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좌절·아픔, 마음으로 기록하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나여경 소설가 세 번째 소설집
‘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아버지!'
코로나 상황 속 청년들 고군분투
세월호 참사 후일담 등 작품화
“소설은 인간 이해의 궁극 장르”

나여경 소설가는 세 번째 소설집을 “아픈 이들을 보듬어 주고 싶었던 마음의 기록”이라고 했다. 나여경 제공 나여경 소설가는 세 번째 소설집을 “아픈 이들을 보듬어 주고 싶었던 마음의 기록”이라고 했다. 나여경 제공

나여경 소설가의 세 번째 소설집 <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아버지!>(전망)는 우리 시대의 좌절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아픈 이들을 보듬어 주고 싶었던 마음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좌절의 기록은 아픔의 기록인 것이다.

소설집에는 단편 6편이 실렸는데 작품들이 보여주는 좌절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어느 정도 수렴되는 지점이 있다.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파트 외벽 작업자 밧줄 절단 사건, 진주 아파트 방화 사건, 세월호 참사, 한진중공업 희망 버스와 부산저축은행 부도 사건, 코로나 상황 속 청년들의 고군분투, 중금속 중독의 환경 문제를 배경, 소재, 주제로 삼고 있다. 요컨대 소설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시대적 발언이어야 한다는 태도가 어느 정도 깔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들에는 벗어날 수 없는 정해진 운명, ‘치명적인 독’과 ‘매혹적인 독’으로 표현된 인간의 정념 같은 것이 도사리는데 시대적 발언과 다른 결의 그것들이 소설적 깊이를 더한다.

소설집 <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아버지>. 전망 제공 소설집 <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아버지>. 전망 제공

표제작에는 20대 후반~30대 초로 보이는 투잡 청년이 나오는데 청년은 식당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토바이 배달까지 뛰고 있다. 청년은 코로나 고통 분담 때문에 식당 정직원에서 알바생으로 전락한 경우다. 어느 날, 아귀찜 배달을 하다가 택시에 받히는 사고 장면은 청년의 삶 그대로다. ‘흩어진 아귀의 살덩이 (중략) 마치 폭탄을 맞아 갈기갈기 찢어진’…. 청년이 사회에 나와 터득한 것은 “제가 죽을힘을 다해 일해도 우리에겐 희망이 안 보여요”라는 막막한 절망감이다. 청년의 유일한 위안이 기타 연주인데 무심한 아버지는 기타를 없애버린다. “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아버지!” 아버지에게 가자미 미역국을 끓여준 뒤 읊조리는 청년의 혼잣말은 ‘참혹한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고요한 비명’이라고 박향 소설가가 표사에 썼다.

‘즐거운 인생’은 매우 역설적인 내용의 작품이다. 한진중 사태와 저축은행 사건을 배경 삽화로 가져왔는데 소설을 관류하는 문장은 ‘당신이 행복하면 좋겠습니다’이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라고 추궁한다. 우선, 저축은행에 돈을 떼인 시장 상인들과 해고 노동자를 지지하는 ‘해피버스’는 행복과 거리가 멀다. 게다가 밤에 잠입한 강도가, 곗돈을 뺏기지 않으려 저항하는 ‘정희’의 머리를 조각상으로 내리치는데 그 ‘치명적’ 조각상에 ‘당신이 행복하면 좋겠습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 과연 강도는 누구일까, 라는 의문이 드는 와중에 쓰러진 정희가 피범벅이 된 ‘행복 조각상’을 만지는 순간, 도시 불꽃축제의 불꽃이 팡파르처럼 터지는 것이다. 이 싸한 비극적 이야기를 도저한 역설로 ‘즐거운 인생’이라 이름한 것이다.

좌절과 아픔에 대한 역설적 드러냄, 그리고 극복…. 소설 쓰기 자체에 이미 그 같은 역설이 있다.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누군가를 죽이고 교도소에 가 있었을 것이다.” 발문을 쓴 한창훈 소설가가 소개한 나 작가의 가장 강렬한 발언이란다. 그 발언의 도저한 역설은 ‘소설이 사람을 살렸다’는 것이다. “사람을 살린다는 활인(活人)의 비밀은, 소설이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 새로운 사랑에 가닿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설은 인간 이해의 궁극 장르인 거 같아요.”

인간에 대한 이해는 온전한 기억과 이어진다. ‘네버엔딩 스토리’는 콧날 시큰해지는 세월호 참사 후일담이다. 제목 ‘결코 끝날 수 없는 이야기’의 속뜻은 ‘기억이 온전히 제 자릴 잡아야 망각도 가치 있다’는 것이다. 힘들더라도 기억하고,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를 해야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를 온전히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팍팍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이 저들 ‘삶의 기타 줄’을 억압 없이, 신나게 퉁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뜻도 들어 있을 것이다. “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등단 22년의 작가는 “소설 쓰는 것이 갈수록 어렵다”고 털어놨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