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도 못 뜨는 태풍급 바람, 건조경보 만나 ‘불쏘시개’ 돼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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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산불 진압 난항

태백산맥 타고 거세진 ‘양간지풍’
불똥 날아가 주변 새 산불 일으켜
최대 순간풍속 공중서 초속 60m
위험성 높고 지상 작업 의존 커
전국 소방동원령·대응 3단계 발령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순간최대초속 30m의 강한 바람을 타고 확산되면서 검은 연기가 시내 주택가로 몰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순간최대초속 30m의 강한 바람을 타고 확산되면서 검은 연기가 시내 주택가로 몰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도 강릉시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번져 소방청이 전국 소방동원령과 최고 수준의 대응 3단계를 발령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건조경보에 강풍경보까지 내려져 산불 진압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1일 오전 8시 30분께 강릉시 난곡동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은 건조한 날씨와 태풍급 강풍의 영향으로 계속 번져 소방 당국은 화재 진압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강릉시와 동해시 등 강원 동해안 전역에는 강풍경보가 발효됐다. 산불 현장에는 평균 초속 15m, 순간초속 30m의 강풍이 불었다.


강원도 곳곳에서는 태풍과 유사한 수준의 강풍이 불어 소방 당국의 진화 작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날 강릉시 연곡면의 최대 풍속은 초속 26.7m를 기록했다. 양양군 설악산에는 최대 순간초속 37.8m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고성군(현내면)에서는 최대 풍속이 초속 30.6m를 기록했다.

중부지방, 전북, 경상도 해안 등 전국 곳곳에 강풍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산악 지형의 순간풍속은 초속 30m(시속 110km)를 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화재작업을 위해 초대형 헬기 2대가 이륙했지만 공중에서 느껴지는 바람의 최대 순간초속은 60m에 달해 진화 작업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현장에 투입된 산불 진화대원들도 강풍 탓에 몸조차 가누기 힘든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흔히 열대저기압의 중심 부근 최대풍속을 관찰해 10분간 초속 17m 이상이면 태풍으로 분류한다. 이날 강원도 설악산 일대에서 분 바람의 경우 10분 평균 풍속 최대치가 25.2m를 기록했다. 이는 기상청이 판단하는 중형 태풍(최대풍속 초속 25m 이상 33m 미만)의 기준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강원 지역의 바람이 거세게 부는 이유는 ‘양간지풍’ 또는 ‘양강지풍’이라고 불리는 자연 현상 때문이다. 봄철에 영동 지역에 불을 몰고 온다 해서 이른바 ‘화풍’이라고도 불리는 양간지풍은 ‘양양과 고성 간성 사이에서 국지적으로 부는 강한 바람’을 일컫는다. 봄철 대형산불로 이어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봄철이 되면 남쪽에 고기압이 위치하고 북쪽에 저기압이 자리를 잡는다. ‘남고북저’ 형태의 기압 배치가 되면 강원도에는 따뜻한 서풍의 기류가 형성된다. 이후 서풍이 태백산맥을 타고 오르는데 태백산맥을 지나면서 고온 건조해지고 속도가 빨라져 소형 태풍급의 위력을 갖게 된다.

양간지풍처럼 강한 바람이 불면 산불 위험성은 높아지고 진화 작업에는 어려움이 커진다. 거센 바람 때문에 헬기를 이용한 공중 진화작업이 불가능해지는데다 산불이 발생한 곳에서 불똥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 새로운 산불을 만드는 ‘비화 현상’도 일으킨다. 난곡동 일대에서 시작된 산불도 인근 산으로 급속도로 번져 큰 피해를 냈다.

바람이 거세게 불수록 산불의 확산 속도도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산림과학원이 바람이 산불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 산불이 났을 때 바람이 불면 확산 속도가 26배 이상 빨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다 보니 강릉시에서의 산불 진화작업은 소방대원과 장비를 투입한 지상 진화 작업에만 의존하고 있다. 소방청은 산불 확산에 맞서 최고 대응 수위인 소방 대응 3단계, 전국 소방동원령 2호를 발령했다. 산불로 소방 대응 3단계가 발령된 것은 올해 들어서는 처음이다. 경포동, 산대월리, 산포리 일대에는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오후 2시까지 대피한 인원은 450여 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다행히 11일 오후 2시 이후부터는 강릉시 산불 현장의 강풍이 약해져 산림 당국이 헬기를 투입해 진화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오후 2시 30분께 강릉시 일대의 평균풍속은 초속 12m, 최대순간풍속은 초속 19m로 약해졌다. 이후 산림당국은 초대형 헬기 1대, 대형헬기 2대를 투입해 진화작업을 벌였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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