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가득 벗에게 드리는 술…‘감천막걸리’와 ‘라이스 퐁당’ [술도락 맛홀릭] <8>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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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락 맛홀릭] <8>부산 강서구 '벗드림양조장'

'벗드림양조장'은 우리 술을 넘어, 막걸리로 만든 잼·비누까지 발효전문기업을 꿈꾼다. '벗드림양조장'은 우리 술을 넘어, 막걸리로 만든 잼·비누까지 발효전문기업을 꿈꾼다.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울경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며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친구가 친구에게, 정성 가득 담아 드리는 술. ‘벗드림’은 이름에서부터 술빚기에 대한 진심이 묻어나는 양조장이다. 전통주 교실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이 합심해 부산 도심에 차린 술도가.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을 넘어 발효전문기업을 꿈꾸는 이들을 부산에서 만났다.

■ 좋은 재료 찾아 ‘가락 들판’으로

부산 강서구는 대도시 속 시골 같은 풍경을 지녔다. 곳곳에 개발이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드넓은 논밭에선 농작물이 낙동강 하구의 풍요로움을 먹고 자란다. 강서구청 건너 골목길로 몇 걸음만 들어가면 나타나는 빨간색 벽돌 단층건물에선 또 다른 풍요로움이 익어간다. 북구 만덕동 주택가에서 지난해 여름 자리를 옮긴 ‘벗드림양조장’의 본거지이다.

“저희 양조장은 강서구 가락 들판에서 생산한 쌀을 사용해요. 그때그때 딱 필요한 양만큼만 주문하는데, 그래야 갓 도정한 쌀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쌀 수급지와 제일 가까운 곳으로 옮겨왔습니다.”

한형숙(49) 팀장의 설명 한마디에 ‘좋은 재료, 좋은 술’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벗드림의 지향점이 엿보인다. 양조장의 출발부터 그랬다. 지금은 사라진 부산 막걸리학교 ‘연효재’에서 술빚기 교육을 받은 뒤 뜻이 맞는 조원들끼리 협동조합을 만든 게 시작이었다.

“처음에 교육을 받을 땐 창업까진 생각을 안 했어요.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나서도 저희끼리 매주 모여서 술을 빚어 마셨는데, 이렇게 괜찮은 술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서 창업을 구체화하게 됐습니다.”

벗드림협동조합은 2018년 봄 김성욱(50) 대표의 주도로 설립됐다. 5명이 참여해 술 레시피 등을 함께 연구했는데, 다들 생업이 있다 보니 현재는 김 대표와 한 팀장 2인 체제로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 강서구청 맞은편 골목에 있는 '벗드림양조장'. 부산 강서구청 맞은편 골목에 있는 '벗드림양조장'.
벗드림양조장 교육 공간 한편에 놓인 진열대엔 각종 수상의 흔적이 가득하다. 벗드림양조장 교육 공간 한편에 놓인 진열대엔 각종 수상의 흔적이 가득하다.

친구들끼리 빚어 나누던 술이 벗드림 이름을 달고 시중에 나오기까진 협동조합이 설립되고도 1년 반이나 걸렸다. 소량으로 만들 때와 달리 한번에 많은 양을 빚어야 해 맛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4계절 온습도 변화도 문제였다. 고객을 대상으로 내놓을 제품인 만큼 무엇보다 균질한 맛에 공을 들였다.

이윽고 2019년 10월, 벗드림의 첫 작품인 탁주 ‘볼빨간막걸리’(10도·7도)와 약주 ‘라이스 퐁당’(17도·13도)이 선을 보였다.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이름과 병 디자인이었다. 맛 또한 특색이 분명해, 전통주 업계와 애주가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입소문만으로 술을 알리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2020년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고 지역특산주 면허를 받으면서, 비로소 벗드림의 술을 온라인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처음엔 대표님과 둘이서 술가방을 짊어지고 박람회며 전시회며 부산 전역을 돌았거든요. 정말 발품을 많이 팔았어요. 지금은 온라인 판매도 가능하고, 저희 술만 찾는 마니아들이 있어서 판매량이 안정적인 추세입니다.”

