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터는 ‘무자본 갭투자’ 극성… 전세가율 높은 집 피해야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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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9채 매입 ‘빌라왕’ 피해 속출
매매가보다 전세 보증금 더 비싸
올해 ‘HUG 보증’ 발급액 54조
전세가율 낮은 부산도 안심 못 해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 모 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27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 모 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27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소위 ‘빌라왕’ 사건으로 전세 사기가 관심거리로 떠오르자 ‘혹시 우리 집도 전세 사기가 아닐까’라고 우려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빌라왕 사건처럼 전세 계약 기간 중간에 집주인이 바뀌거나 사망해 버리면 임차인은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아 불안감이 크다. 이에 세입자들은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을 서두르고 있다.


■시세 정보 없는 허점 이용

수도권 빌라와 오피스텔 등 주택 1139채를 ‘무자본 갭투자’로 사들여 임대사업을 벌인 빌라왕 김 모 씨는 임차인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했다. 김 씨의 수법은 건축주, 브로커 등과 짜고 시세 정보가 없는 빌라와 다세대 주택을 매입하거나 신축해 매매가보다 높은 가격에 전세를 놓는 것이었다. 갭투자를 활용하면 사실상 자기 자본 없이 신축 빌라 등을 무한정 구매할 수 있다. 빌라왕이 1000채 이상 주택을 소유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러한 수법을 쓰는 이들은 바지 사장을 만든 뒤 일정 수익을 나눠 갖고 명의를 넘긴다. 빌라왕 역시 전세 사기에 이용된 바지 사장이라는 것이 경찰 수사 결과다. 이들은 세입자를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보증보험, 반환보증보험 가입을 약속하고 계약서 특약 조항에 넣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보증사는 임대인을 악성 임대인 명단(블랙리스트)에 등재했거나, 임대인과 연락이 일절 되지 않기도 한다.

최근 서울, 인천, 광주 등에서 전세 사기 행각이 발각돼 앞으로도 비슷한 수법의 빌라왕 사태가 터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일 국토교통부는 전세 사기로 의심되는 거래 106건을 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부산 ‘빌라왕’은 없나

업계에서는 빌라왕 같은 사태는 전세가율이 높은 상황에서 발생하기 쉽다고 본다. 전세가율이란 주택 매매가격에서 전세 가격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전세가율이 높으면 그만큼 갭투자를 하기 쉬워진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의 시세를 알 수 없는 신축 빌라의 경우 ‘신축이라 비싸다’ ‘최근에 가격이 계속 오르는 추세다’라는 말에 속기 쉬워진다”고 말했다.

빌라왕이 많은 빌라를 사들인 인천의 경우 최근 3개월 전세가율은 87.4%에 달한다. 인천에선 11월에만 274건의 보증 사고가 발생했고 사고율은 10.8%에 달한다. 부산의 전세가율은 66.7%로 전국 평균(82.0%)을 밑돈다. 부산의 11월 보증 사고는 18건이며 보증사고율은 1.9% 수준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관계자는 “부산은 빌라 전세가율이 낮아 아직 보증 사고가 전국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산 역시 무자본 갭투자에 안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불안한 세입자 서둘러 보험 가입

전세 사기가 관심거리가 되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은 집주인이 계약 기간 만료 후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공사가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대위 변제하고, 나중에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받아내는 제도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올해(27일 기준) 보증보험을 새로 발급한 세대는 23만 3807세대로 지난해 전체 발급 세대 수(23만 2150세대)를 이미 넘겼다. 또한 같은 기간 보험 발급 금액도 54조 4708억 원으로 지난해 연간 규모인 51조 5508억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보증 사고와 대위 변제액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까지 주택도시보증공사 누적 대위 변제액은 7690억 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규모(5040억 원)를 넘어섰다.

하지만 반환보증보험이라고 100%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세 사기 세입자 중 상당수는 전세금 반환보증보험 가입자로 알려졌지만 집주인 사망 시 세입자의 계약 해지 통보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토부는 ‘전세 보증금을 지키기 위한 핵심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배포한다. 체크리스트는 선순위 저당권 등이 없더라도 경매를 통해 보증금을 100% 돌려받으려면 전세가율이 낮은 집을 선택해야 하고, 임대인에게 세금 체납이 없는지, 공인중개사가 정상 영업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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