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좌표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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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북한 주민 4명이 탄 목선이 강원도 삼척항을 통해 귀순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좌표’(座標) 논란이 빚어졌다. 국방부가 배가 발견된 지점을 삼척항 인근으로 발표하자 “군은 작전상 구체적인 좌표를 찍는 게 일상인데, ‘인근’은 통상적이지도 적절하지도 않은 표현”이란 지적이 쏟아졌다. 좌표 식별에 실패할 만큼 경계태세에 구멍이 뚫린 것을 무마하려고 사건을 축소했다는 질타였다.

좌표는 직선, 평면, 공간에서 임의의 점의 위치를 지정하는 수나 값을 일컫는 수학 용어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1596~1650)가 고안해 발전시킨 수학적 개념이다. 데카르트는 우연히 천장에 붙어 있는 파리를 보고는 그 위치를 나타내는 방법을 골몰하던 중 좌표를 발명했다.

좌표는 사전적으로는 사물이 처해 있는 위치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된다. 일상에서는 좌표가 개인과 조직의 지향점이나 목표물을 뜻하는 단어로 널리 쓰인다. ‘삶의 좌표’ ‘경영 좌표’ ‘공격 좌표’ 등이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파생한 의미도 있다. 온라인상에서 개인 신상을 털거나 누군가를 비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근거 자료로 링크를 거는 행위를 두고 네티즌들은 “좌표를 찍는다”고 말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성남FC 후원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 여야 간에 ‘좌표 찍기’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 23일 민주당이 이 대표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 16명의 실명과 소속, 사진 등의 정보를 담아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뿌린 자료가 발단이 됐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방탄할 의도로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검사들 압박용 좌표를 찍어 줬다”고 연일 맹비난한다. 민주당은 야당을 탄압하는 보복 수사를 멈추라며 맞서고 있다.

이처럼 집권당과 거대 야당은 사사건건 대립과 충돌을 일삼아 볼썽사납기만 하다. 협치는커녕 국정 현안과 민생 법안 처리에 요구되는 대화조차 등한한 채 그저 정쟁을 벌이는 데 힘을 낭비한다. 마치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난파선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양당이 이러다가 자칫 ‘대한민국호’까지 침몰 위기로 내몰진 않을까 두렵다.

올해를 되돌아보며 새해를 설계하는 세밑이다. 앞으로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할지 여야에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정확한 좌표 설정을 위해서다. 국민 다수가 바라는 정치권의 좌표는 조속한 민생 안정과 복합적 경제 위기 극복이 아닐까.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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