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돈의 자유와 지방 살림살이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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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국감 끝나자 예산 정국 개막
야당 보이콧으로 ‘반쪽 시정연설’
지자체들도 국비 확보전 태세
지방 살림살이는 악화일로
국세 지방세 6:4 끌어올려야
재정분권이 지방자치의 관건

윤석열 대통령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원이 불참한 가운데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kimjh@ 윤석열 대통령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원이 불참한 가운데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kimjh@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정치가 갑갑해질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말이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한 이 말은 1997년 15대 대선 때부터 시작된 TV토론의 백미로 꼽힌다. 평소 정치인이 국민에게 늘 물어야 할 질문의 백미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이지 싶다. 사람과 돈이 죄다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 지방소멸의 시대에 지방을 살아가는 국민인 지방민에게 건네는 안부는 더 절절할 수밖에 없다. “지방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습니까?”


내년 나라 살림도 초장부터 파장 분위기가 연출됐다. 25일 국회에서 있은 윤석열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전원 불참으로 얼룩졌다. 1987년 개헌 이후 첫 ‘반쪽 시정연설’로 헌정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여야가 639조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 심사를 위한 일정에 합의하기는 했다지만 예산 정국의 서막이랄 수 있는 시정연설조차 극심한 정쟁 끝에 파행을 겪은 터라 험난한 여정을 예고한다.

나라 살림이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는데 지방 살림은 오죽하겠는가. 국회와 중앙정부를 상대로 예산 확보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할 지방자치단체들은 정쟁 당사자인 여야 정치권의 눈치까지 살펴야 하는 곤욕을 치르게 됐다. 2023년도 예산안에서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 213억 원, 가덕신공항 건설 120억 원 등 8조 237억 원을 확보해 ‘국비 8조 원 시대’를 처음으로 연 부산시로서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국회에 상주 중인 ‘국비 확보 추진단’을 중심으로 부산시 차원의 주도면밀한 대책이 있어야겠다.

이번 예산 정국에서 단연 지방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게 지역화폐의 지원 향방이다. 기획재정부에서는 지역화폐에 지원하는 국비 전액을 삭감하겠다며 서슬이 시퍼렇지만 이는 지방의 실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지적이 많다. 지역화폐는 현재 17개 광역지자체·173개 기초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그 만족도는 무려 86%가 넘는다. 지방민 63% 이상이 예산 삭감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여와 야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이 민의를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할 것이다.

이참에 정치권의 맹성도 뒤따라야 한다. 지방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벼랑 끝에 놓인 지방의 살림살이는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방치해 온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국회의원 뽑아 놓으면 중앙 정치판에 휩쓸려 지방 살림살이는 거들떠보지 않는 행태가 반복되어 왔다. 특히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승자 독식의 양당제가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지난해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30년을 맞았고, 오는 29일 제10회 ‘지방자치의 날’을 앞두고 있지만 지방자치의 갈 길이 여전히 멀기만 한 것은 정치권이 지방자치제를 안착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의 실패에는 재정분권의 실패가 기저에 깔려 있다. 국가재정과 지방재정 비율이 8 대 2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에 그렇다. 문재인 정부에서 한때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 목표치를 6 대 4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지만 구두선에 그쳤다.

지방재정을 선진국처럼 40%까지 올려놓아야 지방 살림살이의 주름살이 펴진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지방의 재정자주도 또한 현재의 65.7%에서 서둘러 8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중앙집중식 재정 구조도 바꿔야 한다. 지방세 감면이나 비과세의 결정권이 관련 법상 중앙정부와 국회에 있는 것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 재정을 중앙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는 지방자치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틈만 나면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유라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돈의 자유만큼 일상생활에서 즉각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 자유가 또 어디 있을까. 돈은 우리 사회를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동력으로, 한마디로 피 같은 존재다. 결국 돈은 자유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으로, 재화의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질서 유지와 정의의 실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 낸다.

행복한 삶, 나은 살림살이를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민의식을 넘어 깨어 있는 지방민 의식이 이제는 절실히 요구된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등 시시각각 불어닥치는 정치적 물결에 속절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떠돌 게 아니라 승자 독식의 양당제마저 당당하게 뛰어넘는 지역적 혜안과 결단이 필요하다. 발 딛고 살아가는 지역민으로서의 살림살이가 좋아져야 국민으로서의 살림살이도 나아질 것 아닌가.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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