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바루 기자의 시선] 초량왜관 통역관 ‘스미나가 지우에몽’ 기리는 관용사 다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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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바루 나오코 서일본신문 기자

지난 22일 동짓날 부산 서구 관용사에서 열린 다례재 때 천상스님이 초량왜관 통역관 스미나기 지우에몽 비석을 앞에 두고 차를 올리고 있다. 지난 22일 동짓날 부산 서구 관용사에서 열린 다례재 때 천상스님이 초량왜관 통역관 스미나기 지우에몽 비석을 앞에 두고 차를 올리고 있다.

동짓날인 지난 22일, 부산 서구 천마산 관용사에서 다례재가 올려졌다. 관용사에는 조선 후기 때 쓰시마에서 파견되어, 초량왜관에서 조선·일본간 무역을 책임지면서 조선어 통역관으로 근무한 스미나가 지우에몽(住永次右衛門)의 묘지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사망 연도가 1822년이라고 새겨져 있으니 올해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 동짓날 기도와 팥죽 나누기에 모인 관용사 신도들이 비석에 차를 올리고 다례재를 지내면서 한일 우호의 뜻을 함께 했다.

왜관 업무가 기록된 〈관수일기〉를 보면 스미나가 씨가 눈을 감기 직전 해에 동료 통역관이나 부산 사람들과 차를 마셨다. 이번 다례재는 〈관수일기〉에 실린 스미나가 씨의 다례 일화에 따라 진행됐다.

이 비석은 관용사 천상스님이 아미동에 사는 신도 집의 벽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아미동에는 지금도 주택가 안에 일본인 망자의 비석이 많이 남아 있다. 천마산 산복도로에는 광복 이전까지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었고 6·25 전쟁이 발발하자 피란민들이 물려와서 비석들을 건축 자재로 쓰고 집을 지었다.

기자도 처음 아미동에 갔을 때 일본인 비석들이 벽이나 계단 곳곳에 박혀 있고, 화단 받침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광경을 보고 복잡한 심경에 마른 침을 삼켰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비석의 주인은 110년 전에 28세로 유명을 달리한 야마나카 토시츠구라는 젊은 남자였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해독하면서 이국에서 생애를 마친 일본인들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지금 아미동은 ‘비석문화마을’으로 관광지화 됐고, 전시장이나 비석 캐릭터를 그린 간판도 있다. 비석들은 거기에서 얼굴 없는 건축 자재에 불과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무거움을 통감한다.

관용사 천상스님은 불교적 시각에서 “업신여김을 받던 비석 주인공들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내야 한다”고 주장하던 중 스미나가 씨 비석을 만났다. 그 동안 전문가 조언을 구하면서 고문서 안에서 스미나가 씨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게 됐다. 비석 하나하나에는 사람의 인생이 담겨져 있다. 이번 동짓날 다례재는 그 중 어느 한 일본인의 삶을 조명해 주는 뜻 깊은 자리였다. 다례재가 끝날 무렵, 스미나가 씨가 하늘에서 응해주듯 올해 부산에 첫 눈이 내렸다.

naokonbu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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