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어머 이건 봐야해…‘올빼미’와 월드컵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결정느림보’인 기자는 매일매일 선택의 기로에서 고뇌합니다. 간식 하나 먹으려 편의점에 갔다가 매대 앞에서 10분을 서성입니다. 과자도 음료수도 종류가 ‘머시 이래’ 많을까요.

보고 즐길 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아서 좋긴 한데, ‘너무’ 많습니다. 황금 같은 주말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수입니다. 이불 밖은 위험한 요즘 날씨에 어울리는 ‘필람’ 콘텐츠들을 추천합니다.


■ 호평일색 ‘올빼미’…‘아바타2’ 개봉 전 영화관 찾아야

기자는 영화 업계에서 인정하는 시네필입니다. 국내 유명 멀티플렉스에서 VVIP 회원 등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를 많이 보기만 하면 됩니다. 내세울 게 없어 부끄럽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몇 차례 취재하면서 독립·예술영화 구경도 꽤 했습니다.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의 장점이자 단점은 보는 눈이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남들이 재미있다는 영화도 성에 안 찰 때가 있습니다. 감동적이라며 추천 받은 영화는 신파 투성이였고, 반전에 놀랐다고 해서 봤더니 클리셰 범벅이었던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 깐깐한 영화 팬이 보기에도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 ‘올빼미’는 반가운 웰메이드 사극입니다.

영화는 조선 후기 인조(유해진 분)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가난하지만 침술이 뛰어난 맹인 경수(류준열 분)가 궁으로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사극을 보는 듯 합니다.

그러나 어두운 곳에선 희미하게 볼 수 있는 경수가 어느 날 밤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는 장면부터는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물이 펼쳐집니다. 경수가 진실을 알리려다 위험에 빠지고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뻔하지도 과하지도 않습니다. 속된 말로 ‘쫄리는 맛’이 있고, 개연성도 나쁘지 않아 설득력이 있습니다.

영화는 디테일에도 상당한 신경을 썼습니다. 특히 의상과 소품에서 미술팀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처음으로 왕 역할을 맡은 천만배우 유해진의 명연기도 매력 포인트입니다. 어느덧 중견배우로 접어든 류준열과 아역배우를 비롯한 조연들의 연기 역시 수준급입니다.

올빼미는 2030 관객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손익분기점(21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빼미의 누적 관객수는 205만 명을 넘겼습니다. 전체 관객 중 2030의 비중이 과반인 57%(20대 27%, 30대 30%)에 달하고, 영화평을 남길 수 있는 각종 사이트에는 호평일색입니다. 실관람객만 만족도를 매길 수 있는 CGV ‘골든에그’ 지수는 98%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열렸던 시사회에서는 박수까지 나왔다는 후문입니다.

영화를 꼭 이번 주말에 봐야 하는 이유는 ‘아바타2’ 때문입니다. 외국영화 최초로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모았던 아바타의 두 번째 이야기가 다음 주 수요일(14일) 개봉하는 만큼, 개봉 3주차에 접어들 올빼미가 걸릴 스크린은 비교적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요새 15세 관람가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낯 뜨거운 장면이나 잔인한 장면이 없어 가족끼리 함께 관람하기에도 괜찮습니다. 맹인이 주인공인데다 스릴러 장르인 만큼 음향에도 신경을 많이 쓴 영화입니다. 음향 시설이 좋은 영화관에서 관람할 것을 추천합니다.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 황희찬(왼쪽부터), 황인범, 김민재, 나상호가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 황희찬(왼쪽부터), 황인범, 김민재, 나상호가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월드컵에도 통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들 합니다.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이 보여준 저력이 바로 각본 없는 드라마였습니다.

사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16강에 오를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우루과이와 비겼을 때만 해도 희망이 있어 보였지만, 가나에 패한 이후로는 가망이 없다고 봤습니다. 지난달 <슈퍼컴퓨터가 예상한 포르투갈전…한국 승리 19.3%>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한 자릿수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은 강적 포르투갈과 조별 예선 최종전에서 역전승을 거두고 16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경기 후 선수들이 태극기에 적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는 이제 전 국민이 아는 유행어가 됐습니다. ‘중꺾마’라는 줄임말로도 사용되는 이 말은 힘든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일종의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입니다.

