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막 올린 ‘오페라의 유령’, 프리뷰·초연 봤더니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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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부산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부산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 에스앤코 제공

요즘 부산 일대를 돌아다니면 ‘오페라의 유령’(제작 에스앤코) 뮤지컬 홍보 배너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어 공연 부산 초연”, “13년 만의 한국어 공연!” 등 문구가 눈길을 끕니다. 뮤지컬은 잘 모르지만 ‘이건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민 끝에 28일 프리뷰 공연과 30일 초연을 예매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다른 좌석에서 다른 배우를 만나본 후기를 공유합니다.

누구나 들어봤을 유명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가 1910년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흉측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숨어 지내는 비운의 천재 음악가 ‘오페라의 유령’과 그가 사랑하는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그리고 크리스틴의 첫사랑인 귀족 청년 라울의 러브 스토리입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영국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1986년 뮤지컬로 탄생시킨 뒤 브로드웨이에서 34년 넘게 공연되는 등 엄청난 히트를 쳤습니다.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 ‘캣츠’와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불리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된 것은 이번을 포함해 총 다섯 번입니다, 한국어 공연으로 한정하면 2001년 초연과 2009년 재연 이후 3번째입니다. 특히 부산에서 한국어 공연이 성사된 것은 처음입니다.

화려한 캐스팅도 이번 공연의 화젯거리입니다. 뮤지컬 흥행 보증수표인 조승우가 ‘오페라의 유령’에 캐스팅 된 것이 단연 눈에 띄지만, 인기 뮤지컬 배우 전동석, 최재림과 성악가 출신 김주택의 합류에 흥분한 팬들도 많습니다. ‘크리스틴’은 성악가 손지수와 팝페라 가수 송은혜가 맡았습니다. ‘라울’ 역에는 송원근과 황건하가 발탁됐습니다. 베테랑 배우 윤영석(무슈 앙드레), 이상준(무슈 피르맹), 김아선(마담 지리), 클래식 스타 이지영, 한보라(칼롯타), 박회림(피앙지), 조하린(멕 지리)도 출연합니다.

기자는 김주택, 송은혜, 송원근이 나선 28일 프리뷰와 조승우, 손지수, 황건하가 출연한 30일 초연을 각각 예매했습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대만족’입니다.


화려한 무대에 실력파 배우들…완벽에 가까운 명품공연

28일 프리뷰 공연은 2층 2열 정중앙 자리에서 관람했습니다. 무대와 거리가 있어 배우들의 연기를 세세히 관찰할 수 없는 점은 아쉬웠지만, 2층 자리도 나름의 장점이 충분했습니다.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장치였습니다. 객석으로 떨어지는 1톤 샹들리에와 7층 높이의 파리 오페라하우스 세트 등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눈이 즐거웠습니다.

형형색색의 조명과 의상은 황홀감까지 선사합니다. ‘오페라의 유령’ 대표 넘버 중 하나인 ‘가면무도회’(Masquerade)에서 화려함은 절정에 이릅니다. 특수효과들은 몰입감을 배가시킵니다. 오페라의 유령이 살고 있는 지하 호수를 나룻배로 건너는 장면에서 동원된 드라이아이스 연기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말 그대로 불꽃이 튀는 대목에선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한국어로 공연하는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당시 펼쳐진 ‘가면무도회’ 장면. 에스앤코 제공 한국어로 공연하는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당시 펼쳐진 ‘가면무도회’ 장면. 에스앤코 제공

초호화 무대장치만큼 훌륭했던 것은 배우들의 호연과 뛰어난 가창력입니다. 오페라의 유령 속 넘버들은 워낙 유명한데다 뛰어난 싱어들이 불렀던 탓에 원곡과 비교하며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귀 기울인 김주택과 송은혜의 무대는 감히 ‘월드클래스’ 수준이었습니다. 바리톤 김주택은 유럽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약한 바 있습니다. JTBC 성악 예능 ‘팬텀싱어’ 등 방송과 공연을 통해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뮤지컬을 소화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데뷔 무대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파워풀한 연기를 펼쳤습니다. ‘밤의 노래’(The Music of the Night)를 부를 때는 풍부한 성량으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또 악당 같은 면모를 보이다가도 크리스틴을 향한 사랑으로 고뇌하는 오페라의 유령을 부족함 없이 연기했습니다.


