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그리 알고 싶어 이름마저 ‘욕지’일까…‘욕지도’ 1박 2일 솔캠
욕지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대기봉에서 내려다본 욕지항 전경. 욕지도 인근 연화도와 우도 등 한려수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위에 무늬를 그려 낸다.
반팔의 계절이 돌아왔다. 햇살이 따가워지니, 푸른 바다가 떠오른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기엔 섬이 제격이다. 경남 앞바다엔 한산도·연화도·사량도·소매물도 등 매력 넘치는 섬이 많다. 그중에서 욕지도는 이름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욕지(欲知)’, 알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한 섬이라…. 욕지의 정체를 알고 싶어 경남 통영으로 향했다.
■ 해발 392m, 섬에 오르다
욕지도로 들어가는 배편은 여럿이다. 통영여객선터미널, 삼덕항, 중화항 세 곳에서 카페리가 운항한다. 욕지도를 구석구석 둘러보기 위해 자동차와 함께 배에 올랐다.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옅은 물안개에 휩싸인 욕지도가 신비스러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 3000여 개 섬 중 48번째(14.95㎢)로 큰 욕지도는 등산·자전거·마라톤·걷기 등 다양한 코스가 정비돼 있다. 먼저 섬의 정체를 내려다보기 위해 등산을 택했다. 일출봉(해발 190m)~망대봉(205m)~대기봉(355m)~천왕봉(392m)~약과봉(315m) 등 전체 봉우리를 잇는 종주코스는 4시간 남짓. 장시간 등반이 부담스러운 초보자라면 섬 남단 새천년기념공원에서 출발해 대기봉과 천왕봉을 찍고 내려오는 약식코스를 추천한다.
통영 삼덕항에서 카페리를 타고 40분쯤 바다 위를 달리자, 선수 너머로 욕지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새천년기념공원에서 바라본 욕지10경 '펠리칸바위'(맨 오른쪽 튀어나온 바위). 사진을 자세히 보면 해안 절벽을 따라 출렁다리 3개가 보인다.
약식코스 등산로는 공원 바로 앞 나무덱에서 시작된다. 초입부터 가파른 계단과 오르막길이 이어져 금세 숨이 차오르지만, 오솔길·바위·나무·야생화 등 다채로운 풍경이 발걸음에 힘을 보탠다. 10분쯤 오르자 첫 이정표가 나타나고, 10분 뒤 두 번째 이정표와 함께 한숨 돌릴 수 있는 나무덱 전망대가 나온다. 이후로는 반가운 내리막과 완만한 경사의 오솔길이다. 30분 만에 다다른 대기봉에는 욕지도모노레일 상부 역사를 겸해 널찍한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모노레일은 1년여 전 안전사고 이후 운영이 중단됐다. 문 닫힌 시설에 감도는 적막감도 잠시, 난간 너머로 펼쳐진 절경에 곧장 시선이 빼앗긴다. 푸른 바다와 욕지항, 그리고 꼬리처럼 삐져나온 일출봉과 망대봉 주변으로 한려수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위를 올망졸망 수놓는다.
욕지도 최고봉인 '천왕봉'으로 향하는 계단. 맨 꼭대기는 군 레이더 시설이 있어 올라갈 수 없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이세선 통제사 친행 암각문'. 훼손을 막기 위해 유리벽으로 보호 중이다.
대기봉에서 서쪽으로 400m만 더 가면 욕지도 최고봉인 천왕봉이다. 군사 시설이 있는 맨 꼭대기는 접근할 수 없지만 근처까진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레이더 아래로 까마득한 계단이 이어졌다. 하나, 둘, 셋, 넷… 정확히 104개 계단을 다 오르자 큰 바위에 새긴 한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세선 통제사 친행 암각문’이다. 조선 숙종(1689) 때 제65대 통제사 이세선이 욕지도에 진영 설치를 위해 답사한 것을 기념해 새겼다고 한다. 오랜 세월 풍화로 알아보기 쉽지 않지만 바로 옆 안내판을 통해 글자와 내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산은 좀 더 수월해 금세 출발지점에 다다른다. 중간중간 사진 촬영도 하며 여유를 부리면 왕복 1시간 30분쯤 걸리는 코스다.
'유동노을전망대'에서 바라본 일몰. 붉은 노을이 바다 위 양식장에 온기를 불어넣는 듯하다.
'석양이 아름다운 쉼터'에서 만난 앵커 조형물과 석양.
■ 육지와 다른 욕지의 일출·일몰
섬의 매력 중 하나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욕지도는 차량으로 한 바퀴 도는 데 30분 정도라, 어렵지 않게 동·서쪽 끝으로 이동할 수 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욕지일주로에는 곳곳에 바다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돼 있다. 석양을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여럿이다. 일주로의 북서쪽 끝 ‘석양이 아름다운 쉼터’는 대형 ‘앵커’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수평선으로 넘어가던 해가 때마침 앵커 끝자락과 만난다. 반가움보다 그리움이 떠오르는 풍경이다.
남쪽으로 조금 더 달리면 ‘유동노을전망대’가 나타난다. 주차공간이 없는 게 흠이지만 노을은 앞서 석양쉼터 못지않다. 석양으로 붉게 물든 바다 위엔 양식장이 떠 있다. 노을이 바닷속 생명들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듯하다.
석양이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기 전 어디선가 색소폰 소리가 들려온다. 인근 유동마을에서 누군가 색소폰 연주 삼매경에 빠졌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귀 익은 노랫가락이 괜스레 반갑다. 욕지도에서 만나는 부산항이라니.
