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신춘문예-동시 당선소감] 다음 생도 글밭 언저리에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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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민 연지민

서른, 처음으로 글 숲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냥 가보고 싶었습니다. 문학에 대한 깊은 고민보다는 나를 찾아가는, 조금은 가벼운 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의 유혹이 사라진 뒤 마주한 현실은 구중궁궐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시 문이 가로막았고, 어찌어찌 그 문을 밀고 들어가면 또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볍게 나선 여행이 돌아갈 수 없는 길이 되고, 끝나지 않는 길이 되어 문학의 그림자를 좇을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칫댈 때마다 그 문들은 더 단단해지라는, 더 열정을 쏟으라는, 더 깊어지라는 강력한 시그널이었습니다. 어둑한 글 숲에서 걷기를 멈추지 않고 문장의 버거움을 견디고 있는 것은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장 나다운 나였기 때문입니다. 돌고 돌아 글 쓰는 일이 업이 된 지 오랩니다. 그런데도 문학에 대한 갈증으로 여전히 시의 언저리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이생에서 못하면 다음 생에서 하면 된다는 이 느긋함은 또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저보다 더 안타깝게 바라봐주시고 마음 써주신 분들에게 늦게나마 결실을 보여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딸보다 더 소녀 같은 송기순 여사, 산처럼 든든한 가족들, 사랑합니다. 문학의 나침반이 되어주신 임승빈 함기석 시인님, 아동문학에 길라잡이가 되어주신 전병호 박혜선 시인님,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질투와 존경의 대상인 글밭 친구들과 문우들, 그리고 빛나는 순간을 선물해주신 부산일보에도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다음 생도 글밭 언저리에서 살고 있겠습니다.

약력 : 1964년 충북 청주 출생, 청주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충청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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