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재밌는 걸 왜 이제야 알았지”… ‘골 때리는 그녀들’의 풋살 사랑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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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등으로 구성된 부산 여성 풋살팀 ‘팀퍼스트’, 매주 2시간씩 훈련·연습 경기
평소 축구 하고 싶었던 그녀들, 활동적인 단체 구기 운동이 갖는 매력에 흠뻑 빠져
훈련·연습 경기 끝나면 아쉬웠던 순간 잔상 남아 다음 연습 시간 애타게 기다려져
풋살 배우겠다고 마음 먹어도 여성 풋살화 없어 아동용 풋살화 신는 경우도 다반사

직장인 등으로 구성된 부산 여성 풋살팀 ‘팀퍼스트’. 팀퍼스트 멤버들은 “풋살의 매력은 오롯이 팀 플레이에 있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직장인 등으로 구성된 부산 여성 풋살팀 ‘팀퍼스트’. 팀퍼스트 멤버들은 “풋살의 매력은 오롯이 팀 플레이에 있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터치 라인 38~42m, 골 라인 18~25m, 일반 축구장 1/4 정도 크기의 경기장. 좁은 경기장에서 개인기나 땅볼 패스 등을 더 활용하기 위해 일반 축구공보다 크기가 작고 탄성이 낮은 공을 사용. 팀당 5명이 좁은 공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빠르게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진영을 공략, 조직적인 연계 플레이로 결정적인 골 한 방을 터트렸을 때 넘치는 희열. 누구나 경기장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공으로부터 소외받지 않는 특별한 매력까지….

그동안 풋살은 남성들만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다. 몸싸움이 많은 데다 활동량도 적지 않기에 체력적으로 버티기 힘든 일반 여성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남성과 여성 스포츠를 구분 짓는 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활동적인 운동을 즐기는 여성들이 늘면서 풋살에 도전하는 초보들이 크게 늘고 있다. 요가나 필라테스와 같은 정적이고 개인적인 운동을 즐기던 여성들이 활동적인 단체 구기 운동이 갖는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시대에 풋살이라는 팀 스포츠의 매력에 빠진 여성들이 늘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반갑기도 하다. SBS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은 풋살을 향한 그녀들의 도전에 힘찬 응원가가 돼 줬다.


부산 여성 풋살팀 '팀퍼스트' 훈련 장면. 부산 여성 풋살팀 '팀퍼스트' 훈련 장면.

■‘풋알못’ 그녀들, 이젠 ‘황금발’이 되기를 꿈꾸다

부산 해운대 아르피나 풋살장. 매주 화요일 오후 8시가 되면 어둠이 깔린 그라운드에 야간 조명이 내려앉고 ‘그녀’들이 등장한다. 레깅스부터 러닝 팬츠는 물론, “스포츠는 역시 장비발”이라는 듯 풋살 동호인처럼 운동복을 제대로 차려 입고 그라운드로 입성하는 그녀들. 바로 여성 풋살팀 ‘팀퍼스트’의 멤버들이다.

둘러 서서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곧 정미경(33) 감독이 하루 훈련 일정을 소개한다. 팀퍼스트 멤버들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간 동안 훈련과 연습 경기를 한다.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자정이 가까워지는 늦은 시간이지만, 대부분이 직장인들이라 일을 마치고 늦은 시간이라도 짬을 내 풋살을 배우고 있다. 모두가 풋살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멤버들 나이는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다. 직업도 관세사, 보건 관리사, 레스토랑 사장, 청원 경찰, 소방관, 수학 강사 등 각양각색이다.

여성 풋살 동호회는 교육과 훈련에 방점이 찍힌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이어트나 취미, 친목 도모 등을 위한 다른 모임과 달리 제대로 풋살을 배우겠다는 강한 의지로 동호회가 꾸려지고, 소위 말하는 선출(선수 출신) 강사가 감독을 맡아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이 진행된다. 교육과 훈련 없이 단지 경기만 즐기는 남성 풋살 동호회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1년 전만 해도 부산에서 여성 풋살 동호회를 검색하면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지만, 최근엔 제대로 풋살을 배우고 싶다는 이들이 늘면서 동호회들이 속속 꾸려지는 추세다.

정미경 감독은 실업팀인 국민체육진흥공단 여자 축구팀에서 활약했던 선출 감독이다. 어릴 적부터 축구를 좋아해 풋살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대학원생 서승희(40) 씨는 “여성 풋살 동호회엔 남성 감독이나 강사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저를 비롯해 여기 멤버 대부분이 여성 감독으로부터 배워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훈련이 시작되자, 멤버들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졌고, 자못 진지해진 표정이다. 인사이드 패스를 하고 콘 장애물을 돌아가는 훈련부터, 패스를 받은 뒤 연습 상대가 쫓아오면 공간을 확보하고 다시 패스를 하는 훈련이 이어졌다. “바디 포지션을 빨리 열어 주세요. 그래야 상대가 따라 붙었는지 빨리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간을 넓혔다가 다시 좁혔다가” “위치 잡으세요~” 정 감독의 호령이 이어졌다.