벗드림양조장을 이끌고 있는 김성욱(왼쪽) 대표와 한형숙 팀장. 벗드림양조장을 이끌고 있는 김성욱(왼쪽) 대표와 한형숙 팀장.
벗드림양조장에서 판매 중인 3가지 술. 볼빨간막걸리, 감천막걸리, 라이스 퐁당 17.(왼쪽부터) 벗드림양조장에서 판매 중인 3가지 술. 볼빨간막걸리, 감천막걸리, 라이스 퐁당 17.(왼쪽부터)

■ 쌀·물·누룩만으로 이룬 3관왕

벗드림양조장은 쌀·물·누룩 이외 일체의 감미료를 넣지 않는 전통 그대로의 방식을 고집한다. 현재까지 출시한 술은 찹쌀막걸리(‘볼빨간막걸리’)와 멥쌀막걸리(‘감천막걸리’), 그리고 약주(‘라이스 퐁당’)까지 3가지. 모두 밑술에 덧술을 더한 이양주다. 이 중 대표 술은 가장 최근 선보인 ‘감천막걸리’다. 찹쌀과 전통누룩이 들어가는 나머지 두 술과 달리 멥쌀과 개량누룩을 써서 산미가 적다.

“쌀의 단맛을 최대화해 좀 더 부드럽고 자극이 덜한,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술을 만들고 싶었어요. 담고 먹고 발효하기를 반복하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탄생한 술입니다.”

한 팀장의 설명처럼 감천막걸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달달함’이다. 달콤한 냇물(甘川)이란 이름 그대로의 맛이다. 하얀 빛깔에 용기도 우유병을 닮아 ‘어른들의 우유’라고 할 만하다. 이양주인 만큼 가볍지 않은 적당한 무게감에, 입 안에 계속 머금으면 시원한 배 향과 고소한 곡물 향이 감돈다.

개발 과정에서 때마침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된 감천막걸리는 지난해 5월 출시와 함께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을 알리는 관광기념주로도 판매되고 있다. 10월엔 농림부 주최 ‘2022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우수상’(탁주 부문)을 받으며 전국구 인정을 받았다.

감천막걸리는 빛깔부터 우유를 닮았다. '어른들의 우유' 같은 맛이다. 감천막걸리는 빛깔부터 우유를 닮았다. '어른들의 우유' 같은 맛이다.
벗드림양조장의 발효조에서 술이 익어가고 있다. 벗드림양조장의 발효조에서 술이 익어가고 있다.

벗드림양조장의 첫 작품인 ‘볼빨간막걸리’(10도)와 ‘라이스 퐁당’(17도)도 2021년(탁주 부문)과 2022년(약주·청주 부문)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공동 대상을 받았다. 5년이 채 안 된 양조장에서 출시한 3가지 술이 모두 전국대회에서 수상하는 진기록을 쓴 셈인데, 그 비결에 대한 김 대표의 답은 역시 ‘정성’이다.

“첫 술을 출시하기까지 2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재료와 방식을 써 가며 많이 연구했어요. 다른 신제품도 1년 넘게 레시피를 연구하고 있는데, 이런 정성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볼빨간막걸리는 찹쌀의 달콤함에 전통누룩의 산미가 더해져, 조화로운 풍미를 지녔다. 일반적인 막걸리보다 도수(10도·7도)가 높아 특히 애주가들이 좋아할 맛이다.

라이스 퐁당은 약주 특유의 향미가 기품 있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두 막걸리와 달리 일반 정제수가 아닌 약초(삼지구엽초·감초) 달인 물을 써서 전통누룩의 향에 약초의 향을 입혔다. 찹쌀의 깊은 단맛과 누룩의 산미, 약초의 산뜻한 향이 어우러져 한 잔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특히 물을 타지 않은 17도는 원주 그대로의 풍미를 즐길 수 있다.

벗드림의 술은 발효 기간이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4주 정도다. 충분히 완발효를 한 뒤엔 한 달 이상 저온창고에서 숙성을 한다. 술을 만나기까지 최소 한 달 반 이상, 기다림의 정성이 필요하다.

김성욱 대표가 막걸리를 활용해 개발한 잼. 크림치즈 같은 부드러운 맛이 담백한 크래커류와 잘 어울린다. 김성욱 대표가 막걸리를 활용해 개발한 잼. 크림치즈 같은 부드러운 맛이 담백한 크래커류와 잘 어울린다.
술 지게미가 아닌 진짜 막걸리를 넣어 만든 천연비누. 숙성에만 8~12주가 걸린다. 술 지게미가 아닌 진짜 막걸리를 넣어 만든 천연비누. 숙성에만 8~12주가 걸린다.

■ 잼·비누까지, 발효에 ‘진심’

벗드림양조장은 ‘막걸리 잼’ 맛집으로도 통한다. ‘막걸리 잼’은 김 대표가 2021년 볼빨간막걸리를 이용해 개발했다. 막걸리에 생크림·설탕을 넣은 뒤 뱅쇼(따뜻한 와인)처럼 가열해 알코올을 휘발시키는 식이다. 밀크잼이나 카야잼이 연상되는 맛인데, 은은하게 깊이 밴 단향이 담백한 바게트나 크래커류와 어울린다. 인기에 힘입어 곧 감천막걸리 잼도 출시될 예정이다.

