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게펜홀, 잔향 영 점 몇 초 위해 음향시설 개조”
‘세계 시그너처 문화공간 여행’
부산 동구 문화플랫폼 시민마당 전시
이상훈 아트컨시어지 대표 수집
오페라 극장 사진과 포스터 등
문화공간 ‘스토리’ 만나는 기회
“제가 직접 가 본 오페라극장 200여 곳, 콘서트홀 70곳 정도에 관련된 자료와 포스터 등을 모았습니다. 포스터 전시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저 ‘많이 봤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현대 유럽에서 가장 핫한 현대작가들이 컬래버레이션한 겁니다. 포스터이지만 60호 정도 크기로 제법 규모 있게 제작한 것들이고요, 제가 산 것 중에는 16유로, 즉 한화 2만 원 조금 넘게 줬지만 200만~300만 원에 거래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의 미술 작품처럼 말입니다. 그런 걸 한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난달부터 오는 28일까지 부산 동구 시민마당(구 부산진역사) 1층에서 열리는 ‘역사(Station)에서 만나는 세계 시그니처 문화공간 여행’ 전시를 진행한 이상훈 아트컨시어지 대표의 말이다.
이번 전시는 부산 동구청이 스페이스움 김은숙 대표에게 의뢰하면서 이뤄졌는데, 김 대표는 물류 플랫폼 부산진역이 새로운 시민공간으로 바뀐 것에 착안해 전 세계인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온 시그니처 문화공간을 소개하는 전시로 연결하게 됐다. 이에 이 대표는 세계 1250여 도시를 방문하며 수집한 공간 사진 200여 점과 마그넷 500여 개를 통해 마치 세계 공간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다.
전시는 크게 오페라 극장, 페스티벌 극장, 뮤지컬 전용극장, 콘서트홀 등으로 나눴다. 오페라 섹션은 유럽의 명문 오페라극장과 세계적인 작가들이 협업한 독일 뮌헨 소재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 포스터를 전시한다. 축제 섹션은 브레겐츠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 세계 최고의 음악 축제를 보여준다. 뮤지컬 섹션은 런던 웨스트엔드, 뉴욕 브로드웨이, 오스트리아 빈 등에 소재한 뮤지컬 극장을 소개한다. 콘서트 섹션은 뉴욕 필하모닉이 소재한 데이비드 게펜홀, 빈 필하모닉이 상주한 뮤직페라인, 베를린 필하모니아홀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전용 콘서트홀이 나와 있다.
“전시 기획자로서 제가 어느 정도 설명을 해 주면 좋겠는데, 해외 일정이 많아서 공간 사진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아쉽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5년 안에 오페라하우스와 부산국제아트센터가 준공되고 부산시립미술관이 리노베이션 되는 등 부산의 문화공간이 향후 30, 40년을 준비하는 중요한 순간인 만큼 시민들도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문화예술인조차 왜 콘서트홀이 필요하고 오페라하우스가 필요한 것인지 의구심을 갖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이 대표가 들려준 공간 스토리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뉴욕 필하모닉이 상주한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홀 이야기다. 그는 공교롭게도 지지난 주에 이곳을 다녀왔다고 한다. 데이비드 게펜홀은 지난해 5억 5000만 달러(한화 6500억 원)를 들여서 음향시설 개선을 위한 대대적인 개조 공사를 단행했는데 지금은 실내 모양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전체 리노베이션이 아니라 잔향 영 점 몇 초를 컨트롤하기 위해 6000여억 원을 쓰는 데이비드 게펜홀 이야기는 너무나 놀라웠다.
또 한 가지 그가 극장을 소개하면서 부러움을 표시한 대목이 있다. 일본 기업 도요타의 렉서스가 빈 국립오페라극장(Wien Staatsoper)을 후원하면서 일본어 자막으로도 오페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대표는 그게 곧 문화의 힘이자 국력 아니겠냐고도 했다. 또한 빈 국립오페라극장 포스터는 별도의 디자인 없이 출연자 이름만으로도 명성을 유지한다는 게 재밌었다. 1800년대 판형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포스터 역시 전통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이 대표가 전시장을 나서면서 들려준 말도 많은 생각거리를 남겼다.
“흔히 소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물리적인 크기 퀀티티(Quantity)는 데시벨로 표시하지만, 퀄리티(quality)는 잔향을 사용하잖아요. 특히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의 잔향에 대한 요구치는 1초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극장이 공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고요.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오페라는 몇 명이나 보겠냐면서 오페라하우스를 다른 공연도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종국에는 오페라하우스가 아니라 퍼포밍 아트센터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한 장의 극장 사진, 오페라 포스터를 늘어놓은 전시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처럼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들리는 문화예술의 세계에 잠시라도 빠져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기획자의 바람을 떠올리며 시그니처 문화공간 여행에서 빠져나왔다.
전시는 무료(매주 월요일 휴무, 오전 10시~오후 7시)이고, 시청각 공간 섹션에선 관련 영상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2층 체험 공간에서는 세계의 랜드마크 스티커 컬러링 작업(상시) 외에 매주 토·일요일 오후 1~6시 선착순 마감하는 북클립(18·25일)·헤어핀(18일)·국기네오디움(19일)·머리끈(25일)·스윙액자(26일) 만들기와 버튼 프레스 체험(19·26일) 참여도 가능하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