1시간 동안 훈련이 끝나면 연습 경기가 이어진다. 팀을 나눈 팀퍼스트 멤버들은 각자 맡은 포지션에 맞게 위치를 잡는다. 풋살은 포지션별로 골문을 지키는 골키퍼를 ‘골레이로’, 수비와 볼 배급을 맡는 수비수를 ‘픽소’, 측면 공격수를 ‘아라’, 중앙 공격수를 ‘피보’라고 부른다.

연습 경기라고 하지만 볼 다툼은 치열하다. 강한 몸싸움에도 서로 밀리지 않고, 넘어져도 금세 훌 털고 일어나 공을 향해 달려간다. 발등에 공이 제대로 얹힌 매서운 슈팅도 간간히 터져 나온다.


부산 여성 풋살팀 '팀퍼스트' 연습 경기 장면. 부산 여성 풋살팀 '팀퍼스트' 연습 경기 장면.

■‘임파서블 이즈 나싱’ 풋살 없이 살 수 없는 그녀들

팀퍼스트 멤버들은 어느덧 풋살에 죽고 산다. 풋살 지식, 기술, 체력 모두가 부족했지만 매주 한층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가 뿌듯하다. 훈련과 연습 경기가 끝나면, 아쉬웠던 순간이 잔상으로 남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다음 연습 시간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그녀들에게 풋살의 매력은? 관세사인 신현비(34) 씨는 풋살을 시작한 뒤 체력적으로 건강해진 자신을 볼 때 가장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신 씨는 “어릴 적부터 축구를 너무 해보고 싶었는데, 최근 동호회가 많이 생겨 용기를 내 시작했다”며 “단체로 팀 경기를 할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팀원들이 단결해 조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고, 못해도 괜찮다고 서로 힘을 복돋아 줄 때면 큰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풋살을 시작한 지 1년 가까이 됐다는 장인화(26) 씨는 “평소에도 수영, 스피닝 등 활동적인 운동을 좋아했는데, 개인 운동보다는 팀 운동을 해보고 싶어 용기를 냈다”며 “팀원들과 단합해 경기를 하는 것이 매우 재밌다”고 말했다.

청원 경찰 강혜련(34) 씨는 풋살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됐다. 평소 남자들이 조기 축구를 하는 것이 부러웠다는 강 씨는 풋살을 해보고 싶다면 실내 풋살이 아닌 실외 풋살을 꼭 해보라고 주변에 권한다. 강 씨는 “실내보다는 탁 트인 실외 풋살장에서 뛰는 재미는 뭐라 형언할 수 없다”고 말했다.

10대 멤버인 석지원 양과 민유리 양은 부산 기장군에 있는 부산국제외국인학교(ISB)에 다니는 중학교 2학년, 3학년 학생이다. 이모뻘 되는 멤버들 사이에서도 발재간이 눈에 띌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다. 석 양은 “아버지가 축구의 나라 영국 사람인데, 축구를 너무 좋아하신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풋살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민 양은 “열심히 연습해 당장은 학교 풋살 대항전에서 우승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풋살을 시작하는 데 있어 ‘금녀의 스포츠’라는 편견은 많이 사라졌지만, 신체적인 조건에 따른 불편함이 없지는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풋살화다. 풋살을 시작하겠다고 맘을 먹었지만, 발에 맞는 풋살화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인 허나검(25) 씨는 “발이 좀 큰 분은 남성 풋살화를 신으면 되지만, 발이 작은 분들은 아동용 풋살화를 찾아 신어야 한다”고 웃었다.

팀퍼스트는 부산에서 1등 팀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담아 정한 팀명이다. 팀퍼스트 멤버들은 부산 지역 대학생, 직장인 여성 풋살팀이 늘어나 리그전 등으로 교류가 활발해지고, 여성 풋살이 생활 체육으로 자리 잡아 더 많은 여성들이 풋살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팀퍼스트의 최종 목표를 묻자 손현진(33) 씨는 “‘골때녀’에서처럼 여성 풋살 대회에 참가해 꼭 우승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 여성 풋살팀 '팀퍼스트'는 직장인, 대학원생 등으로 구성됐다. 풋살의 재미에 흠뻑 빠진 그녀들은 매주 연습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부산 여성 풋살팀 '팀퍼스트'는 직장인, 대학원생 등으로 구성됐다. 풋살의 재미에 흠뻑 빠진 그녀들은 매주 연습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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