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동서고가로 ‘공원화 vs 철거’, 누구 이익이 우선?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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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민단체, 하늘 공원화 방안 제시 눈길
수십 년간 소음 등 피해 주민들은 강력 반발
충분한 시간 갖고 지역민 동의 거쳐야 가능

부산의 동서를 잇는 핵심 도로인 동서고가로 중 사상~진양 램프 구간의 폐쇄는 결정됐지만, 이 구간의 활용 방안을 놓고 이견이 노출되면서 동서고가로 논란이 2라운드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7㎞에 달하는 사상~진양 램프 구간은 사상과 해운대 지역을 잇는 대심도(터널 공법으로 지하 40m 이하 깊이에 건설하는 도로) 구간과 겹쳐 결국 폐쇄로 가닥이 잡혔다.

남은 과제는 이 폐쇄 구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인데, 최근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하늘 공원화’ 방안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폐쇄 결정으로 향후 이 구간이 철거될 것으로 믿고 있던 지역 주민들과 부산진구는 이 같은 방안이 떠오르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앞으로 사안의 진행 방향에 따라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간 본격적인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부산의 동서를 잇는 동서고가로 중 폐쇄 예정인 사상~진양 램프 구간에 하늘 공원을 조성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공원화와 철거를 놓고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간 논란이 일고 있다. 동서고가로의 ‘하늘숲길’ 상상 조감도. 부산그린트러스트 제공 부산의 동서를 잇는 동서고가로 중 폐쇄 예정인 사상~진양 램프 구간에 하늘 공원을 조성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공원화와 철거를 놓고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간 논란이 일고 있다. 동서고가로의 ‘하늘숲길’ 상상 조감도. 부산그린트러스트 제공

■ “세계적인 ‘하늘 공원’ 가능”

동서고가로 사상~진양 램프 구간의 보존과 공원 조성이라는 아이디어는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부산그린트러스트를 주축으로 관련 포럼이 구성되면서 논의의 불길을 지피는 중이다. 올가을에는 정식 기구로 발족해 본격적인 논의를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논의의 요체는 이 구간을 철거하는 대신 도심 공중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도심의 폐쇄된 고가도로를 공원으로 조성해 성공한 프랑스 파리나 미국 뉴욕 그리고 서울 등의 사례를 본보기로 내세운다.

특히 서울역 앞 고가도로를 보존하면서 조성한 ‘서울로 7017’과 비교할 때 동서고가로의 하늘 공원 조성은 훨씬 유리한 점이 많다고 한다. 서울로 7017의 경우 실질적인 너비로 보면 2~3개 차로에 불과한 데 반해 동서고가로는 4개 차로에 12~15m 정도를 확보할 수 있어 굉장히 넓은 편이다. 활용할 수 있는 실제 면적이 넓기 때문에 공원으로 조성한다면 자전거 도로와 산책 전용로 등도 함께 설치할 수 있어 복합적인 기능 수행이 가능하다. 충분한 논의를 거친다면 동서고가로는 세계적인 선형 휴식·녹지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동서고가로 주변 주민들과 부산진구는 수십 년간의 피해와 고통을 호소하며 하늘 공원 방안에 대해 즉각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부산진구 지역을 관통하는 동서고가로 전경. 부산일보DB 동서고가로 주변 주민들과 부산진구는 수십 년간의 피해와 고통을 호소하며 하늘 공원 방안에 대해 즉각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부산진구 지역을 관통하는 동서고가로 전경. 부산일보DB

■ “그동안 피해 감내, 꼭 철거해야”

동서고가로 폐쇄 구간에 대한 하늘 공원화 논의가 제기되자 인근 주민들과 부산진구는 즉시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밝히며 발끈했다. 부산진구는 즉각 보도자료를 통해 부산그린트러스트 등의 하늘 공원화 추진에 대해 주민들의 뜻을 모아 강력히 저지할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부산진구의 반대 이유는 그동안 동서고가로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가 너무 컸다는 것이다. 고가도로와 인접한 부산진구의 개금·당감·부암동 등은 대부분 주거 밀집 지역으로, 그동안 소음과 분진, 조망권 상실로 인한 피해를 온전히 감내해 왔다고 주장한다. 여기다 도시 중심지와의 단절로 지역 발전마저 지장을 받아 온 마당에 다시 동서고가로를 보존해 하늘 공원으로 만들자는 발상은 지역 발전의 염원은 물론 주민들의 삶까지 짓밟는 일로 받아들인다.

또 시민사회단체들이 언급하는 파리나 뉴욕 그리고 서울로 7017의 사례는 주변 지역이 대부분 상업 지역으로, 동서고가로가 지나는 부산진구의 여건과는 매우 다르다는 입장이다. 부산진구는 앞으로 주변 주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서명 운동 추진, 궐기대회 등 동서고가로의 완전 철거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7년 5월 도심 고가도로를 폐쇄한 뒤 휴식 공간으로 조성해 호평받은 서울역 앞 고가 보행길인 ‘서울로 7017’ 모습. 연합뉴스 2017년 5월 도심 고가도로를 폐쇄한 뒤 휴식 공간으로 조성해 호평받은 서울역 앞 고가 보행길인 ‘서울로 7017’ 모습. 연합뉴스

■ 주민 여론이 결정 기준 돼야

도심 휴식 공간이 크게 부족한 부산의 현실을 고려하면 폐쇄될 동서고가로에 하늘 공원을 조성하자는 제안은 충분히 나올 만한 발상이다. 실제로 하늘 공원이 조성되면 부산을 대표하는 도심 휴식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탁 트인 하늘 공원 위를 걷는다면 북쪽으로는 백양산의 늘어선 산줄기를 감상하고, 남쪽으로는 수정산, 엄광산에 이어 승학산의 풍광까지 즐기면서 낙동강 변의 삼락생태공원에까지 자연스럽게 다다를 수 있다. 정말 기막힌 코스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부산의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점이 한둘이 아니라고 해도, 고가도로 주변 주민들의 여론을 무시한 채 하늘 공원을 강행하기는 어렵다. 고가도로로 인해 수십 년 동안 감수해야 했던 소음과 분진, 조망권 상실 등과 같은 피해를 또다시 이들 주민에게 떠넘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변 주민들과 지자체가 하늘 공원화 방안에 대해 즉각적이면서도 강도 높게 반발하고 나선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이들에게 무작정 전체의 편익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고통을 감내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은 주민 여론의 향배가 관건이다. 부산시와 시민단체가 하늘 공원을 조성하려고 한다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고가도로 인근 주민들의 이해와 동의를 얻는 과정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들 외 다수가 하늘 공원을 원한다고 해서 이를 등에 업고 서둘러 추진하려 해서도 곤란하다. 다수의 편익이 소수의 고통 위에 기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계적인 하늘 공원을 조성하고자 한다면 주민 설득과 동의 과정에 드는 시간과 공력은 아까운 것이 아니다. 하늘 공원이 필요한 만큼의 진통과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그런 뒤에도 여의찮다면 결국 주민 여론이 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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