지난 28일 드림씨어터에서 열린 ‘오페라의 유령’ 공연 캐스팅 보드 지난 28일 드림씨어터에서 열린 ‘오페라의 유령’ 공연 캐스팅 보드

팝페라 가수인 송은혜도 뮤지컬 팬들에게 익숙한 스타는 아니지만, 크리스틴 역을 완벽히 소화했습니다. 가장 기본인 가사 전달력이 좋았고, 유튜브와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선보였던 가창력을 그대로 뽐냈습니다. 클라이맥스에서 연이어 고음을 내지르는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을 부르는 대목에선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생각해줘요’(Think of Me), ‘바람은 그것뿐’(All I ask of You)에서도 정교한 완급 조절과 우아한 음색을 뽐냈습니다. 상투적 표현이지만 “귀가 호강했다”는 말이 딱 맞겠습니다.

이밖에도 칼롯타를 연기한 이지영은 탄탄한 고음이 돋보이고, 라울 역을 맡은 송원근의 안정적인 연기는 몰입을 도왔습니다. 드림씨어터의 고품질 음향시설은 배우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현장감을 돋웁니다.

공연 초반엔 ‘옥에 티’도 있었습니다. 무대 왼쪽의 거대한 기둥에 걸친 기다란 천막이 조형물에 걸리는 바람에 몇 차례나 시도하고도 걷어내지 못하는 실수가 있었습니다. 관객을 압도하는 핵심 장면이었는데 배경으로 천막이 펄럭거리니 집중력이 분산됐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인 공연의 만족도는 정말 높았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1층 관객들은 기립 박수를 보내 장관을 이뤘고, 위층 관객들도 박수 세례를 보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 샹들리에 셋업 사진. 에스앤코 제공 ‘오페라의 유령’ 샹들리에 셋업 사진. 에스앤코 제공

30일 막 올린 초연…“조승우가 조승우했다”

가격이 소폭 인하된 ‘프리뷰’ 공연은 지난 29일까지였고, 공식 초연은 30일에 열렸습니다. 초연 캐스팅은 조승우(오페라의 유령), 손지수(크리스틴), 황건하(라울) 등이었습니다. 1층 15열, 무대 기준으로 조금 왼쪽에서 관람했습니다.

28일 프리뷰 공연에서 벌어졌던 실수는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이날도 공연 초반 왼쪽 기둥의 천막이 조형물에 걸려 한 번에 걷어내지 못했지만 관객들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유연하게 조처했습니다.

이날은 조승우의 연기가 독보적이었습니다. 뮤지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답게 노련하면서도 열정적인 연기를 펼쳤습니다. 목 컨디션이 100%는 아닌 것 같았지만, 폭넓은 음역대와 호소력 짙은 창법, 시원시원한 발성은 감동을 안기기에 충분했습니다.

손지수는 엘리트 성악가답게 쭉 뻗어나가는 고음을 마음껏 자랑했습니다. 이틀 만에 재관람했는데도 ‘The Phantom of the Opera’ 클라이맥스에서 또 다시 소름이 돋았습니다. 뮤지컬에 어울리는 창법을 구사하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송은혜와 손지수 두 배우 모두 크리스틴 역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라울 역은 송원근과 황건하가 색다른 매력을 펼쳐 호오가 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원근이 대체로 무난하고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다고 한다면, 황건하의 연기는 좀 더 격정적이고 박력 있는 편입니다. 황건하는 ‘팬텀싱어’를 통해 갈고 닦은 노래 실력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조승우, 손지수와 함께하는 트리오 무대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성량으로 탄탄한 내공을 증명했습니다.


지난 30일 드림씨어터에서 열린 ‘오페라의 유령’ 공연 캐스팅 보드 지난 30일 드림씨어터에서 열린 ‘오페라의 유령’ 공연 캐스팅 보드

카리스마 넘치는 ‘마담 지리’를 연기한 김아선과 ‘무슈 앙드레’ 윤영석, ‘무슈 피르맹’ 이상준, ‘멕 지리’ 조하린, ‘피앙지’ 박희림 등 다른 조연들 역시 익살스러운 연기로 제 몫을 톡톡히 해냅니다.

