락 감각은 남달라서 화살이 손가락을 떠나는 순간 제대로 쐈는지 금방 안다. 과녁 중앙의 카메라 렌즈를 깨뜨리는 신궁의 경지도 손 감각으로 먼저 안다는 것이다. 정곡(正鵠)을 찌르는 궁극의 힘도 손끝에서 나오는 셈이다. 세계를 주름잡는 한국 골프선수들의 손 감각 역시 뛰어나다. 혹자는 손가락으로 콩알 한 알 집어 올리는 손재주 덕분이라고도 말한다. 엥겔스는 손의 노동이 언어와 함께 뇌를 발달시켜서 사람을 사람답게 했다고 말한다.

손을 많이 쓰면 뇌 기능이 좋아지고 치매 예방에도 좋다는 말은 상당히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말이다. 아동교육 전문가들은 젓가락질, 피아노 치기, 손으로 하는 놀이 등 손을 많이 움직이는 것이 아이들의 창의력과 두뇌 발달을 자극한다고 하며, 아이들에게 손을 많이 쓰도록 권장하기도 한다. 이는 두뇌가 다 자란 어른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손을 많이 쓸수록 뇌 신경이 좋아지는 이유는 손을 많이 움직이면 뇌 신경세포가 자극되어 신경세포 사이를 연결하는 시냅스가 생기고 시냅스가 점차 두꺼워져 뇌 기능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심지어 손은 인간의 나이를 대략 가늠할 수 있는 부위이기도 하다. 실제로 나이가 들수록 잔뼈가 드러나고 표면이 거칠어지며 거무튀튀하게 변한다. 일종의 노화 현상이다.


동자승(童子僧)의 합장 기도 자세 ‘아트만잘리 무드라’. 최진태作 동자승(童子僧)의 합장 기도 자세 ‘아트만잘리 무드라’. 최진태作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손 모양은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모으는 ‘아트만잘리 무드라’의 형태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라 일컬어지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과 조수아 레이놀즈의 ‘꼬마 사무엘’, 에릭 엔스트롬의 ‘그레이스’, 밀레의 ‘만종’ 등에 등장한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정화수 한 그릇 떠 놓고 가족들의 안녕을 위해 칠성님께 치성드리던 옛 어머님들의 두 손 모은 기도 자세일 것이다.

“서울에 푸짐하게 첫눈 내린 날/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고요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추기경 몰래 명동성당을 빠져나와”로 시작되는 정호승 시인의 기도하는 손도 읊조려진다.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 등의 조각가로 유명한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은 유독 손에 주목한 조각가였다. 연인의 손, 왼손, 커다란 손, 피아니스트의 손, 일련번호 19번으로 알려진 손, 신의 손, 악마의 손등, 손 조각 수천 점을 제작했다.

손가락의 놀림이 손에 잡히듯 묘사한 글을 만난다.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흑백 건반을 어지러이 농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 진화의 최고 단계를 느낄 때가 있다. 저 생생한 손가락 놀림에서 아름다운 음들이 쏟아진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손가락 자체가 뇌이고 훌륭한 악기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는 새끼손가락을 구부려 연주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의 새끼손가락은 코브라처럼 움츠리고 있다가 순식간에 건반을 깨물었다.”(최학림)

경북 포항 호미곶에 설치된 상생의 손은 국가 행사인 호미곶 해맞이 축제를 기리는 상징물이다.

제인 구달을 아프리카에 보내 침팬지를 연구하게 한 루이스 리키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1960년 동아프리카 올드바이에서 발견한 인류 화석을 분석한 결과 그들이 석기 도구를 제작해 사용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라는 학명을 붙였다.

서양권 데포르메 그림체에서는 불문율적으로 손가락이 네 개씩만 그려진다. 대표적인 것이 미키 마우스이다. 다섯 개씩 그리면 자연스럽게 그리기가 불편하다는 게 그 이유란다.

손목 장애의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손목터널증후군, 팔꿈치터널증후군, 레이노이드형, 수지무력증 등이 있다. 인간의 손은 손 근육이 위축되기 쉽고, 손목의 관절이 약화되기 쉽다.

박수 치기, 손가락 뒤로 넘기기, 반대로 깍지 끼기 등 손목과 손가락 등을 풀어주는 일들이 필요하다. 특히 오랫동안 컴퓨터 마우스 등을 사용하거나 장시간 게임을 할 때는 중간중간 휴식과 더불어 손 운동이 필요하다. 손 건강을 위해서.

요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주의식과 개인의식의 결합에 있다. 각각의 무드라도 궁극적으로 우주의식에 접근하는 하나의 특별한 연결고리를 창조한다고 할 수 있다.

