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방사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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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많은 사람들이 ‘방사선’이라는 말에 지레 겁부터 먹지만, 사실 우주는 방사선으로 가득하다. 지구의 대기 환경이 상당량의 우주 방사선을 막아 주고 있는 덕분에 우리 생태계가 존재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상당량의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상존하고 있다. 방사선과 함께 살고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방사선을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정치적 흥정으로 삼기 이전에, 우선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방사선은 높은 에너지를 갖는 소립자들의 흐름이다. 첫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뢴트겐이 진공관 실험 중 우연히 발견한 ‘미지’의 방사선, 엑스(X)선도 상당한 에너지의 광자(빛알갱이)의 흐름이다. 전기를 띤 입자(전자)가 빛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은 현대 물리학의 시발점이 됐을 뿐만 아니라, 생체조직에 대한 엑스선의 투과력은 의료계에 대혁명을 가져왔다. 엑스선이 뼈를 완전히 투과하지 못한 것은 행운에 가까운 일이다. 방사선마다 그 에너지와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방사성 물질이 붕괴할 때 방출되는 방사선인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도 각각 ‘+2가’의 전하를 띤 무거운 헬륨 원자핵, ‘-1가’의 가벼운 전자, 엑스선보다도 높은 에너지 광자의 흐름이다.

방사선은 피하는 것만이 능사 아냐

과학적 이해 기반해 활용 모색해야

연구 인프라 갖춘 부산 가능성 커

알파선은 상호작용이 가장 활발해서 공기 중에서도 수cm만 진행할 수 있으며 휴지 한 장으로도 간단히 막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 전 라돈 침대는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는데, 이는 흡입할 경우 치명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베타선은 ‘-1가’의 전하를 띤 가벼운 전자의 흐름으로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알파선보다 훨씬 적어서 어느 정도의 투과가 가능하지만 플라스틱이나 유리, 가벼운 금속으로도 차폐가 가능한 반면, 질량이 없고 전하도 띠지 않는 감마선은 투과력이 상당하여 사실상 차폐가 어렵다. 또한 중성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어서 물질들과 전기적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거의 모든 물질을 유유히 뚫고 들어가 직접적인 핵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서 원자력 발전이나 핵폭탄에서 인공 핵분열을 유도하는 데 활용된다.

이와 같이 방사선은 입자의 종류와 피폭되는 대상과 방식에 따라 인체 조직을 교란시키는 파괴력에 차이가 있어서 적절히 통제될 필요가 있다. 유럽행 비행기를 타고 대기의 상층부를 지나는 것과 흉부 엑스선 촬영은 비슷한 정도의 방사선 피폭 효과가 있다. 그래서 비행기 조종사나 승무원 등 항공업계 종사자들에게는 항공 시간의 제한이 있다. 단층촬영(CT)과 같이 다량의 엑스선에 노출되는 일도 의료적으로 그 주기가 통제되어 있음은 물론, 방사선 관련 종사자들도 연간 최대 피폭량이 엄격히 정해져 있다.

하지만 엑스선이 적당한 투과력으로 의료계에 혁명을 일으켰던 것처럼, 방사선이 갖는 특수한 투과력과 상호작용이 항상 나쁘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엑스선보다 에너지 조절이 훨씬 용이한 중성자를 이용하면 복잡한 기계 내부나 유체의 흐름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는 정밀한 비파괴 검사가 가능하다. 심지어 양전자방출진단(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과 같이 특정 화합물에 반감기가 짧은 방사성 동위원소 표지를 붙여 인체에 직접 주입하면 특정 부위에서 감마선이 발생하는데, 이를 스캔하면 특정 생체활동이나 병변을 진단할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방사선 암치료는 실용화된 지 오래다.

새삼스럽게 방사선에 대한 이해와 그 활용을 얘기하는 것은 첫째, 방사선은 반대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 정체와 효과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지로부터 벗어나 하나씩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일이야말로 인류를 역사적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었는데, 방사선의 경우 원전과 연관된 정치적 이슈로만 다루어졌을 뿐 과학적 실체에 대한 이해는 두려움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무척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방류도 규탄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문제에 대한 냉정한 이해와 연구를 통한 합당한 대처가 필요하다.

둘째, 마침 방사선 검출 기술의 연구개발 및 의료·산업적 응용은 아직도 세계적인 블루오션 분야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인공지능과 반도체 나노기술이 널리 각광받고 있지만, 세계 최대 밀집 원전단지의 지근거리에 있는 대도시로서 방사선 과학·기술과의 접목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심지어 기장에는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방사선동위원소 생산시설 등 방사선 연구개발의 인프라가 이미 구축된 상태다. 원전에 대한 정치적 흥정과 거래가 아니라, 일반인들의 방사선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실용적 수요에 따른 특화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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