‘오페라의 유령’ 역에는 조승우와 김주택 외에도 최재림, 전동석이 캐스팅됐습니다. 두 배우 모두 뮤지컬 팬층에선 이미 정평이 나있는 스타입니다.

1층과 2층의 차이는 크게 음향과 시야로 나뉘었습니다. 2층에서도 넘버를 감상하기에 모자람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배우들과 거리가 가까운 1층에서 노래가 더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1층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배우들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공연이 끝난 뒤 주변 관객들과 함께 기립박수를 보내기에도 좋습니다.

모든 넘버를 한국어로 들은 건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지만, 계속 듣다보니 모국어가 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글 자막을 보기 위해 스크린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으니 무대에 집중하기 좋았습니다.

조금 섭섭한 점도 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빈 무대는 물론이고, 공연이 끝난 뒤 커튼콜도 촬영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커튼콜 촬영은 그럴듯한 ‘인증샷’을 남기려는 목적도 있지만, 나만의 추억을 저장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꽤 비싼 티켓 값을 지불했는데 너무 깐깐하게 군다는 느낌입니다. 공연장 내부 대신 드림씨어터 곳곳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인증샷을 남겨야겠습니다.

가장 부담이 되는 점은 아무래도 20만 원에 가까운 티켓값입니다. 본 공연 기준으로 VIP석 19만 원, R석 16만 원, S석 13만 원, A석 9만 원, B석 7만 원입니다. 티켓 파워가 강한 조승우가 출연하는 공연은 대부분 매진이지만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배우들이 출연하는 날은 남는 표가 꽤 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오는 6월 18일까지 부산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7월 14일부터 11월 17일까지는 서울 샤롯데씨어터로 무대를 옮깁니다. 공연 시간은 평일(월요일 공연 없음) 오후 7시 30분, 주말·공휴일은 오후 2시와 7시입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부산 공연 캐릭터 포스터.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부산 공연 캐릭터 포스터. 에스앤코 제공

부산 5월 공연이 포함된 3차 티켓은 오는 4월 5일 오후 2시 오픈이 확정됐습니다. 5월 9일부터 26일까지 약 3주간의 부산 공연을 예매할 수 있습니다. 공식 예매처는 드림씨어터, 인터파크, 예스24, 티켓11번가, 매표소, 페이북 등입니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참고하면 좋을 사항 몇 가지가 있습니다. 공연장에 늦게 도착하면 예매한 좌석이 아닌 별도의 지정석에서 관람해야 합니다. 매표소까지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는 시간이 있으니 여유 있게 도착하는 게 좋습니다. 물론 너무 늦게 지각한 게 아니라면 ‘봐주는’ 경우도 있는 모양입니다. 30일 초연은 수분 정도 지연돼 시작했는데, 1층 앞쪽 좌석에 2명의 관객이 앉은 뒤에야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관객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으려면 시간을 지켜 입장하는 건 필수입니다.

드림씨어터 관객석은 단차가 있지만, 허리를 앞으로 기울이면 뒷사람의 시야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초연 당시 공연이 시작한 뒤 자리를 옮기는 관객도 있었습니다. 역시 다른 사람의 시야를 방해하니 삼가는 게 좋겠습니다.

객석 내로 반입하기 어려운 물품, 외투 등은 물품보관소에 보관할 수 있습니다. 음료의 경우 공연장 입구에 보관할 수 있는 거치대가 있습니다. 주차정산소는 공연 종료 후 20분간 운영되기 때문에 기념사진 촬영 전에 정산소부터 들르는 게 좋습니다. 포토존은 공연 전후로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20분의 인터미션 때는 비교적 촬영이 수월한 편입니다.

휴대전화 소리는 다른 관객의 몰입을 해치는 큰 민폐입니다. 반드시 무음·비행기 모드로 설정하거나 전원을 꺼둬야 합니다.

오페라 글라스나 망원경을 미리 챙기면 표정 연기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자는 2층에서 관람한 날 오페라 글라스를 준비하지 못해 크게 후회했습니다. 드림씨어터 홈페이지에서 공연 전날까지 사전 예약해 오페라 글라스를 대여할 수 있지만, 수량이 한정돼 있으니 예약을 서두르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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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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