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미디어 바우처와 지역 신문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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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국장

한국·일본 모두 뉴스 신뢰 추락
신문과 독자 거리가 멀어진 탓

온 국민에 선택권 미디어 바우처
독자-언론 관계 복원 유도 가능

검증된 지역 신문에 시범 실시
저널리즘 회복, 디지털 전환 기대

“일본 신문의 신뢰가 추락하면서 ‘마스고미’라는 조롱까지 생겨났습니다.”

‘마스고미’는 매스컴의 일본식 표현 ‘마스코미’와 ‘고미’(쓰레기)의 합성어. 한국의 ‘기레기’와 같은 맥락의 신조어다. 지난 20일 일본 후쿠오카 자매지 서일본신문사와 디지털 혁신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에서 듣기 거북한 이 표현과 다시 마주쳤다.

“신문과 독자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신문의 신뢰가 추락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는 기사를 접한 결과, 불신이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신문업계의 진단은 오히려 한국에서 울림이 더 크다. 언론사 외부의 거대 플랫폼으로 뉴스 소비가 쏠린 탓에 뉴스의 가치가 떨어져서다.

한국은 뉴스 이용 경로 기준 ‘정문’(언론사 웹 사이트와 모바일 앱) 비율은 전 세계에서 꼴찌, ‘옆문’(검색 서비스, 뉴스 수집 서비스, 소셜 미디어)은 거꾸로 전 세계 으뜸이다. 사용자들은 언론사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포털과 SNS에서 무료로 무한정 뉴스를 소비한다. 언론사 브랜드가 실종되었으니 매체와 독자 사이에 선호나 충성의 관계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다시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지금의 독자는 이미 다양한 플랫폼에 둘러싸여 있어 쉽지 않습니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지역 신문사의 만남은 “독자 신뢰를 되찾기 위해 다시 독자 곁으로 다가가자”는 다짐으로 마무리됐다.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려면 언론사는 탈포털의 경쟁력을 갖추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일회성 뉴스 사이트 방문자가 관심과 니즈(필요)를 갖게 되어 회원에 가입하고 뉴스레터 구독자로 전환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에 디지털 독자 맞춤으로 준비된 레거시 미디어는 없다. 냉혹한 모바일 미디어 환경에 정면으로 부딪혀 가며 독자와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데 노력하지 않은 탓이다. 신문 부수 부풀리기를 통해 정부 광고를 수주하는 등의 편법 수익원에 안주한 탓에 디지털 혁신을 외면한 것도 한 이유다.

디지털 시대에 지면은 사라져도 뉴스는 필수적인 공공재로 남을 것이다. 저널리즘은 사회를 통합하고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뉴스가 ‘쓰레기’ 취급을 받는 상황이 이어지면 그 최대 피해자는 뉴스 소비자다. 그 결과 공론장이 형해화되면 공동체의 위기가 온다. 저널리즘 육성을 위한 논의와 법제화 추진이 계속되는 까닭이다.

공론에 부쳐진 육성책 중 미디어 바우처 제도가 있다. 연간 1조 원에 달하는 정부 보조금과 공익 광고 등의 재원을 불투명한 신문 부수 기준이 아닌 온 국민의 온라인 평가로 선택된 매체에 분배하는 제도다.

그러나 정부의 입김이 작용해서 언론 길들이기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익부 빈익빈식으로 서울의 거대 매체가 독식하고 영세한 지역 신문이 들러리만 설 우려도 제기된다.

하나, 온 국민이 각자의 바우처를 온라인 구독료나 광고료로 지불하는 바우처 제도의 취지를 잘 살리면 저널리즘의 신뢰와 디지털 혁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우선, 온라인 독자의 선택이 수익으로 직결되니 멀어졌던 매체와 독자의 관계가 재설정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냉정한 모바일 독자들의 구독 선택, 즉 바우처 지불을 얻으려면 언론사는 디지털 콘텐츠와 서비스를 환골탈태할 수밖에 없다. 독자 니즈에 맞춘 콘텐츠를 내놓고, 혁신적 서비스로 무장한 매체만 성공할 것이다.

따라서 언론사들은 뜨내기 방문자를 회원으로 가입시키려 노력할 테고 나아가 콘텐츠 구독자로 전환하는 데 매진할 것이다. 저널리즘의 품질과 독자 신뢰 관계가 새 국면을 맞을 것이다.

전면 실시에 앞서 필요한 시범 실시는 지역 신문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미 지역신문발전지원법에 의거한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 ‘우선 지원 대상’ 신문사가 전국에 골고루 존재한다. 지역 신문 진흥에 대한 사회적 합의까지 전제되어 있어서 진영 논리나 퍼주기 따위 불필요한 논란도 피할 수 있다.

미디어 바우처에 참가한 지역 매체를 시대적 추세에 맞게 메타버스 환경의 플랫폼에 묶으면 구독과 뉴스 발신이 용이하다. 지역 신문들은 각자 지역의 소식과 축제 행사 등을 전국구로 서비스하는 한편 전국의 독자들은 선호 지역 매체와 기자에 바우처를 사용하면 된다.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지역 뉴스 포털, 지역 생활경제 포털로까지 성장할 수 있다. 새 플랫폼이 중앙집권적 디지털 공론장에 파열구를 내고 지역균형발전의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면 지나친 환상일까? 미디어 바우처 제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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