알고 보면 욕지도와 부산은 꽤나 가까운 사이다. 욕지항 인근 자부마을(좌부랑개)은 근대 어촌 발상지로, 1910년대부터 어촌근대화가 진행됐다. 이후 욕지도는 1970년대까지 남해안 어업 전진기지로 번성했고, 통영을 넘어 부산까지 생활권을 이뤘다. 과거 북적였던 좌부랑개 골목은 현재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조성돼 있다. 오래 전 목욕탕·당구장·고등어 간독(소금 간을 해 묻어 두는 독) 등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욕지10경 중 하나인 펠리칸바위로 이어지는 '제1출렁다리'.
'제2출렁다리' 아래로는 까마득한 해안 절벽이다.
가장 최근에 조성된 '제3출렁다리'는 건너편 펜션 시설과 연결된다.
일주도로를 달리다 보면 욕지도 명물 중 하나인 출렁다리를 만날 수 있다. 섬의 동측 옥동로를 따라 남쪽 해안절벽에 제1·2·3출렁다리가 차례대로 설치돼 있다. 길이·모양·풍광은 달라도 온몸으로 전해오는 아찔함은 똑같다.
다음 날 아침 해를 어디서 볼까 고민하다 숙소를 캠핑장으로 잡았다. 욕지도에는 사설 캠핑장이 4~5곳 있다. 그중 ‘대풍바위 오토캠핑장’은 동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어 일출 구경에 안성맞춤이다. 텐트를 치고 노곤한 몸을 누이니 잔잔한 물결 소리가 자장가나 다름없다.
다음 날, 눈을 떠 보니 벌써 주위가 환하다. 육지와 달리 섬은 해를 가리는 장애물이 없어 일출 시각이 빠르다. 텐트 밖을 나서니 이미 수면 위로 해가 떠올라 빛을 잔뜩 뿜어낸다. 육지보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섬은 여행객마저 부지런하게 만든다.
통영시 지정특산물인 '고메원도넛'. 욕지도 고구마와 기장 다시마 등으로 만들었다.
욕지도고구마빵은 모양부터 고구마를 빼닮았다. 쫄깃한 식감과 부드러운 고구마 앙금이 잘 어울린다.
욕지도 고구마로 빚은 막걸리 3종. 왼쪽부터 한산도가의 '고메순' '고메진', 욕지도양조장의 '욕지도고구마막걸리'.
■ 고구마는 기본, 풍성한 먹거리
욕지도는 알면 알수록 먹거리도 다양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고구마로 만든 특산물만 해도 여럿이다. 제1출렁다리 초입에선 통영시지정특산물인 ‘고메원도넛’을 맛볼 수 있다. 해풍을 맞고 자란 욕지도 고구마와 기장 다시마, 사과 등으로 만든 수제 도넛이다. 부드럽고 달콤한 고구마 앙금이 듬뿍 들어가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욕지도고구마빵’은 모양부터 고구마를 빼닮았다. 역시 고구마 앙금이 들었는데, 빵의 쫄깃한 식감과 어우러져 남녀노소 두루 좋아할 주전부리다. 감자빵과 단호박빵도 있어 취향대로 골라먹기 좋다.
고구마가 들어간 막걸리도 욕지도만의 먹거리다. 한산도가 양조장에서 만든 ‘고메순’(6도)과 ‘고메진’(12도), 욕지도양조장에서 빚은 ‘욕지도고구마막걸리’’(5도) 등 3종을 하나로마트 통영농협욕지점에서 판매한다. 한 병씩 맛의 차이를 비교해 가며 마시니 흥미롭다. 안주로는 톳이 들어간 ‘계동치킨’을 먹어볼 만하다. 튀김 껍질에 검은 깨처럼 알알이 박힌 톳이, 보는 맛을 더한다.
욕지도의 맛집 '한양식당'의 해물짬뽕. 다양한 해물이 듬뿍 들었다.
'계동치킨'의 명물 톳치킨. 껍질에 알알이 톳이 박혀 보는 맛도 있다.
해장으로는 해물짬뽕이 제격이다. ‘한양식당’의 해물을 듬뿍 넣은 짬뽕은 널리 알려져 평일에도 대기 줄이 이어질 정도다. 꽃게와 새우, 키조개 관자가 들어간 게새키짬뽕(‘욕지는짬뽕’)은 가격대가 다소 있지만 다양한 해물을 맛보기에 좋다.
관광지답게 욕지도에도 차츰 카페가 들어서고 있다. 1호 카페인 ‘욕지도할매바리스타’는 커피를 든 할머니 모습의 간판부터 정감이 넘친다. 2013년 욕지 토박이 할머니들이 생활협동조합을 만들면서 운영을 시작했고, 마을기업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할머니 손맛이 들어간 고구마라떼와 고구마샌드위치 등이 대표 메뉴다.
욕지도서관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나오는 ‘별빛정원’은 숨은 보석 같은 카페다. 가정집 대문 같은 입구로 들어서면 안쪽으로 아름다운 유럽풍 정원이 펼쳐진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서양 야생화를 비롯해 희귀꽃이 즐비한데, 주인장이 세계 각지에서 구해 20년 동안 가꾼 작품이다. 카페는 지난해부터 문을 열었다. 시원한 칡라떼 한 잔을 들고 500평 규모의 정원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욕지’의 매력. 1박 2일이 모자랄 정도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욕지 토박이 할머니들이 직접 음료를 만들어 내어 주는 '욕지도할매바리스타'.
숨은 보석 같은 카페인 '별빛정원'. 안으로 들어갈수록 유럽풍의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진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