‘중꺾마’는 사실 e-스포츠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지난달 열린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챔피언십에서 10년의 도전 끝에 우승한 프로게이머의 인터뷰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당시 참가팀 중 최약체로 평가됐던 ‘DRX’는 예상대로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패했는데, 주장인 김혁규(게임명 데프트) 선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오늘 졌지만,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인터뷰를 한 기자는 김혁규의 말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의역해 보도했습니다.


DRX 주장 '데프트' 김혁규(가운데)가 지난 11월 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체이스 센터에서 열린 2022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에서 우승한 뒤 벅찬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김혁규는 커리어 첫 우승을 달성한 동시에 롤드컵 사상 최고령(1996년생)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연합뉴스 DRX 주장 '데프트' 김혁규(가운데)가 지난 11월 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체이스 센터에서 열린 2022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에서 우승한 뒤 벅찬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김혁규는 커리어 첫 우승을 달성한 동시에 롤드컵 사상 최고령(1996년생)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연합뉴스

이후 놀랍게도 DRX는 지난 대회 우승팀을 비롯한 강팀들을 연이어 누르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기적을 연출했고, ‘중꺾마’는 단숨에 온라인에서 최고의 밈이 됐습니다.

부상투혼을 선보였던 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지난 7일 이 말을 두고 “정말 멋있는 말이다. 선수들에게 정말 큰 영향을 줬다”며 “선수들, 우리 팀, 국민들도 인생에 있어 꺾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김혁규 선수는 지난 8일 SBS 인터뷰에서 “그 문구로 (대표팀 선수들이) 힘을 얻고 경기를 뛰셨다는 걸 보고 제가 조금이라도 기여를 했다는 것에 자랑스럽다”며 “저도 10년 동안 꺾이지 않고 꾸준히 하다보니 이렇게 결실을 맺게 됐다. 희망을 가지고 꺾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브라질과 16강에서 한국이 탈락한 것은 아쉽지만, ‘꺾이지 않는 마음’은 아직 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말 열리는 월드컵 8강 경기들은 놓쳐선 안 되는 ‘빅매치’들입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토너먼트 대진표 2022 카타르 월드컵 토너먼트 대진표

4강행 티켓을 놓고 격돌할 8강전 대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12.10. 00:00 크로아티아 vs 브라질

12.10. 04:00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12.11. 00:00 모로코 포르투갈

12.11. 04:00 잉글랜드 프랑스


유럽과 남미의 전통 강호 7개 팀이 예상대로 8강에 진출한 가운데, 아프리카의 모로코가 대진표에 오른 것이 눈에 띕니다. 모로코는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을 꺾는 이변을 일으키고 8강에 오른 ‘다크호스’입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포르투갈까지 누르고 4강에 오른다면 2002년 당시 한국이 보여준 것 못지 않은 신화를 축구사에 남길 수 있습니다. 브라질을 상대하는 크로아티아도 언더독으로 평가받지만, 단판 승부에선 아무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크로아티아는 2018 러시아 월드컵 4강에서 잉글랜드를 꺾고 결승에 올랐던 강팀입니다. 당시 크로아티아는 결승에서 프랑스에 2-4로 패하고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의 8강전은 전 세계 축구 팬들의 관심이 쏠리는 최고의 매치입니다. 한국시간으로 새벽 4시에 시작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주말인 만큼 ‘올빼미’ 모드가 되어 감상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의외로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진검승부는 월드컵 92년 사상 처음입니다. 지면 바로 탈락하는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조별예선 맞대결도 1966년과 1982년 두 차례에 불과했습니다. 당시엔 잉글랜드가 모두 승리했습니다.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의 맞대결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성사된 바 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승부차기 끝에 네덜란드를 꺾고 24년 만에 결승까지 진출했습니다. 네덜란드 최고의 윙어 아르옌 로번이 페널티박스 안까지 돌파해 슈팅한 것을 아르헨티나의 ‘지우개’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슬라이팅 태클로 막아내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명장면으로 회자됩니다.

2014년 브라질 대회 결승에서 독일에 무릎 꿇었던 아르헨티나는 마지막 월드컵 무대에 오른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에게 트로피를 안겨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네덜란드를 꺾어야 합니다.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설욕전을 벌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사실 네덜란드는 월드컵 우승 경력이 없습니다. 통산 3회의 준우승에 그쳤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는 아픔까지 겪었습니다. 그만큼 이번 대회는 단단히 벼르고 나왔습니다. 세계 최고 수비수로 꼽히는 버질 반다이크(리버풀)를 필두로 탄탄한 조직력을 자랑하고 있어 수준급의 명경기를 연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