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김 새는 스릴러 ‘똑똑똑’…신선한 멜로 ‘6번 칸’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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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에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슬램덩크’와 ‘귀멸의 칼날’이 연이어 관객몰이에 성공했고, 지난 8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감성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이 특유의 감성을 선호하지 않는 관객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관객들을 위해 ‘스즈메의 문단속’과 같은 날 개봉한 외화 두 편을 소개합니다.


영화 ‘똑똑똑’과 ‘6번 칸’. 유니버설 픽처스·싸이더스 제공 영화 ‘똑똑똑’과 ‘6번 칸’. 유니버설 픽처스·싸이더스 제공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한 ‘똑똑똑’

영화 ‘똑똑똑’은 ‘식스센스’로 단숨에 명장의 반열에 오른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내놓은 신작입니다. ‘올드’(2021), ‘23아이덴티티’(2017) 등 그의 필모그래피는 참신하고 소름 돋는 영화들로 가득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황당하면서도 신선합니다. 가족이 머물고 있는 오두막에 무기를 든 4명의 성인남녀가 찾아옵니다. 꿈에서 세상의 종말을 보고 모여든 이들은 가족 중 한 명이 다른 가족에 의해 희생되어야만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은 가족은 당연히 이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거절의 순간마다 세상에 재앙이 닥쳤다는 소식이 TV에서 나오고, 일행은 극단적인 의식을 동원해 가족을 설득합니다. 재앙이 거듭될수록 멸망론은 설득력을 얻고, 굳건하던 가족의 마음은 조금씩 흔들립니다.

영화는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의 반복을 통해 몰입감을 줍니다. 스릴러의 대가인 샤말란 감독의 연출은 긴장감을 배가합니다. 타이트한 촬영과 긴박한 음악이 서스펜스를 고조시킵니다. ‘나라면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해도 답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 ‘똑똑똑’.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영화 ‘똑똑똑’.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흥미진진한 초반부에 비해 결말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갈등은 결국 가족의 선택으로 끝을 맺는데, 충격을 줄 만한 반전은 없습니다. 샤말란 감독의 명성에 비하면 싱거운 마무리입니다. 다수의 안녕을 위해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압박이라는 메시지는 되새겨볼 만 합니다.

일행의 리더인 레너드를 연기한 데이브 바티스타의 호연도 인상적입니다. 미국 프로레슬링 스타 출신인 바티스타는 배우로 전향한 뒤 어수룩하지만 힘이 센 캐릭터를 주로 맡아 연기의 폭이 좁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티스타는 이번 작품에서 결이 다른 연기를 펼쳤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낯선 이에게 잔인한 선택을 강요해야 하는 교사의 복잡한 내면을 자연스럽게 표현했습니다.


접촉의 힘 보여주는 ‘6번 칸’

핀란드 여자 라우라(세이디 하를라 분)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유학 중인 고고학 전공자입니다. 1만 년 전에 새겨졌다는 ‘암각화’를 연인이자 문학 교수인 이리나(디나라 드루카로바 분)와 함께 보기 위해 러시아 최북서단인 무르만스크행 열차 티켓을 예매했습니다.

러시아 남자 료하(유리 보리소프 분)는 태어난 김에 사는 것처럼 보이는 한량입니다. 대규모 광산이 있는 무르만스크에서 사업을 하겠다며 열차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무르만스크로 향하는 열차 2등석 ‘6번 칸’에서 만나게 됩니다. 제74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인 ‘6번 칸’은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3일 동안 함께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둘의 첫 만남은 최악입니다. 이리나가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홀로 6번 칸에 타게 된 라우라는 대낮부터 보드카를 마시는 료하와 마주합니다. 라우라는 그런 료하를 피해 식당 칸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마감시간이 되자 결국 6번 칸으로 돌아갑니다. 료하는 이제 담배까지 피우고 술주정을 합니다. 국수주의적 발언을 하더니 성희롱까지 하네요. 라우라는 6번 칸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료하에겐 따뜻한 면도 있기는 합니다. 라우라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표하고 친해지려 합니다. 그러나 라우라가 암각화를 보러 무르만스크에 간다고 하자 겨우 ‘돌멩이’를 보러 거기까지 가느냐며 황당해 합니다. 그야말로 물과 기름 같은 조합입니다.


영화 ‘6번 칸’. 싸이더스 제공 영화 ‘6번 칸’. 싸이더스 제공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감정에는 변화가 생깁니다. 라우라는 꾸밈 없고 순수한 료하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서서히 그에게 스며듭니다. 그런데 막상 라우라가 다가오자 료하는 숨어듭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한층 가까워지고 성장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캠코더 속에 갇혀 살던 라우라는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 미련을 던져버리고 과거에서 벗어납니다.

라우라와 료하가 가까워지는 이유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은 영화에 대해 “급류를 향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흐르다가 둘 사이의 좁은 틈 사이를 으르렁거리며 마침내 고요한 호수 표면으로 흘러가는 강과 같다”면서 “내 목표는 모든 부조리 속에서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면서 관객을 영화관 밖으로 안내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영화는 한편으로 ‘접촉’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우리는 편견을 배양하기에 이상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사회가 세분화되면서 차별과 단절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빈자와 부자, 노인과 젊은이, 여성과 남성, 이민자와 정주자로 나뉘어 서로를 쉽게 혐오하고 타자화합니다.

해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독일 언론인 바스티안 베르브너는 저서 ‘혐오 없는 삶’에서 “더 많이 접촉하고 더 가까이 있을수록 편견은 줄어든다”고 설명합니다. 생각과 배경이 다른 ‘적대자’라도, 서로 직접 만나보고 알아가면서 절친한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접촉이 많고 접근이 가까울수록 편견이 적어지고 공감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여러 사례와 통계가 증명합니다.

‘6번 칸’ 속 라우라와 료하도 처음엔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적대자’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접촉하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애정이 싹트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제대로 알아갈 수 있는 ‘6번 칸’ 같은 장소가 필요합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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