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서 숲 가꾸는 작가의 30년 묵은 사연, 동화가 되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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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익천, 그림동화 2권 출간

‘털머위꽃’ 고라니 일화 녹여
숲의 일원으로 공생 의미 부각

‘풀종다리의 노래’ 손석희와 인연
힘 없는 이들의 연대 가치 전해


경남 고성 ‘동시동화나무의 숲’을 거닐고 있는 배익천 동화작가. 교육부 <행복한교육> 제공 경남 고성 ‘동시동화나무의 숲’을 거닐고 있는 배익천 동화작가. 교육부 <행복한교육> 제공

경남 고성에서 ‘동시동화나무의 숲’을 가꾸는 부산의 배익천(73) 동화작가가, 숲처럼 오래 가꿔온 사연의 그림동화 두 권을 출간했다. <털머위꽃>(봄봄)과 <풀종다리의 노래>(키큰도토리)가 그것으로, 둘 다 숲을 가꾸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가 직접 숲을 가꿔온 지는 20년 됐으며, 두 권 동화는 30년 저쪽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털머위꽃>은 그가 30여 년 전 알게 된 털머위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마흔 무렵에 거제도 바닷가 작은 집에서 며칠간 작품을 쓰던 중 그는 그 집 부근에서 털머위를 처음 발견했다. 가을에 노랗게 피는 꽃은 뒤에 알았고, 그때 반한 것은 한겨울 추위에도 머리 가득 하얗게 꽃씨를 이고 싱싱하게 서 있는 꽃대의 모습이었다. “꽃씨를 멀리 날려 보내려고 꽃대를 밀어올린 모습에서 부드러우면서 강인한 어머니를 느꼈지요.”

<털머위꽃>. 봄봄 제공 <털머위꽃>. 봄봄 제공

그는 고성에서 숲을 가꾸면서 털머위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숲속 작은 길을 ‘털머위꽃 길’로 조성하기 위해 모종을 심었다. 그런데 털머위 잎대만 올라오면 고라니들이 싹둑싹둑 잘라 먹어버리는 것이었다. 얄미운 고라니의 접근을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며 3년간 씩씩댔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햇볕이 골고루 내리쬐는 숲을 거닐다가 숲의 마음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고라니들도 숲의 일원으로서 숲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거들이 묵으면 얼매나 묵겠노. 실컷 한번 묵어 봐라”며 곳곳에 털머위 씨를 뿌리고 털머위를 캐다 심고 옮겨 심고 했다.

과연 그림동화에서는 ‘할아버지’와 ‘고라니’가 신사협정을 맺는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데, 모두가 잠든 장례식장에 고라니들이 찾아와 저마다 물고 온 샛노란 털머위 꽃송이를 하나씩 할아버지 사진 앞에 놓았다는 이야기다. ‘니캉 내캉 같이 살자’는 게 숲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풀종다리의 노래>. 키큰도토리 제공 <풀종다리의 노래>. 키큰도토리 제공

<풀종다리의 노래>도 30여 년 전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1992년 MBC 노동조합 파업으로 손석희 앵커가 구속됐을 때 당시 부산MBC에 근무하던 작가가 동료 손 앵커에서 보낸 것이 동화 ‘풀종다리의 노래’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자를 풍자하는 우화였다. 손 앵커는 석방돼 나와 책상 위 원고를 보고 1993년 산문집을 내면서 배 작가의 동화 사연을 소개하고 책 제목으로 삼았다.

풀종다리는 몸집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울음소리가 맑고 아름다워 ‘풀에 사는 종다리(종달새)’라 불린다. 동화에서 풀종다리는 ‘아름다운 노래’ 때문에 꺽꺽한 쇳소리를 내는 풀무치 대왕에 의해 결국 감옥에 갇힌다. 책은 힘없는 온갖 풀벌레들이 모여들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힘없는 이들의 노래가 모일 때 ‘새로운 우리 숲’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털머위꽃>의 그림은 이여희 작가가, <풀종다리의 노래> 그림은 한병호 작가가 그렸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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