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총체적 난국 ‘앤트맨3’…언제부턴가 히어로 영화는 안 멋져
앤트맨3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탄생한 ‘불협화음’이라는 곡의 가사입니다. 한때 인터넷에서 ‘밈’(meme)으로 통할 정도로 대중적인 공감을 얻었습니다. “똑같은 것들 사이에 튀는 무언가…우린 그걸 작품이라고 불러”라는 가사는 문화예술계를 관통합니다.
최근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어느새부터 히어로 영화는 안 멋져”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히어로 영화는 전 세계를 사로잡은 인기 콘텐츠입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타이타닉’을 제치고 역대 글로벌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고,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도 역대 흥행 5위라는 성적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히어로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멀티버스’ 개념 도입으로 세계관을 계속 확장하자 피로감을 호소하는 팬들도 적지 않습니다. 시리즈물 특성상 진입장벽이 점점 높아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실제로 근래 마블 스튜디오와 DC코믹스 등에서 내놓은 히어로 영화들 중 상당수는 혹평을 면치 못했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앤트맨3)는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나마 인지도가 남아있는 ‘앤트맨’의 흥행 여부가 히어로 영화의 미래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관객들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앤트맨3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요?
지난 15일 개봉한 앤트맨3는 양자영역 세계로 간 앤트맨(폴 러드 분) 가족이 정복자 캉(조너선 메이저스 분)을 물리치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킬링타임용으로는 적당합니다. 화려하고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CG)으로 만들어낸 양자영역 세상은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가족이 사랑의 힘으로 강력한 빌런(악당)을 무찌르고 세상을 구해내는 서사 역시 어렵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양자역학에서 모티브를 얻은 액션 씬들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부성애와 가족애라는 메시지도 충실하게 전달합니다.
그러나 참신함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외계인과 우주 배경은 그다지 새롭지 않습니다. ‘스타워즈’나 ‘맨 인 블랙’ 시리즈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흡사합니다.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려는 악당을 영웅들이 힘을 모아 물리치는 스토리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울 수도 있습니다. 결정적인 위기 순간에 구원군이 등장하는 장면도 이전 히어로 영화들에서 숱하게 봤습니다.
앤트맨3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캐릭터 역시 아쉬웠습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세계관에서 정복자 ‘캉’은 막강한 힘을 가진 ‘최강빌런’이라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구현된 캉의 모습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수 조’(trillions)에 달하는 생명을 앗아간 악당이라는데, 실제로 보여주는 능력은 이전에 등장했던 빌런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위압감이나 카리스마도 ‘어벤져스’가 맞서 싸웠던 ‘타노스’에 비하면 부족합니다.
‘앤트맨2’에서 주연급이었던 ‘와스프’ 호프 반 다인(에반젤린 릴리 분)의 분량은 조연급으로 전락했고, 앤트맨 영화의 정체성인 개미의 비중도 확 줄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주인공 앤트맨의 활약이 애매합니다. 사실 다른 히어로들과 비교하면 그리 대단한 능력이 없어 감초 역할에 그쳤던 앤트맨이 별다른 성장 없이 우주 최강의 빌런을 이긴다는 이야기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B급 영화에나 나올 법한 우스꽝스러운 외양 때문에 몰입을 방해하는 캐릭터도 있습니다.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1등신’ 악당 ‘모독’이 등장할 때마다 긴장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코믹을 가미해온 앤트맨 시리즈라지만, 세상을 정복하려는 최강 빌런을 상대해야 하는 영화의 전체 흐름과는 별로 맞지 않습니다. B급 감성과 유머를 조금 더 강조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 등장했다면 어울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외에서도 '모독'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트위터에선 모독의 사진과 함께 “어노잉 오렌지냐”, “못생겼다”, “앤트맨3는 뭔가 잘못됐다” 등 비판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캐나다 매체는 “영혼을 분쇄하는 미학적 공허함”이라는 매서운 비평을 내놨습니다.
국내 관람객들의 영화평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옵니다. CGV 실관람평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은 “타노스가 그립다”입니다. 골든에그 지수는 17일 오후 2시 현재 80%에 그쳐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나오는 2개의 쿠키영상에서는 마블 히어로 영화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재확인했습니다. 쿠키영상들을 이해하려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에서 나온 드라마 ‘로키’ 시즌1을 봐야 합니다. MCU의 멀티버스 세계관을 섭렵한 열성 팬이 아니라면 앞으로 마블 히어로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는 어렵겠습니다.
