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등화가친의 계절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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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라이프부 차장

등화가친(燈火可親). 등잔불을 가까이할 만하다는 뜻이다. 당나라 학자인 한유가 글공부하러 가는 아들에게 지어준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의 한 구절이다. '때는 가을이 되어 서늘한 바람이 가득해 등잔불을 가까이 할 수 있으니, 책을 펴 보는 게 좋지 않겠는가.' 등화가친이 등장하는 부분의 내용이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깊어간다. 스스로 책 읽기를 즐긴다고 생각했지만, 책장을 넘기는 시간보다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는 시간이 더 많음을 깨닫는 요즘이다.

문화체육부가 올해 발표한 ‘2021년 국민 독서실태’를 보면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량은 4.5권으로 2019년에 비해 3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종합 독서량은 1년간 읽거나 들은 일반도서(교과서·참고서·잡지·만화 제외) 권수를 말한다. 종이책 독서율은 성인 40.7%, 학생 87.4%로 2019년보다 각각 11.4%포인트, 3.3%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전자책 독서율은 성인 19%, 학생 49.1%로 2019년보다 각각 2.5% 포인트, 11.9%포인트 늘었다. 특히 학생과 20대를 중심으로 전자책 독서율 증가 폭이 컸다.

독서량이 줄었으니 독서 시간도 줄었을 터. 성인의 평균 독서 시간은 평일 20.4분, 휴일 27.3분에 그쳤다. 학생은 평일 72.1분, 휴일 93.2분이었다. 2019년과 비교하면 성인은 평일 12.7분, 학생은 평일 23.7분 줄었다. 종이책을 읽은 시간만 따지면 성인은 평일 12.4분, 휴일 15.9분, 학생은 평일 36.1분, 휴일 42.3분이었다.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등 다른 형태의 책 이용이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 때문에 시간이 없고, 스마트폰·텔레비전·인터넷게임 등 다른 매체·콘텐츠를 이용해서 독서하기 어렵다.” 성인이 독서하기 어려운 이유로 많이 꼽은 대답이다. 학생은 ‘다른 매체·콘텐츠’를 가장 큰 독서 장애 요인으로 답했다.

책은 어디서 살까. 성인은 ‘시내 대형서점’(34.7%), ‘인터넷서점’(32.9%), ‘동네 소형서점’(12.3%) 순이었고, 학생은 ‘인터넷서점’(32.7%), ‘시내 대형서점’(25.5%), ‘동네 소형서점’(15.2%), ‘학교 근처 서점’(8.2%) 순이었다. 성인이 지난 1년간 구매한 종이책은 1.9권에 그쳤다. 학생은 4.3권이었다. 도서 구매비는 성인 2만 9000원, 학생 5만 2000원이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도서관 이용률도 줄었다. 지난해 성인의 도서관 이용률은 16.9%에 그쳤다. 2019년의 23.9%보다 7%포인트 줄었다. “책을 읽지 않는다”, “일이 바빠서 갈 시간이 없다”, “집에서 멀다”가 이유였다.

‘책 덕후가 책을 사랑하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카툰 책 〈딱 하나만 선택하라면, 책〉(데비 텅 지음)의 한 페이지가 기억에 남는다.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하고 서점에 들른 주인공은 반납한 것과 같은 책을 구입하며 이렇게 말한다. “너무 좋아서, 소장하려고.” 취재하며 만난 책과아이들 김영수 대표는 “책방에 가면 책을 마음대로 볼 수가 있다. 사지 않고 그냥 나가도 된다. 마음의 살을 충분히 찌워서 나갈 수 있다”며 동네 서점의 존재 이유를 이야기했다.

집에서 가까운 공공도서관이든, 주인장의 큐레이션을 거친 동네서점이든, 보수동 책방골목이든, 책이 가득 꽂힌 서가를 누비는 기쁨은 온라인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책 향기를 맡고 책장을 넘기며 적당한 책 한 권 골라 서늘한 가을날을 즐겨 보자.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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