막걸리 잼을 바른 크래커 등은 뿌리가 같은 벗드림의 술과 곁들이기에도 좋다. 감천막걸리·볼빨간막걸리와 크림치즈 같은 잼이 부드럽게 어우러지며, 부담 없이 취기와 허기를 채울 수 있다.

잼보다 조금 먼저 출시된 벗드림표 ‘막걸리 비누’도 인기다. 여느 양조장과 달리 막걸리를 빚고 남은 지게미가 아니라 진짜 막걸리를 넣어서 만든 천연비누다. 숙성에만 8~12주가 걸려, 막걸리 못지 않게 정성이 들어간다.

한형숙 팀장의 가르침에 따라 취재진이 고두밥을 널어 말리며 막걸리 빚기 체험을 하고 있다. 한형숙 팀장의 가르침에 따라 취재진이 고두밥을 널어 말리며 막걸리 빚기 체험을 하고 있다.

막걸리부터 비누까지 제품마다 고집스럽게 정성을 담고 있는 벗드림양조장은 올해 또 다른 신제품을 출시한다. 골프장 이용객들을 위한 특화 막걸리와 지역에서 생산된 과일을 넣은 베리류 막걸리가 상반기부터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벗드림은 술빚기 문화를 알리는 데도 신경 쓰고 있다. 만덕동 시절부터 입문자들을 대상으로 찹쌀막걸리(단양주)를 빚는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해 왔다. 양조장으로 신청하면, 김 대표와 한 팀장의 일정에 맞춰 10여 명씩 단체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도심 양조장인 만큼 지역 안에서 오가며 들를 수 있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지역사회와 협업하고 좀 더 공헌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친구 같은 술, 친구 같은 공간. ‘벗드림’(butdream·友夢) 친구들의 꿈이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제품명 : 감천막걸리

-양조장 : 벗드림양조장(부산 강서구)

-내용량 : 750mL

-알코올 : 6.0%

-원재료 : 쌀·누룩·효모·정제수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우유병 닮은 디자인처럼 ‘어른들을 위한 우유’ 같은 맛. 부드러우면서 살짝 보디감도…”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처음부터 끝까지 단맛으로만 밀고 가서 좋다. 심심한 갑자칩·크래커와 잘 어울릴 듯.”

▶김동우 편집파트 기자

“첫맛이 되게 달다. 감주처럼 음료수 같은 느낌이 많이 나서 편하게 마실 수 있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되게 달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이다. 탄산감이 없어 부드럽게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외 대동여주도 대표

“잔에 코를 갖다 대니 요구르트 향이 시원하고 싱그럽게 피어오른다. 유제품 계열의 고소함과 바나나 등 과일의 단향도 담겨 있다. 향의 속성과 맛이 결을 같이하는데, 맛이 더 달다. 달지만 보디감이 적당해 한 잔을 훌렁 비우기가 좋다. 라벨에 씌여 있는 ‘감천: 물이 달고 맛이 좋다’는 카피가 ‘술이 달고 맛이 좋다’로 느껴진다.”


-제품명 : 라이스 퐁당 17

-양조장 : 벗드림양조장(부산 강서구)

-내용량 : 500mL

-알코올 : 17.0%

-원재료 : 찹쌀·누룩·정제수·삼지구엽초·감초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점도가 높은데 적당한 보디감에 상큼한 향까지. 가벼운 와인 한잔 하듯 즐기기 괜찮다.”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약주의 정석 같은 느낌. 마시는 순간 약주의 기운과 향이 확 올라온다. 뒷맛도 깔끔하다.”

▶김동우 편집파트 기자

“오묘하고 복합적인 맛. 처음엔 풀 향, 다음은 술 섞은 꿀물, 마지막엔 도라지 우린 물 같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첫맛은 조금 시고, 이어 살짝 달다가, 마지막은 코가 맵다. 이게 어른들의 맛인가 싶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첫 향에서 곡물의 단향과 적당한 산미가 부드럽게 어우러지는데, 이런 느낌이 맛에서는 더 진하고 농밀하게 어우러진다. 찹쌀에서 기인한 달콤함과 약간의 쌉싸래함, 입에 착 붙는 감칠맛이 삼중주를 이룬다. 후미에서 알코올감이 느껴지며 여운을 남기는데, 그제서야 17도임을 인지하게 된다. 삼지구엽초가 들어간 술이라 보양식을 준비해서 한 잔, 두 잔 음미하며 반주로 즐기고 싶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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