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세계 최대 해운동맹의 해체 예고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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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 풍랑 만난 해운시장, 또 글로벌 치킨게임 번질라

부산항 신항 북컨테이너부두에서 세계 최대 해운동맹 ‘2M’에 소속된 덴마크 해운사인 머스크의 1만 8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대상으로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부산일보DB 부산항 신항 북컨테이너부두에서 세계 최대 해운동맹 ‘2M’에 소속된 덴마크 해운사인 머스크의 1만 8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대상으로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부산일보DB

지난 연말연시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유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잇따라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예상치보다 낮춰 잡았다. 24일로 발발 1년이 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미국·유럽 경제의 성장 둔화, 기후변화 등의 여파로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커져 경기 전망이 어둡다는 이유에서다. 올 세계 경제성장률은 지난해에 비해 낮은 2%대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는 해운산업에 직격탄을 안긴다. 고속열차와 초음속 비행기의 등장 등 철도와 항공 교통수단이 발달했어도 전 세계 무역의 대부분은 여전히 선박을 이용한 해상 운송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올해 세계 교역 위축과 컨테이너선 수요 감소에 따른 해운 운임 급락세로 글로벌 해운사들의 실적 악화가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 기준 세계 1·2위의 공룡 선사인 스위스 MSC와 덴마크 머스크가 2015년 결성한 최대 해운동맹인 ‘2M’을 2025년 1월 해체한다는 발표가 더해져 해운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대형 선사들의 제 살 깎아 먹기식 치킨게임이 재현될 가능성이 생긴 까닭이다.


■치킨게임의 뼈아픈 기억

2017년 2월 국내 1위, 세계 7위 선사이던 한진해운이 파산해 68년 역사를 마감했다. 이는 글로벌 선사들의 해운 운임 인하 경쟁에서 패한 상대적 약자의 비극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자재 수요가 급감하고 가격이 급락해 해운 수요도 급전직하한 게 발단이 됐다. 해운업계는 세계의 화물 물동량 감소와 운임 폭락이 이어지는 바람에 어려움에 휩싸였다. 그 이전 호황기에 기댄 선사들이 앞다퉈 선복량을 확대하며 덩치를 키운 터라 충격은 배가됐다. 선사마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거액을 들여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와 확보에 나선 상태에서 엄청난 타격을 받은 것이다.

해운 불황을 맞은 선사들은 2010년부터 생존을 위한 저가 운임 경쟁을 전개했다. 당시 선복량 세계 1위인 머스크가 운임 인하를 주도했다. 규모와 자본력에 밀려 치킨게임을 버티지 못한 선사는 경영 위기에 시달리거나 도산할 수밖에 없었다. 주요 국가의 자국 해운업을 지키려는 노력도 뒤따랐다. 중국은 막대한 지원금 투입과 M&A(인수합병)를 통해 자국 선사의 몸집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일본은 정부 주도로 3개 대형 선사의 컨테이너 부문을 합병했다.

이와 달리 우리 정부는 한진해운 파산을 선택했다. 선복량 경쟁을 위해 값비싼 장기 용선 비중을 크게 높인 한진해운이 저가 경쟁과 적자 누적으로 경영난이 심각했기 때문. 이 회사 회장 일가의 도덕적 해이가 정부와 국민의 반감을 산 것도 파산에 한몫했다. 하지만 피해가 막대한 물류대란을 빚을 때마다 한진해운과 함께 사라진 거미줄 같은 원양 정기 항로는 포기해선 안 되며 새로 구축하기도 힘든 경제 인프라이자 해양영토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해운업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수출입 화물 99%를 담당한 중요한 기간산업임을 간과해 한진해운의 회생을 외면한 결과다.


■2M 해체… 저가 경쟁 부르나

지난달 25일 MSC와 머스크는 2년 뒤인 2025년 2M 계약을 10년 만에 해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2M은 세계 항로의 40%를 점유한 최대 해운동맹이다. 해운동맹은 정기 항로를 가진 선사들끼리 협정을 맺어 배와 부두를 함께 사용하고 노선도 조정해 공동 운항하는 국제 관행이다. 과다 경쟁을 피할 수 있으며 자원과 비용의 투입을 늘리지 않아도 독자 운항보다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장점으로 꼽힌다. 또 다른 동맹으로는 점유율이 각각 35%, 25%인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ce)’와 ‘오션(Ocean) 얼라이언스’가 있다.

2M 해체를 전후해 선사들의 선복량과 노선 확보 경쟁이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두 거대 선사 MSC·머스크의 결별은 3개인 해운동맹이 사실상 4개 체제로 바뀌는 걸 뜻한다. 따라서 두 선사는 점유율 확대를 노린 경영이 불가피하다. MSC는 이미 단독으로 부산항 신항~인도 간 직항로를 개설해 다음 달 26일 1만 2000~1만 6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으로 신규 운항에 들어간다. 벌써부터 독자 노선 강화와 치열한 경쟁을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머스크가 2020년대 들어 자체 선박을 늘린 MSC에 빼앗긴 세계 최고 자리를 되찾기 위해 공격적으로 선대를 확충할 경우 1·2위 다툼은 격화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운임 인하 등 출혈 경쟁이 벌어질 우려가 있다.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와 물동량 감소 탓에 폭락한 국제 해운 운임은 이 같은 걱정을 뒷받침한다. 15개 주요 항로를 종합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지난해 1월 5000선을 웃돌다 이달 17일 974.66으로 폭락했을 정도다. 머스크만 해도 올 수익이 악화해 성장률이 -2.5~0.5%에 머물겠다는 예측이 잇따르는 실정이다. 줄어든 물동량을 선점하려는 선사들의 운임 할인으로 장기적으로 저가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국내 해운·항만업계 대응은

2M 해체 선언으로 최대 선사 MSC는 독자 노선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항공 분야까지 진출해 종합물류기업으로 변모한 머스크는 해운의 부족한 부분 보강이나 경비 절감을 목적으로 새로운 협력 선사를 찾아 동맹 관계를 형성할 개연성이 있다. 이로써 연쇄적인 동맹 탈퇴와 제휴가 논의되고 이합집산이 이뤄져 해운시장이 재편될 수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도 성장 기회를 만들려는 선사들 간 경쟁이 펼쳐질 것이 분명하다. 만일 경쟁이 과열된다면 해운 운임을 더욱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테다.

최대 국적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통감한 정부의 전폭적인 금융 지원에 힘입어 현재 선복량 세계 8위 규모로 급성장했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적인 해운 특수 덕분에 창사 이래 최대 수익을 올렸다. 이를 계기로 HMM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HMM 지분을 매각해 민영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글로벌 경기와 해운 업황의 극심한 침체가 예상되는 상황인 만큼 시기와 시장을 잘 살피는 등 신중하게 접근할 일이다.

또 HMM은 독일 하팍로이드, 대만 양밍 등과 함께 2030년까지 디 얼라이언스 소속으로 계약돼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 머스크가 신규 동맹을 제안할 유력한 상대로 평가된다. 2M의 과점 체제 붕괴는 선사들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므로 HMM에 주요 선사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져 신속히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로벌 생존 싸움을 이겨 내고 국가 해운력을 강화할 경영전략이 요구되는 건 물론이다. 부산 항만 당국과 항만·물류업계 역시 해운시장의 동태를 면밀히 관찰해야 할 것이다. 3개 해운동맹은 부산 신항 2~5부두에 기항 중이다. 상황 변화에 맞춰 컨테이너 물동량 유치와 증대를 위한 항만 세일즈 대책이 마련돼야 마땅하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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