고대로부터 종교의식에서의 손의 위치와 자세는 인간의 특정한 의식 상태를 표현해 왔다. 기도할 때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는 행위를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트만잘리 무드라’라고 한다. 두 손을 가슴에 모은 것은 내면을 한곳에 집중하고, 조화와 균형, 평온, 침묵 그리고 평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자세는 좌뇌와 우뇌를 똑같이 활성화하고 조화롭게 한다. 이 무드라는 신의 도움을 구할 때나, 소망을 이루고 싶을 때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평화와 기쁨 속에 깊이 잠기게 돕는 작용을 한다.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끝을 붙이고 두 손을 편안하게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는다. 손바닥이 하늘로 향해 있을 때는 지식과 지혜의 무드라 즉 ‘즈나나(Jnana) 무드라’라고 한다. 지혜와 영성을 얻기 위한 무드라이다. 땅 쪽으로 향해 있을 때는 ‘친(Chin) 무드라’라고 부른다. 의식·마음을 뜻하는 단어 칫뜨(chit)에서 유래했다. 이 무드라는 인류의 욕망과 염원을 표현한다. 엄지와 검지 즉 소우주와 대우주가 연결되면 서로를 풍요롭게 만든다.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만든 닫힌 원은 요가의 궁극적인 목적인 개인의 영혼인 아트만과 우주의 영혼인 브라만의 만남, 즉 개인적 나와 우주적 나를 통일시킨다는 것을 상징한다.

인도의 무드라 연구가인 케샤브 데브에 따르면 이 무드라들은 기억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정신적 긴장과 장애를 치유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명상 자세를 더욱 강력하게 하는 정신세계의 손가락 안전장치이다.

지나간 것들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언젠가 이 모든 시간이 그럴 것이고, 지금의 이 가을 또한 그러할 것이다.

매일 몇 분간의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짧은 침묵의 순간들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노래한 윤동주의 감수성은 깊은 가을 한가운데서 느끼는 존재에 대한 고통스러운 연민의 끝에 닿아 있었으리라.

가을엔 혼자가 되자. 혼자이면서도 고독한 것을 알지 못하고 달려가면서도 자신이 어디를 향해 달리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소리치면서도 그 소리의 메아리가 무엇을 울리고 돌아오는지를 깨닫지 못했던 건 아닐까. 이 가을이 주는 화두로 바로 그대가 홀로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깊은 성찰과 사유를 가능케 한다는 것일 수도 있다.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미처 보지 못한 내 삶의 물집들이 눈물겹게 시선 속으로 들어올 때, 마실 나갔던 본성(아트만, atman)이 내 영혼 속으로 되돌아와 나를 깨우는 축복의 시간이 될 것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즈나나 무드라로 깊은 명상에 빠져도 좋고 기도나 사색, 멍때리기 등으로 조용히 하루를 홀로 지내보는 것도 이 계절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우리 몸에서 ‘손’처럼 희생적인 신체 부위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손으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가정은 수화나 점자라는 위대한 표현 도구도 탄생하게 했다. 알게 모르게 내가 지금껏 그 혜택을 누려 왔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이 되어 주고 싶다는 착한 생각도 이 가을날 한 번쯤 해보기를 권한다. 수인 무드라(手印 mudra)의 묘리도 주의 깊게 살피면서.


아트만잘리 무드라. 아트만잘리 무드라.

[손가락 요가(수인 무드라)]/ 최진태

그대의 지나온 흔적 켜켜이 쌓여 있는/그대 손 얼굴만큼 많은 걸 보여주네/분명한 시간의 질서 그 속에서 본다오

그대 손엔 감각신경 세포들 몰려있다/그 덕분에 제2의 뇌 별칭까지 얻었구려/한국의 젓가락 문화 이곳에서 더 빛난다

고통과 환희까지 그 손에 각인된다/내 지문 내 나이테는 이 세상에 유일하지/그대 인생 독특한 문양 그대 손에 담겨있군

상대의 삶의 행로 궁금하다 생각되면/상대의 손 지켜보라네 가만히 살피라네/오롯이 한 사람 일생 그 속에 내려 앉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 극복하고 이룩한/찬란한 문화 창달 일등공신 직립보행/불사용은 두 번째라네 그 다음은 손이였군

손짓 통한 상징성은 인도 춤이 대표적임/언어로 전달보단 다양한 해석 가능/더 효과적 표현 수단에 손만 한 게 있을까

완 인 올(one in all) 올 인 완(all in one)은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임/부분은 전체이고 전체는 부분이네/이 원리 체표반사설(體表反射說) 동양의학 근간이군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세계 있다 하면/언어가 필요없는 초월세계 있다 하면/침묵으로 전해 주리라 그걸 일러 무드라(mudra)

인지검지 맞붙인 채 허벅지 위 올려 놓고/양 손이 하늘 보게 때로는 땅을 보게/소우주와 대우주의 힘 결합되는 명상자세

숨가쁘게 내 딛느냐 보지 못한 삶의 물집/마실 갔던 아트만이 내 영혼 속 되돌아와/날 깨우는 축복의 시간 맞게 되길 기원하오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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