정부 공식 유튜브 영상 캡처
‘조회수 260만’ 정부 원전 광고, 비판 투성이 이유는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원전, 강남과 용산에 세웁시다.”
정부가 최근 공개한 원자력발전소 홍보 영상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을 축약한 문장입니다. 문제의 영상은 공개 8일 만에 유튜브에서만 26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크게 확산됐습니다.
지난 9일 한국 정부 공식 유튜브 채널과 SNS에는 ‘원자력 생태계 강화’라는 제목의 짧은 국정 홍보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한석봉이 어둠 속에서 붓으로 글을 쓴 일화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밤중에 호랑이에게 떡을 빼앗긴 어머니가 성을 내며 집에 도착했는데, 아들은 빈둥거리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난 떡을 썰테니 넌 글을 쓰거라”라고 합니다. 글의 주제는 “호랑이가 안 나타나도록 밤거리를 밤새 밝혀도 걱정 없을 에너지”입니다. 잠시 소등한 뒤 불을 켜보니 어머니는 되레 엉망진창으로 떡을 썰었고, 아들의 화선지에는 똑바른 필체로 ‘원자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원자력이라는 글자는 푸른색으로 빛납니다. 이후 “국정과제 세 번째, 원자력 생태계 강화”, “참 든든한 에너지입니다. 와~ 강력하다” 등 대사로 영상은 마무리됩니다.
이 원전 홍보 영상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화제가 되며 조회수가 급등했습니다. 지난 15일에는 170만 회를 넘었고, 17일 오후 5시 현재 270만 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SNS에선 주로 황당하다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방사능 유출 사고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원전 홍보 영상에 등장한다는 겁니다. ‘원자력’이라는 글자가 푸른색으로 빛나는 장면은 강력한 방사성 물질이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체렌코프 효과’를 연상시킵니다. 원자로나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 시설에서나 볼 수 있는 이 푸른빛을 대기 중에서 봤다면, 매우 강력한 방사선에 노출된 것이므로 대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영상에 등장하는 모자는 끔찍한 방사능 물질에 피폭되고 있는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원자력에 대한 정부의 무지가 드러난다는 비판까지 나옵니다.
유튜브에서는 지방에 쏠린 원전의 입지를 두고도 날선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1000개가 넘는 댓글 중 “서울만을 위한 원자력 발전소 설립! 한강변 수원이 풍부한 강남구, 용산구 적극 추천!”이라는 비아냥이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습니다.
다른 댓글들도 비슷합니다. 한 누리꾼은 “고리원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다”며 “이 좋은 것을 우리만 향유하려니 조금 미안하다. 서울 한강 부지에 건설하면 되겠다”고 비꼬았습니다.
그러자 “북한과 전쟁 나면 서울부터 미사일을 쏠 텐데 다 같이 자폭하자는 얘기냐”고 반박하는 누리꾼도 보입니다. 수도권 중심적인 사고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댓글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원전과 같은 주요 에너지 시설은 제1의 표적이 됩니다. 고리원전을 끼고 있는 부울경 시민들은 바로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원전 안에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시설까지 짓기로 해 지역민의 우려와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정부가 국정과제 홍보문구로 내세우는 ‘원자력 생태계 강화’라는 말도 견강부회로 느껴집니다. 생태학에서 ‘생태계’(生態系)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는 ‘상호 작용’입니다. 생태계를 강화하고 복원하려면 무생물적 환경 조건은 물론이고 생물과 생물, 생물과 무생물 간의 상호관계도 복원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의 ‘원자력 생태계’ 강화엔 지역과 수도권의 상호 관계에 관한 언급이 없습니다. ‘원전 협력업체 지원’과 같은 산업적 대책만 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기브 앤 테이크’ 없이 일방적으로 희생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원전 밀집지역을 떠안은 부울경에게 적절한 대우나 보완책도 없이 또 다른 짐을 지우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지역과 수도권이 상생할 수 있는 ‘원자력 생태계 강화’ 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