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부산 시민이 서울 시민보다 전기 요금 적게 내야
전력 자급률 부산 187% 서울 4.7%
KTX 요금처럼 거리 따라 차등화해야
전기 요금을 발전소에서 떨어진 거리에 따라 지역별로 차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요구는 원전 등 발전소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지난 10년간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최근 국회 입법화와 정부 차원의 제도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실현 여부가 관심을 모은다. 특히 새 정부의 원전 활성화 정책과 맞물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 등 환경문제가 다시 부각되면서 전기 요금 차등화 목소리는 더 힘을 얻고 있다.
∎전기 생산은 지역, 소비는 수도권
한국전력 적자 누적으로 전기 요금 인상이 이슈로 부각된 가운데 지난 국감에서 지역별로 전기 요금을 차등화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달 한전 나주 본사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에서 한전의 역대급 적자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이런 가운데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전기 생산은 지역에서 하지만 소비는 수도권에서 훨씬 많이 하는 소비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며 “지역별로 요금을 차등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승일 한전 사장이 “100% 공감한다. 전력 공급과 수요 지역 불균형으로 전력 생산과 운송을 위한 설비가 과다하게 지어지는 게 현실이어서 생산지와 소비지를 가급적 붙이고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며 논의에 불을 붙였다. 지난해 기준 서울은 4만 7296GWh의 전기를 소비한데 비해 생산량은 5344GWh에 불과했다. 반면 전체 소비량이 2만 1068GWh였던 부산의 발전량은 4만 345GWh로 지역별 불균형이 심각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이어 지난달 국회에서 세미나를 열고 지역별 차등 요금제 등의 내용을 담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대표 발의하기로 했다. 이 특별법에는 지역별 차등 요금제뿐만 아니라 수도권 기업들의 집중을 에너지 분권 차원에서 막아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어 입법 여부가 주목된다.
∎국가균형발전 차원 합리적 방안 만든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지역별 차등 전기 요금제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시장원리에 입각한 지역별 차등 전기 요금제 도입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한다. 그동안 발전소 인접 지자체를 중심으로 차등 요금제 요구가 있었지만 정부 기구에서 이를 공식 추진하고 나선 것은 처음이다. 원자력발전, 화력발전을 비롯한 발전소 주변 지역에서 환경오염, 폐기물 처리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생산지와 소비지가 같은 전력 요금 체계를 적용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게 균발위의 시각이다. 또 균발위는 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점을 고려하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전기 요금이 동일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균발위는 용역 제안 요청서에 “전력 사용량 수도권 집중에 따른 적정 비용을 고려해 시장 원리에 입각한 지역별 차등 전력 요금제의 합리적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원전 밀집지 차등 요금제 요구 분출
경북도는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기 요금 차등제 실현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에서 경북도는 지역별 차등 전기 요금제 도입 방안으로 발전소 지역 송전 비용을 고려한 전기 요금제 도입, 탄소중립을 선도하는 원전 지역의 지원 확대, 지자체의 전력 요금제 산정 권한 부여 등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지역을 전력 자급률에 따라 100% 이상, 50~100% 미만, 50% 미만 3단계로 나눠 요금을 차등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구경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의 송전 손실은 전체 발전량의 3.53%(1942만 4000MWh)로 2조 7400억 원에 이르며 전력 수송 중 손실량 및 손해액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송전탑 건설과 폐기물 처리 등에 따른 갈등 비용까지 감안하면 사회적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KTX 요금을 거리에 따라 부과하듯이 전기 요금도 발전소 거리에 따라 차등을 둬야 한다”며 “국가 전력시장을 균형발전 요소가 반영된 분권형 시장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값 전기료’ 이후 차등 요금제 운동 10년
지역별 차등 요금제 논의는 부산의 ‘반값 전기료’ 요구에서부터 출발했다.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김영춘 인본사회연구소 소장이 2013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반값 전기료’를 들고 나왔다. 산업용 전기 요금을 올려 원전 반경 5km 90%, 10km 80%, 20km 70%, 30km 50%, 50km 30%의 전기 요금을 지원하면 부산의 주택용 전기 요금 49.75%를 지원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2014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후보들이 공약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이후 오규석 기장군수를 포함해 원전 소재 지자체 행정협의회(기장군, 경주시, 영광군, 울진군, 울주군)가 정부와 한전을 상대로 원전 거리별 차등 요금제 실시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후 화력발전소가 밀집한 충청남도도 지역별 차등 요금제에 가세했다. ‘반값 전기료’ 운동은 단순히 전기 요금 인하 운동이 아니라 ‘에너지 부정의’와 ‘희생의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요구하는 ‘에너지 지역 분권’ 운동으로 이어졌지만 수도권의 반발을 의식한 정부의 반대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이번에는 요금제 변화 이뤄지나
국가 기관 차원의 움직임과 국회의 입법화 추진에도 불구하고 현실화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전기 요금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균발위의 입장에 대해 전기의 공공성을 훼손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원가주의 차원에서도 수도권이 발전소와 거리상 멀어 송전 비용은 비싸도 훨씬 많은 수용자가 1/n로 나눠 쓰는 것이기 때문에 전기 요금이 오히려 저렴하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원전 밀집에 따른 지역 주민들의 고통과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지 않은 수도권 중심의 사고다.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로 에너지 정의가 화두가 되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도 동떨어진 생각이다. 영국의 경우 송전 요금 차등화에 따라 지역별로 전기 요금을 차별화하고 있다. 대규모 원전이 있는 북부 스코틀랜드의 경우 전기 요금이 저렴하고 전력 소비가 많은 런던의 전기 요금은 비싸다. 미국과 호주 등도 거리 정산 요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까지 나선 마당에 이번에는 꼭 합리적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별 에너지 정의를 위해서도 현행 전기 요금 체계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